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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min Jul 11. 2022

오사카의 낭만

 

 간사이 공항에 내려 난바역을 지나 우메다 역에서 헤매기를 반복하고, 겨우 도착한 숙소는 어딘가 허름해 보이는 작은 집이었다. 나는 현지인의 집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 숙소를 에어비앤비로 잡았는데, 막상 와보니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한 집에서 몇 명의 외국인들이 있었고, 방음이 잘 되지 않는 다다미방이라 온갖 소리가 섞여서 들렸다. 내 옆방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온 남자 둘이 있었는데 어찌나 시끄럽던지, 그 나라의 특유한 리듬이 아침에 일어났을 때도 들렸다. 나는 이 동네만의 특유한 분위기가 있기를 바랐다. 정리가 되어있지 않지만 단정한, 꽤나 지저분하지만 정겨운, 그런 곳.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다. 가져온 캐리어에 주저앉아 10분을 기다렸을까, 저 멀리서 뛰어오는 남자가 보였다. 머리는 장발에 안경을 끼고, 수염은 밀다가 만 건지 한쪽은 풍성한데 한쪽은 그렇지 않은, 꼭 만화에서나 볼 법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어색하게 인사를 주고받은 뒤, 그에게 방을 안내받고 키를 받았다. 나는 그에게 이 근처에 맛있는 식당이 있는지 물었다. 나만의 어색함을 푸는 대화법이다. 그는 어으음 하는 이상한 추임새를 내더니, 갑자기 배가 고프냐고 물었다. 글쎄, 딱히 배가 고프지는 않고 딱 라멘 하나만 먹으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이 근처에 혹시 라멘집이 있다면 추천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는 눈을 부릅뜨며 당연하다는 듯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이 근처에 기가 막힌 곳이 있다며 말이다. 이 사람, 라멘 얘기를 안 했으면 어쩔 뻔했어.


 숙소에서 5분 정도를 걸었을까, 도착했던 라멘집이 문을 닫았다. 그때가 토요일 저녁 9시를 넘었던 때라,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냥 편의점 컵라면을 먹겠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런데 그는 자꾸 다른 곳을 가자며 핸드폰으로 이곳저곳을 검색하는 것이다. 꼭 나에게 일본음식을 먹이고 싶은 사람 같았다. 그 사람은 한국 교포 3세 정도 되는 사람이었는데, 나랑 대화할 때 통역이 어려워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하곤 했다. 그들은 일본어와 한국어를 번갈아 쓰다가 근처 라멘집을 대신할 맛집을 얘기하고 있었고, 곧이어 나에게 좋은 곳을 알고 있다며 가보자고 하는 것이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인상을 찌푸린 채로 따라갔다. 그냥 아무거나 먹어도 괜찮았는데. 뭘 자꾸 먹이고 싶은 건지 참. 가는 동안 말 한마디 없던 우리는 어딘가 음산한 곳, 가로등 하나 없는 길 골목에 멈췄다. 그리고 바로 옆 골목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희미하게 눈에 띄는 가게가 있었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유일하게 밝은 간판 속, 알 수 없는 일본어와 잉어를 닮은 물고기 그림이 그려져 있었던. 집주인은 손가락으로 간판을 가리키며 '아소코!'라고 소리쳤다.


 

 그가 가게 문을 열었을 때, 머뭇거려졌다. 배도 고프지 않고 편의점의 아무 인스턴트 음식을 먹으면 충분할 것 같은데 괜히 부담이 되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진심이 있는 웃음과 천진난만한 얼굴을 보고는 도저히 발을 돌릴 수 없었다. 가게 안에 들어가니 일본풍의 잔잔한 재즈 노래와 가게 주인의 ‘이럇샤이 마세!’가 들렸다. 가게는 웅장한 간판과 다르게 소박하고 아담한 곳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법한 장면을 직접 보니 떨렸다. 내가 정말 일본에 왔구나, 일본 초밥을 먹어보는구나 말이다. 나는 눈을 감고 숨을 들이마셨다. 아아. 오사카 생선 냄새..

 

 나는 바 형식으로 된 자리에 앉았다. 옆자리에는 50대 즈음되어 보이는, 중절모를 쓰고 있던 남자가 신문을 읽고 있었다. 내 숙소의 집주인과 가게 주인은 원래 알던 사이였는지, 맥주를 마시며 서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이곳저곳을 둘러보고는 생각했다. 이곳은 뭐랄까, 산만하지 않구나. 딱 동네 사람들이 한 잔 하러 올법한 곳이구나. 정감이 있어 좋다. 맛은 어떨까.


