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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min Apr 26. 2022

소소하다, 행복하다

 아침 6시 15분, 저절로 눈이 떠진다. 분명 6시 30분에 알람을 맞춰놨는데 도대체가 알람을 쓸 일이 없다. 아침형 인간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어제는 넷플릭스를 늦게까지 봐서 그런지 눈도 귀도 퀭하다. 하품과 함께 실눈으로 핸드폰을 켠다. 밤새 연락 온 건 없는지, 주식 상황은 어떤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지만 30초 만에 핸드폰을 다시 꺼버린다. 역시나 실속이 없는 장치다. 일어나서 아침밥을 먹는다. 메뉴는 밥과 각종 반찬들, 그리고 닭가슴살을 꼭 먹는다. 다이어트가 아니라 벌크업. 요새 웨이트에 푹 빠져서 운동유튜브를 많이 본다. 김종국은 너무 멋진 사람인 것 같다. 나도 언젠가 등신(神)이 되어야지


 7시 30분, 준비를 마친다. 가방 안에는 운동복과 도시락, 프로틴 가루가 들어있다. 물론 도시락이라고 해봐야 내가 직접 만드는 건 아니고, 포장지로 된 음식을 가져간다. 요새는 밀키트나 간편 식품들이 참 잘 나오는 것 같다. 나는 옷을 입기 전날에 뭘 입을지 대충 결정하곤 하는데,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완벽하게 실패해 버린다. 역시 이미지 트레이닝은 현실과 다르다.에잉.


 신발을 신고 집을 나와 엘리베이터 거울을 볼 때는 머리도 엉망, 옷도 맘에 안 든다. 요새 야근을 해서 그런지 얼굴은 푸석하고 괜히 한숨만 나온다. 하지만 괜찮다. 나에겐 마스크가 있다. 오늘도 마기꾼으로써 시크한 척 출근을 해보겠다. 아파트 문을 나서자마자 내가 하는 것은 바로 하늘을 보는 것. 구름이 이쁜 날엔 상쾌한 음악을 듣고 먹구름이 낀 날은 슬픈 음악을 듣는다. 나는 날씨와 계절과 사람을 참 많이도 탄다.

나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항상 가방을 벗어 손으로 든다. 내 빵빵한 가방에 남들이 불편해할까 봐, 혹은 그래야 내가 맘이 편해서 그렇다. 예전에는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책을 들고 다녔는데 요새는 가방 안에 책을 넣을 공간이 없어 전자책으로 읽게 된다. 물론 종이책만의 고유한 느낌이 좋지만, 그건 집에서 남들 눈치 안 보고 편하게 읽으면 더 좋은 것 같다.


 어느 날은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그날따라 사람이 왜 이리 많은 건지. 기다리는 걸 싫어해 한참을 망설이다가 사람이 적은 옆 구간으로 옮겨 줄을 섰다. 경로석이 있던 구간이었다. 지하철이 도착해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들은 마치 삶은 콩나물 같았다. 붐비는 사람들 속에서 내 가방과 핸드폰은 꼭 지키노라 다리에 힘을 팍 준다. 하체 운동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나는 노약자석 통로 쪽에 서있었다가 그 자리에 앉은 어느 할머니랑 눈이 마주쳤다. 할머니는 내 가방을 들어준다는 제스처를 보여줬지만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뭔가 부끄럽기도 하고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도 모르겠다. 한 정거장이 지나자 또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이번에는 눈웃음을 지으며 아까와 같은 제스처를 나에게 보낸다. 나도 질 수 없어 두 번의 절레절레와 방끗 눈웃음을 추가하여 공손하게 거절하였다. 할머니는 내가 무거운 가방을 드는 게 신경 쓰이셨는지, 지하철이 움직이는 내내 나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려는 것 같았다. 나는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부끄럽기도 하고 낯설기도 해서 그런지 몸이 살짝 달아올랐다.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땐 가방은 없고 책만 들고 출근을 했었는데, 내 앞에 앉은 할아버지에게 묘하게 눈길이 갔다. 그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라고 부르기엔 굉장히 인자한 모습이었고, 그렇다고 아저씨라고 부르기엔 주름과 흰머리가 많았다. 성인 손바닥만 한 아기 모자를 뜨개질하는 모습을 보고 오래전부터 많이 해온 솜씨구나 하며 속으로 감탄했다. 뭔가 웃으면서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마 손주 것이겠구나 확신했다. 직접 만든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은 정결하고 순수하고 아름다워서 누가 봐도 그런 거겠구나 싶었으니까. 옆자리의 다른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아기 모자네요?

-네 손주 녀석 주려고요.

-모자가 참 이쁘다. 아이가 참 좋아하겠어요.


 그 말을 듣고 까르륵 웃는 할아버지.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고 인상 깊었던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 손주 녀석은 태어난 것만으로도 이미 효를 다했음이 분명하겠다. 보는 사람마저 이렇게 웃음이 나오는데 직접 만드는 사람의 기분은 어떠할까.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며 무언가를 만들고 그걸 줄 생각에 잠 못 이룬 밤을 얼마나 지새운 걸까. 나도 할아버지가 될 즈음엔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다시 책을 펴냈고 우연찮게 봤던 첫 단어가 ‘애정’이었음을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오늘 저녁은 유튜브 말고 글이나 적어봐야겠다. 제목은 음..소소하다, 행복하다. 그래 그게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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