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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숭아 Oct 19. 2022

사이코패스가 안 되는 길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사이코패스를 무서워한다. 이 세상에 뭐 그런 존재가 다 있느냐, 그런 존재는 없어야 한다. 아니 그런 존재는 없어버렸으면 좋겠다. 사이코패스들이 저지르는 범죄를 보면서 치를 떨다가 내 주위에도 그런 인간이 없을까 걱정도 된다.  우리 사회에 사이코패스인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4%라고 하는데 사실은 50%정도가 사이코패스인 듯하다. 왜 그런가 하면 삭막하고 무정한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기 때문이다. 

 며칠 전 전철에서 일이다. 지하철노조가 파업을 하는 바람에 드문드문 오는 열차에 사람들이 콩나물 시루가 되었다.  한 할머니가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의 압력이 불편하셨는지 한마디 하셨다. 그러자 옆이 청년이 대꾸했다. 

   "아이고, 왜 이리 밀지?" 

   "복잡한 전철이니까 당연히 힘들죠."

   "그래도 이렇게 밀면 ..."

   "힘들면 전철 타지 말았어야죠."

   "아이고! 다리야."

  "이 시간에 나와가지고!"


            

  숨도 쉬기 어려운 전철에서 몸싸움을 하는 와중에 티격태격하는 소리를 들으며 '이거 사이코패스 수준이군' 기분이 다운되었다.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빨리 전철을 내리고 싶어졌다.  

    사이코패스는 4%가 아니라 50%가 맞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우리  주위에도 사이코패스가 있다는 이야기다. 과연 누구일까? 설마 그 사람은 아니겠지, 절대러 그럴리가 없어 한다. 그런데  연쇄살인범이나 부모살해범도 동네 사람들한테는 인사도 잘하고 아주 선량한  사람이어서 사건을 알면 모두 감짝 놀란다고 한다. 

 "세상에 그 아이가 그럴 수가!, 내가 잘못 들었나?"  

 사이코패스인지 아닌지 진단을 해 봐야 알겠지만 사이코패스야말로 절대로 사이코패스가 아닌 척하며 이 세상을 숨어 산다고 한다. 겉으로는 직장에 잘 적응해서 살아가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깍듯하고 예의바른 사람들 중에 사이코패스가 많이 있다고 한다. 아무도 그 사람이 사이코패스인지 알 도리가 없다. 다만,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겉으로 예의바르게 살면서는 속으로는 엄청나게 힘든 상태는 아닌지, 겉으로는 밝은 얼굴로 잘 적응하는 척 해도 안으로는 억지로 그렇게 사느라고 자신을 억압하며 살아가는 건 아닌지. 그 사람의 속사정이야 다른 사람은 알 수가 없다. 이렇게 살아가는 걸 어디에서 배웠을까? 어이들은 부와 양육자에게 배운다. 아이의 감정을 받아주지 않고 윽박지르거나 수용해주지 않으면 아이는 수치와 부정을 배운다.    

 

 사이코패스도 일종의 애정결핍증후군이다. 어려서나 자라면서 양육자가  100% 아이를 수용해주고 인정스럽게 대해주고 사랑과 칭찬을 주며 성장했다면 그렇게 엇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만 그 아이를 안아주고 보살폈다면 그 아이는 그 사랑으로 바르게 자라난다. 

