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환 마케터 되다.
오? 대박인데 이거?
그리고 세미나에서 배운 것 중 가장 인상 깊은 기술을 한번 시전 했는데, 바로 오픈율이 5% 넘게 뛰었다. “효과 있는데?” 스티비에서 보내주신 세미나 자료, 연사의 블로그 스티비 보고서 등을 닥치는 대로 분석했다. 내가 세미나를 갔다는 사실을 SNS로 공유했을 때 정보 좀 달라는 친구들이 있었고, 당시 내가 카드 뉴스를 공부할 때라 이거를 잘 정리해서 카드 뉴스로 배포하면 좋겠다 싶었다. 3만 명이 좋아하는 재단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관리하며 저작권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던 터라, 만들기 전 스티비 측과 연사에게 연락을 취해 카드 뉴스를 만들어도 될지 여쭤보았다. 문제가 없다는 답을 받고 소중한 주말 오후를 희생해 카드 뉴스를 배포했다.
카드 뉴스에도 연사님이 말해준 제목 짓는 법을 적용했고, 사람들이 꽤나 찾으려던 정보였는지 생각보다 공유하기와 좋아요가 많이 눌렸다. 스티비에서도 공식 페이지에서 공유하기를 해주셨다. 그렇게 뿌듯함을 느끼고, 세미나에서 배운 것과 A/B테스트와 동시에 진행하며 뉴스레터는 데이터가 일관적으로 오르진 않았지만 오픈율 2배, 클릭률 3배를 찍는 등 성과를 보였다.
그리고 6월. 내 인턴은 마지막 달이기에 원래는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며 다음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려던 때였다. 마케터가 끌린다는 아주 막연한 그림만 그리고 있을 때고 퍼포먼스 마케터, 브랜드 마케터, 콘텐츠 마케터 등 너무 다양한 마케터가 있길래 뭔 차이인지 알아보려고 하던 차였다. 그런데…. 그럴 시간이 없었다. 핑계처럼 들리겠지만 정말 절대적인 시간이 나오질 않았다. 당시 사이드 프로젝트로 스타트업 주니어들을 위한 세미나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세미나는 아무래도 요구가 많을 것 같고, 나의 바람도 조금 반영돼 마케터 편으로 잡았다. 우리 세미나의 연사를 찾던 중 이메일 마케팅에서 뵌 그분을 섭외하기까지 된 것이다. 섭외를 담당해서 이 연사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세미나가 며칠 안 남은 상황이라 관련해서 급하게 여쭤볼 게 있으신가 해서 받았는데 예상과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지금 하는 일 언제까지 해요?
뭐 여쭤보시니까 이번 달이 마지막이라고 했는데, 본인이 마케터를 구하는 중이라고…. 흠…. 근데 나는 뭐 그래도 뭐하는 곳인지는 알아야 가든지 말든지 하기에 직무소개 페이지를 요청드렸다. 바로 톡이 와서 들어가 봤는데, 롸? 죄다 영어다. 뭐지 이게? 난 로켓펀치나 사람인 뭐 그런 거 생각했는데 영어다. 영어인데 어려운 영어도 보인다. 이건 분명 전문 영역이다. 내가 급이 안될 거 같은데…. 일단 봐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고 연락을 드렸고, 연사님은 지금 뭐 따로 준비할 필요는 없고, 그냥 본인 CV 보내달라고 하셨다. 문맥상 뭐 이력서 같아서 알아듣는척하며 알겠다고 했다(솔직히 지금 글 쓰는 이 순간에도 CV 뭐의 약자인지 까먹어서 구글링 했다).
그리고는 옵션을 줄 테니 가능한 시간 있으면 한번 회사 구경 한번 와서 편하게 이야기하자고 하셨다. 사실 이런 제안이 들어오면 굉장히 머리가 맑아지고 또렷해지는데, 감정의 동요도 없고, 다 귀찮았다. 이미 번아웃이 찾아온 거다. 이거와 관련된 생각을 빨리 정리하기 위해 며칠 뒤 말해준 주소로 찾아갔다.
