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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숭아 Sep 24. 2022

행복해지려고 하지 마라

남에게서 나에게로

  행복은 원래 우리나라 말이 아니었다. 1900년대 초만 해도 그런 말은 없었다.  행복이란 말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난 뒤 일본 사람들이 쓰던 말이 조금씩 알려진 것이라 한다. 그 전까지 행복이란 말은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말이었다. 그저 먹고 사는데 불편함 없는 삶 정도가 일반 서민들이 바라는 삶이었다. 조선시대 내내 일반 서민들은 굶주렸다. 그저 부잣집 마님께 땅을 좀 얻어 살아가야 하니 늘 굽신거리며  허리가 부러지도록 일만 했다. 반 거지로 살던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부자가 되었는지 깜작 놀랄 대한민국의 변신이다. 입에 풀칠도 못하던 시절에는 어떻게든 출세해서 남보란듯 허리펴고 살아보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행복보다는 '출세'라는 말이 성행했다. 출세란 이 세상에 나간다는 말이다. 실제로는 '잘 나간다'는 뜻으로 쓰였다. 예를 들면 사업을 해서 어엿한 사장님이 되든 공부를 해서 공무원이 되는 것도 출세였다. 사회에서 인정받고 존경받으며 행세깨나 하기를 부모들은 자식에게 바랐다. 

 "우리 아들이 면서기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 아들이 고시에 합격했으면 좋겠다."

 "학교 선생님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서양에서라면 어여쁘게 성장한 아가씨가 사교계에 나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기 위해 사교계에 나가 교양과 미모와 세련된 옷차림을 자랑했다. 


그렇게 남보다 잘나가는 삶을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이 내 행복의 기준이 되어버렸다. 



 최근에는 돈 많은 것, 넓은 집에 사는 것, 좋은 직업을 가진 것이 행복이 되었다. 그러니 닥치고 돈을 벌어야 한다. 닥치고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해진다고 남들이 말하니까 말이다. 부모와 교사가 말해주는 바른 길이다. 가끔 학업스트레스로 자살한 아이들의 부모가 하는 말이 다를 뿐이다.

   " 아이 하고 싶다는 노래를 하도록 허락해줄 걸."

   " 그렇게 좋아하던 춤을 배우게 해 줄 걸."

   " 축구를 실컷 하게 해 줄 걸!"

   " 좀 더 친절하게 부드럽게 대해줄 걸." 

 이제 다 소용없는 말이지만 그렇게 후회하고 슬퍼한다. 너를 사랑해서 공부하라고 했다고, 네가 잘 되라고 그랬다고, 그렇게 해야 네가 행복해 질 것 같아서 그랬다고 통곡해 봐야 말짱 헛일이다. 


 나 역시 행복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오래 전 잘못된 만남을 정리하고 난 뒤에 화려한 행복을 꿈꾸었던 청춘의 어리석음을 내려 놓았다. 행복이라는 허상을 쫓아서 남들이 말하는 인생 코스를 가보았지만 별로 재미가 없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흔히 발달 과업이라고 하는 인생의 과정은 걸음마 할 때 걸음마 하고 학교갈 때 학교 들어가고 결혼할 때 결혼하고 아기 낳을 때 아기 낳는 것이라 했다. 그게 아닐 지도 모른 다는 걸 고3 때 나는 약간 느꼈다. 

 '아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이렇게 공부하다가는 죽는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생각 좀 해 보고!'

 '와아, 인생이 원래 이렇게 빡센 건가?'




 적어도 인생이란 약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밥을 먹을 때도 음식의 색깔과 향과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씹어먹어야 제 맛을 안다. 이건 뭐 몽골군대가 전쟁을 하듯 미친 듯이 질주하며 살아가니 반은 미친년처럼 살아야 남들을 추월할 수 있었다. 전교 3등까지 했던 나는 어느 날 코피를 흘리고 쓰러졌다. 이러다가 죽겠구나 생각한 나는  죽고 싶지 않아서 연기를 시작했다. 조금만 몸이 안 좋아도 죽는 시늉을 했다. 대량 코피를 흘려 병원에 한 번 실려간 이후로는 좀 힘들면 잤다. 아무도 이런 나에게 공부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가만히 정리를 해 보았다. 