 가수 전진은 어려서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의 전적인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부모의 사랑이 없었어도 할머니의 아낌없는 사랑으로 반듯하게 성장하여 가수로 성공했다.  이제 길러준 엄마랑 부모도 보살피고 있다. 양육자 한 사람의 큰 사랑으로 바르게 자라날 수 있지만 양육자 자신이 애정결핍이라 중심이 서지 못한 경우가 많아서인지 지금은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좀 이상한 아이들이 보인다고 한다. 집중이 안되고 이리저리 산만하게 돌아다니고 아무나 부딪치고 때리고 교사의 말을 듣지 않고 반항하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백지로 태어나서 사람을 대하는 법을 양육자가 자기에게 하는 그대로 배운다. 무시나 방치를 당한 아이들은 주위 사람들의 말을 무시하고 자기의 욕구조차 잘 표현하지 못한다. 제멋대로 하면서도 정작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 지도 잘 모른다. 뭔가를 원했을 때 즉각 해결받지 못했기에 불편한 몸 상태나 어색한 주변 환경을 인식하지도 호소하지 못한다.  오직 예스만 하는 부모가 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럼 요즈음 젊은 엄마들은 사랑을 받고 자랐을까? 대부분 바쁜 부모 밑에서 기저귀도 빼지 못한 채 어린이집으로 유치원으로  뺑뺑이 돌면서 성장하다 보니 충분한 수용과 인정스런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경우가 많다.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이 어떯게 사랑하겠는가? 부모가 내게 했듯이 똑같이 자식에게 한다. 아이는 몸만 성장할 뿐 마음은 점점 고독해지고 텅 비게 된다. 그 외로움과 서러움이 쌓여서 에 분노와 복수심까지 발전한다. 그래서 사람을 대리거나 죽이는 것은 어렸을 때의 양육자를 향한 복수라 할 수 있다. 몇 십년 전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쓸모없는 돌대가리라는 폭언을 들으며 자랐을 때 그 수치와 분노는 마음속 바위가 되어 아이의 인생을 어둡게 만들고 만다. 

         


  이제 어른이 된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할까? 

 그 마음을 풀어내야만 한다. 얼히고 설킨 마음의 실타래를 풀어내야 한다. 그래야 나도 모르게 올라오는 억울함과 치밀어오르는 화를 삭힐 수 있다. 누구나 다 한번쯤 매를 맞고 폭언을 듣고 자랐다. 그러니 누구나 할 것없이 다 풀어내야 한다.  폴어내려고 막상 자리에 앉으면 가슴만 답답할 뿐 말이 안 나와서 글을 썼다. 펜을 들고 빈 노트에 온갖 말을 쏟아냈다. 그 내용이란 따지는 말, 화내는 말,억울하다는 표현, 호소하는 말부터 온갖 찰진 욕들로 가득찼다. 그렇게 한바탕 쏟아내면 속이 후련해졌다. 그리고 노트는 발기발기 찢거나 불태우곤 했다. 내가 없으면 이 세상도 없다. 그러니 내 중심으로 나를 힘들게 한 존재들을 다 소환해서 상상 매타작을 하고 나니 시원했다.  재미난 것은 그러고 나서 그 분을 만나면 왠지 미안해서 밥도 사주고 잘해주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사이코패스에서 벗어나는 법이 있다면 공감과 수용을 잘하는 내가 되면 된다. 먼저 나의 감정과 생각에 수용하고 공감하고 칭찬하고 격려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모든 인간관계는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먼저 내가 나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얼마나 목마르게 그리운 사랑이던가, 얼마나 보고싶은 다정한 부모님의 음성이던가, 그 사랑을 스스로에게 퍼부어 주어라. 밥 한끼를 먹더라도 반찬을 챙긴 제대로 차린 밥상을 자기 자신에게 대접해야 그게 사랑의 시작이다. 옷도 자기 마음에 들고 자기를 돋보이게 하는 옷을 입어야 사랑이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자신을 사랑하면 몸에 나쁜 음식이나 해로운 것들을 먹지 않는다. 운동을 해서 건강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자기 자신에게 따뜻하게 말을 해주고 위로해주고 안아주는 사람은 절대 사이코패스가 될 수 없다. 사랑은 연습이다.      


 내가 사랑스런 사람이 되면 저절로 비슷한 사람들만 내 곁에 다가온다. 설사 사이코패스가 내 주위에 있다고 해도 나에게서 뭔가 따스한 기운을 느끼며 잠시나마 마음이 평온해질 것이다. 자기사랑만이 차갑게 식어가는 심장을 따스하게 덥히고 다시 이 세상을 살아보겠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이 세상을 힘차게 도전하고 싶은 용기를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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