 가게 주인에게 메뉴판을 받았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전부 일본어였다. 어지럽다. 이건 뭐고 저건 뭐고 여긴 어디? 급하게 집주인을 쳐다봤는데 웬걸, 맥주를 원샷하고 자리를 일어나는 것이다! 그는 나에게 잘 먹고 오라며 손짓으로 인사를 하고 나가버렸다. 나는 말없이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갑자기 든 의문점. 나는 어떻게, 왜 이곳에 있는가 말이다. 가게 주인은 팔짱을 끼며 내 주문을 기다리고 있어 일단 메뉴판의 가격을 봤다. 그런데 일본은 일본인가 보다. 초밥 가격이 한국과는 다르다. 여기가 진짜 맛집인가 싶을 정도로 가격이 비쌌다. 코스요리가 기본이었고 제일 저렴한 게 5,000엔이다. 아니, 가로등도 없는 좁은 골목길의 한적한 초밥집에 코스요리라니. 나는 손가락으로 제일 저렴한 메뉴를 가리키며 ‘플리즈..’라고 말했다. 과연 내 마음을 알아 주실 런지..

 

 가게 주인은 ‘오케이!’를 외치며 칼을 스윽스윽 갈더니 초밥을 품위 있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래 뭐, 기왕 이렇게 된 거 일본에 온 첫날 제일 비싼 거를 먹어보자. 이것도 인연이겠지. 그의 칼 솜씨는 우아했다. 죽어있는 생선을 다듬는 것인데도 마치 팔딱팔딱 뛰는 듯한 생기가 보였다. 때깔이 좋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먹음직스러웠다.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 군침이 돌았다. 드디어 나온 첫 음식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어초밥이었다. 간장에 와사비를 섞어 조심스럽게 찍어 먹어봤다. '음?', 내 입맛이 고급스럽지 않아서 그런가, 한국에서 먹어본 것과 전혀 다를 게 없었다. 그냥 맛있다, 맛있구나 정도. 갸우뚱하며 다시 먹어보지만 맛은 똑같다. 적잖게 실망했다. 이런 건 한국에서도 많이 먹어봤는데.


 그렇게 20분 즈음 지났을까. 네다섯 개 접시를 먹으니 배가 부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직 코스요리의 절반도 안 나온 것 같은데 끝까지 다 먹을 수 있을까? 그냥 포장한다고 해도 될까? 그렇다고 그냥 떠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엉덩이에 땀이 찼다. 가게 주인은 내 표정을 보고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엄지를 들어 올렸다. 부들부들 떨리는 엄지를 보며 집에 가고 싶어졌다.

 

 그러자 가게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숙소 집주인이 다시 돌아왔다. 그는 나를 보며 '다이죠부 데스까?' 라 말하며 내 옆자리에 앉았다. 나를 버리고 갈 땐 언제고! 뭐야 당신!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곳에 왜 온 건지 궁금했다. 그러자 그는 어눌한 한국말로 '초밥이 입맛에 맞놔요?'라고 물었다. 알고 보니 그는 내가 주문은 잘하고, 밥은 잘 먹고 있는지, 혹은 자신이 추천해 준 초밥이 입맛에 안 맞는지 걱정이 돼서 와본 것이었다. 나는 이런 호의적인 모습에 어쩔 줄 몰라, 고맙다는 말 대신 초밥을 건네주었다. (사실 고맙다는 말을 잊어버렸다) 하지만 그는 밥을 먹고 왔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집주인과 가게 주인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가게 주인이 나에게 말했다. '돈은 먹은 만큼만 받을 테니까 먹기 힘들면 그만 먹어도 좋습니다'. 어지간히 내 표정을 보기가 힘들었나 보다.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남은 음식을 포장해도 되냐고 물었지만,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그러면 맛이 없어진다고, 다음에 또 오라고 가슴에 손을 얹으며 고개를 꾸벅였다. 나는 기분이 좋았던 건지, 미안함과 안도감이 들었던 건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사람 마음을 보며 장사를 하는 곳이라고. 웅장한 간판, 평범한 초밥, 따듯한 사람 그리고 오사카의 낭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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