 '너무 공부를 잘 하면 안 돼'

 '좀 모자라는 듯이 하는 게 좋아.'

 '성적이 좋을 수록 부모님의 기대가 높아질 거잖아.' 

 '행복을 위한 준비를 하다가 죽으면 안돼잖아.' 


그때 이미 인생의 평범한 진리를 반은 깨달았나보다. 

행복하지 않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마음이 무척이나 편안해졌다. 미친 듯이 하지 않되 꾸준히 하겠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 뭐 그런 거였다. 그런데 가끔은 그게 잘 되지 않았다. 급발진하는 일이 잦았다. 조용히 누워있다가 이거다 싶으면 미친듯이 질주하기도 했다. 그러다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려고 글을 써 본다. 

 "내가 왜 이러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또 말처럼 날뛰는구나, 스톱!" 

 "그렇게 한다고 결과가 좋지는 않아!"

 "몸이 힘들어 죽겠다고 하잖아!" 

맞다. 열심히 한다고 다가 아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열심히 가면 그만큼 손해다. 방향이 중요하다. 내가 행복한가? 수시로 살펴볼 일이다. 

-돈은 많아지는 데 행복하지 않다면? 

-멋진 상대와 결혼은 했는데 마음이 점점 불편해진다면? 

-일류회사에 취업했는데 고통이 심하다면?

-남들이 추천한 곳에 갔는데 기분이 별로라면?


 행복이란 이익을 따져서 오는게 아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좋아한다. 어떤 사람은 명예를 중요시한다. 어떤 사람들은 사후 영혼의 거처를 중요시한다. 어떤 사람은 종교가 우선이다. 이 모두 외적인 것이다. 

 행복은 내 안에서 즐거워해야 한다. 내 마음이 편안한 것이어야 한다. 내게 맞는 일을 찾아서 그것을 열심히 하는 기쁨을 발견하는 일이다. 늘 내 마음을 돌보고 보살피는 일이다. 



 '지금 내 마음은 편안한가?'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나를 성장하게 하는 나의 일인가'

 '지금의 이 관계는 나와 남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인가'

 내 마음을 어지럽히고 불편하 것들은 과감하게 비워내 버리자. 나를 힘들게 하는 관계는 끊어버리자. 그럴 수 없다면 최대한의 정중함으로 대하는 것으로 정리하자.  늘 나를 우선으로 내 가슴이 기뻐하는 선택을 하자.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여주고 내가 입고 싶은 걸 입혀주자. 이 간단한 것도 잘 되지 않았다. 

-남들이 보기에 이 나이에는 이런 옷을 입어야겠지.

-남들이 보기에 이 정도의 직업은 가져야겠지.

-남들이 보기에 이 정도 돈은 벌어야겠지?

-남들이 보기에 이 정도의 차는 몰아야겠지?

-남들이 보기에 이정도의 집에서 살아야겠지?


이 망상부터 내려놓아야 행복이 시작된다. 그것이 단 5평일지라도 나에게 알맞는 집이면 된다. 자동차는 없어도 된다. 필요하다면 작은 차로도 충분하다. 도둑질하는 게 아니라면 어떤 직업이라도 좋다.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 수 있는 직업이라면 된다. 빛좋은 개살구같은 인생을 살려고 돈을 빌리고 자신을 괴롭힐 필요는 없다. 남들 말고 나 보기에 내 눈에 좋은 것이 내 행복에 도움이 된다. 모든 기준을 남에게서 나에게로 넘겨라. 그래야 숨을 쉴 수 있다. 남이라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행복해지려고 하지 마라. 그래야 행복이 시작된다.             




 


   








 

 

     



  


 


 






    



 


 이 노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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