복장이 참 자유롭다는 느낌이 강했다. 모자를 쓰고 계셨고, 박시한 티셔츠… 이것이 바로 힙인가...?ㅎㅎ 직원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곧바로 미팅룸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모르는 분이 한분 같이 들어오셨다. 본인을 이사라고 소개하셨다. 이사님도 모자를 쓰고 계셨다. 이사는.. 이사라면…? 양복 아니면 단정하게라도 입어야 하지 않나?라는 선입견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중이었다. 나 그리고 맞은편에 연사님과 이사님이 자리했다. (편하게 이야기 한다매? 편하게 이야기 한다매!! 이사랑 어떻게 편하게 이야기해!!) 내가 사실 딱딱한 면접을 한번? 인가 밖에 보질 않아서 모르겠지만, 딱딱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다면,
“5년 뒤에 뭐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얼마 전에 들었던 질문과 같은 질문을 듣게 되네요. 흠… 모릅니다. 당장 일주일 뒤 제가 뭘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5년 뒤를 알 수 있을까요? ”
(알아볼 수 없는 영어로 된 툴 20개인가 들이밀며 하나씩 가리키며) “이 중에서 다룰 줄 아는 것 있어요? GA도 몰라요? 슬랙도?"
모릅니다. 몰라요. 모르무니다. 모른다데쓰. 아돈노...! GA가 구글 애널리틱스의 약자인지 그때 알았다. 쫄지말자…. 구글을 알면 된 거다. 난 쌍따옴표도 활용해 구글링을 할 줄 안다.
“혹시 저희에게 물어볼 거 있어요?”
“아…. 뭐 아는 게 있어야 질문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나라면 나 안 뽑음) 분위기가 뭐 솔직히 말하는 분위기였던 것도 있는데 난 번아웃이었다. 이사님이 귀신같이 눈치를 채시고 많이 지쳐 보인다고 하셨다. 그래서 지금 상황을 솔직히 다 전달했다. 너무 여러 개를 동시에 하고 있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같이 몰려서 번아웃 온 거 같다고.
"어떤 사람이 되고싶어요?"
"저는 실력 갖춰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싶습니다. 되도록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연사님이 근데 “아 저는 클리어해진 것 같아요. 만약 돈이나 그런 걸 말했으면 조금 더 생각해볼 것 같은데. 연봉이나 그런 부분은 이 이사님과 말하셔서 받을 수 있는 한 최대한 받으시고, 저한테 빼먹어갈 부분 다 빼먹어가세요” 이 문장은 아직도 선명하다. 단어 하나하나가 귀에 알알이 박혔다. 뭔가 이미 같은 팀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당황해서 “뭐 지금 그럼 제가 결정을 하면 같이 일을 하는 건가요?”
“네 7월 1일까지 현재 직장에서 일한다고 했으니까 끝나고 바로 합류하면 좋을 것 같아요.”
실업자 100만이 넘는 이 시기에 이렇게 쉽게? 하지만 난 번아웃이었다. 일할 기회가 주어져도 번아웃은 번아웃이다.
“저 그럼 일단 바로 일은 힘들 것 같아요. 생각할 시간도 필요하고, 일 시작해도 일주일은 쉬고 할게요.”
“음…. 그래요 그럼 결정은 언제 가능해요? 우리 세미나에서 보니까 그때 말해줘요.” 5일 뒤였다. 이 기간 동안 이곳저곳 여쭤보고 구글링을 해봐도 크게 감이 오지는 않았다. 세미나 전날 장문의 카톡을 남겼다. 뭐하는 곳인지 잘 모르겠으니, 내일 다시 한번 개괄적으로 이야기해줄 수 있냐고.
세미나를 마치고 설명을 들으니 5% 이해한 게 한 30% 된 것 같다. 여기 입사를 결정한 이유는 뭐 다양하겠지만, 가장 큰 것은 이 분 옆에 있으면 '성장은 엄청 하겠구나' 그게 느껴졌다.
지금은 입사한 지 16일 차고 밤 11시 16분. 그 연사가 내 옆에 있다. 사수이자 대표로. 난 이렇게 마케터가 되었다.(발행하는 지금은 30일 차 밤 8시 17분 그새 2주가 지났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