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ㅇㅁㅎ Jan 20. 2020

6개월 만에 퇴사가 나에겐 최선이었다.

나의 뒤통수와 손은 그 뜨끈한 액체로 범벅되어 있었다.

수치로 증명할 수 있는 성과 만들어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다

스타트업지원재단에서 인턴십으로 시작할 때 나는 이미 절박했다. 졸업을 했는데, 기존에 한다던, 이미 부모님이 썩 좋게 보지 않는 돈 안 되는 비영리 쪽 취업도 안 하고, 빅데이터 하겠다고 갑자기 덤볐다가 깨갱하고 돌아선 나에게 들어온 마지막 기회와 같았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그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 영화에서나 보던 으리으리한 한남동 오피스, 유럽, 남미, 다국적 팀원들과 함께 일하는 디지털마케팅에이전시 합류. 스스로 너무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부모님께 당당하게 말하기 힘들었다. 듣도 보도 못한 곳에 귀하게 키운 막내아들이 저 월급을 받으면서 취업을 했다라... 뭐 이번에도 싸울 게 뻔했기 때문이다. 흠... 어떻게 해야 언쟁이 없을까 고민 끝에 다양한 시나리오를 돌려봤지만

뭐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소규모 언쟁이 끝난 후 부모님은 집으로 가셨고 카페에 혼자 남은 나는 서러움에 눈물을 흘리며,


"부모님 한테 잘 말했어? 어떻게 됐어?"


다정한 형의 걱정 어린 메시지에 답변을 썼다 고치기를 반복했다.


예상 못한 것도 아니고, 어차피 결과로 말해줘야지 뭐. 여기서 경력 제대로 쌓아서 연봉 엄청 올려서 이직할 거야. 그땐 진짜 아무 말도 못 하겠지


그러니까 내 말은 7월, 나의 텐션이 상당히 올라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내가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것도 6개월 만에..


'벌써 그만두면 다음 취업을 할 때 불리하지 않을까'

'한 길로 파지 않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커리어 패스 이러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텐데...' 등 남들 하는 고민, 나도 회사 다니며 다 했다.


그 모든 고민을 한 순간 하찮게 만드는 그 일이 있기 전 까지는.


그날도 말 한마디 안 하고 내 일 집중해서 하다가, 커피를 마실 겸 커피머신으로 향했다. 몸이 찌뿌둥하여 기지개를 한번 켠 순간,

.

.

.

.

얼마간 기절을 했고, 일어났을 때는 직원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뭐지? 뭔 일이지? 나 때문인가? 난 왜 신음을 하며 일어났지? 근데 이 따뜻함은 뭐지?


뒤통수에서 뜨끈한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소방관이 곧 도착했고, 나의 뒤통수와 손은 그 뜨끈한 액체로 범벅되어 있었다. 아픔보다는 민망함에 히죽히죽 댔지만, 그날 나는 모두의 걱정 어린 시선을 받으며 그렇게 119 응급차에 타고 대학병원을 향했고, 다섯 바늘을 꿰맸다. 그리고 그날은 회사에서 20시간을 일하고 퇴근한 이틀 뒤였다.


간단한 검사와 응급조치를 마치고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쓰러지면서 부러진 티타늄 안경을 온라인에 수리 요청 맡기고 그날은 모처럼 만에 1시간 정도만 야근을 했다. 매니저님이 만약 원하면 유급휴가를 줄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괜찮다 그랬다.


왜냐하면 다음날 나는 팟캐스트 녹음이 잡혀있었고, 아직 그 흐름을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고객사에게 전해줄 기획을 마무리하지 못했고, 내 계획은 오늘까지 초안을 잡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는 요구받은 웹사이트 페이지의 수정할 부분을 아직 수정하지 못했고... 왜냐하면.......

그리고 다음날부터 다시 야근에 들어갔다. 그때는 그냥 힘들어서 쓰러졌겠거니 했고, 며칠 뒤 경과를 지켜보려 병원에 갔고, MRI를 검사 날짜를 정하고 다시 일하러 돌아갔다. 폭풍 같은 업무가 지나가고 살짝 시간이 생겼을 때 비로소 한 걸음 뒤로 가서 나를 볼 수 있다. 그때 떠오른 웹툰의 한 장면이 있었는데...

'죽음에 관하여' 17화 중

돌아봤다. 이 회사에서 내가 어떻게 일했는지를. 사실 이때만큼은 아니지만 8월에 떠난 여행에서 극심한 어지러움과 고열을 호소하며 쓰러지면서 공휴일과 주말을 포함 일주일 정도 회사를 못 나갔다. 이때에도 첫날에 슬랙으로 업무지시가 내려왔고, 나는 천박한 리모트 워크를 하며, 지금 그럴 건강상태가 아니라고 업무가 오는 것을 막았다. 신경과를 갔을 때 다른 원인을 찾을 수 없었고, 과도한 업무가 원인인 것 같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해주셔서 그러려니 했다. 입사와 동시에 야근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때부터 1달은 칼퇴를 하려고 노력했고, 건강을 차츰 되찾아갔다. 하지만 그 뒤로 고객사가 밀려들어 야근은 다시 일상화가 됐고 저 비극이 일어난 것이다.


블랙아웃이 되고 집에 간 날 뒤통수에 하얀 거즈가 있으니,

해외 나갈 때면 지난 주 그것이 알고싶다는 봤니?라고 말할 정도로 늘 걱정 많은 어머니는 머리가 왜 그러냐고 했다.


"아 떨어진 펜 줍고 일어나다가 책상 모서리에 박았어~"

"조심 좀 하지...좀 일찍일찍 다녀~ 아무리 일도 좋지만 잠을 그렇게만 자면 되니"


나는 돌아가는 버스에서 생각해낸 하얀 거짓말을 내뱉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때는 별 감정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 이때를 생각하니,

내가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일 하다가 저렇게 됐는데 부모님에게 어떤 거짓말을 해야 할까 그 순간에도 고민을 했네



서러움이 올라왔다.


11월 말, 나는 업무시간 단축을 제안할 겸 CFO님께 미팅을 요청했다. 말을 하기 전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왔고 CFO님은 업무시간은 전혀 상관이 없는데 현재보다 더 많은 일을 해줘야 할 것을 전달하셨다.

.

.

그리고 일주일 정도가 지나 나는 퇴사를 말했고,

나를 더 사랑하기로 다짐했다.

작가의 이전글 아버지에게 투명인간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