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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ㅁㅎ Sep 22. 2019

솔직히 우리가 하는 일을 장애인이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그들이 콘텐츠를 제작하고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나

 여기 두 명의 아이가 있다. 한 아이는 같은 또래 아이들이 금방 이해하는 것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다른 한 아이는 자꾸 혼자 똑같은 말을 중얼거린다. 그러더니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대화가 쉽사리 되질 않는다. 이 두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사회성이 부족하니까, 사회성 교육을 하면 된다. 이들의 행동이 오해와 편견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다. 다른 방법은...? 쉽게 떠오르지 않고, 뭐 별다른 게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놓친 것은, 선한 일(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과 돈 버는 일을 분리시켜야 한다는 강박이었다.

 나는 운이 좋았다.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소셜 섹터를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경제를 공부하며 베어베터라는 사회적 기업을 알게 됐다. 여기는 발달장애인이 일하는 회사로 유명하다. 발달장애인이 한두 명도 아니고 발달장애인으로 구성이 돼 있다고? 영화로도 풀기 어려운 이 난제를 어떻게 해낸 거지?

이 영화의 주인공 초원이는 발달장애인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대학에 진학하고, 졸업을 한 뒤 취업을 했다. 주변 친구들 대부분이 이렇고 대학을 가지 않고 취업을 한 경우도 종종 있다. 발달장애인은 다르다. 발달장애인 중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은 극소수이다. 그럼 취업을 하는가? 주변에 발달장애인이 일을 하는 경우를 본적, 아니 들어본 적은 있는가? 그렇다면 이들은 어디로 갈까? 대게는 집으로 다시 돌아간다.


 이들이 집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먼저 집에만 있기 때문에 안 그래도 부족한 사회성을 가진 발달장애인의 사회성은 더 낮아진다. 가족은 어떤가? 부모님, 대게는 어머니들이 아이를 위해 하루 종일 케어를 해야 한다. 아무리 자기 배 아파 낳은 자식이지만 발달장애인을 하루 종일 돌본다는 것은 굉장한 정신적, 육체적 노동이다. 짜증과 화가 나기도 할 텐데 본인의 잘못이라는 죄책감이 커 그러지도 못한다. 만약 아이가 학교에 갔을 때 어머니가 경제활동을 했다면? 중지해야 한다. 수입이 줄어드는 것이다. 발달장애인 자녀가 집으로 돌아간다는 건 이렇듯 가족의 문제로 심화, 확대된다. 발달장애인의 고용은 이 가족에게 절실한 것이다.

사실 학교를 지속적으로 다니는 것도 장애인에게는 쉽지 않다. 출처 : 서울신문, '학부모들 무릎 꿇고 호소한 특수학교 개교 또다시 연기'

 아니 그런데, 솔직히 우리가 하는 일을 발달장애인이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그들이 발표자료를 준비해 발표를 할 수 있나? 그들이 콘텐츠를 제작하고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나? 이런 질문에 '없다'라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시작점이 베어베터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베어베터는 '우리가 하는 일을 발달장애인이 할 수 있느냐' 묻는 것이 아니라, '발달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느냐' 묻고 있다.


 발달장애인은 복잡한 일을 못한다. 반면, 비장애인이 지루해하는 단순 반복 작업을 더 효율적으로 해낸다. 발달장애인은 하나의 복합적인 일을 분업화해 단순 반복 작업으로 세팅하면, 비장애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일을 해낼 수 있다. 기억력이 특화된 발달장애인은 한번 본 것을 뚜렷하게 기억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이들에게 어디를 가야 한다고 하면 정확히 그곳을 간다. 발달장애인은 베어베터에서 쿠키를 만들고, 명함을 만든다. 발달장애인은 고객사에게 커피를 배달하고, 꽃을 배달한다. '발달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느냐'에 대한 답을 찾고 베어베터는 이제 '발달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더 있느냐'를 묻고 있다.


출처 : 베어베터

 그런데, 고객사가 발달장애인이 만들었다고 해서 동정심에 이들의 상품을 구매해야 하나?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베어베터도 그런 동정심을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경쟁 업체와 비교해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베어베터 제품을 사는 게 합리적이다. 기업은 장애인을 의무적으로 고용을 하지 않으면, 부담금을 내야 한다(2019년 기준 장애인 의무고용률 - 국가 및 지자체 - 3.4% / 민간 사업주 - 3.1%). 단, 기업이 직접고용을 하지 않더라도,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또는 장애인 표준사업장의 제품을 구매한다면, 부담금이 감면된다. 구매자 입장에서 품질도 비장애인이 만든 곳에 뒤지지 않고, 부담금 감면받고,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했다는 자부심도 느낄 기회를 굳이 놓칠 이유는 없다.


 어떻게 이런 사업을 구상할 수 있을까. 베어베터 이진희 대표의 자녀는 발달장애인이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발달장애인의 특징을 잘 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베어베터 김정호, 이진희 대표는 각각 NHN 공동창업자, NHN 인사팀이라는 과거 이력이 있다. 여기에 또 하나의 힌트가 있었다. 비즈니스에 대한 확실한 이해, 그리고 그때 쌓은 인적 네트워크가 이 문제 해결에 있어 큰 실마리를 제공했다. 나는 이때 깨달았다.


선한 일(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과 돈 버는 일을 분리시킬 필요가 없다는, 아니 오히려 비즈니스를 더 잘 이해해야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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