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의 말이었다. 추석이 막 지난 즈음이라 집보다 시골에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무쪼록 조심히 오라는 할아버지의 말에 어릴 때나 지금이나 나이를 먹어도 자식은 자식이구나 싶었다. 경기도 이천에서 부산까지 가는 길. 중간중간 휴게소에 들를 때마다 선물을 샀다. 안동휴게소에서는 고등어를, 영천휴게소에서는 사과를. 먹지도 않는 고등어를 산 이유는 오로지 남을 위한 마음이었다. 5시간이 걸려 도착한 부산터미널에서 택시를 탔다. 어디로 가시냐는 질문에 숨을 들이켰다. 벌써부터 옛 시골냄새가 그윽하다. 기장시장으로 가주세요 아저씨.
꾸불꾸불한 철마 국도변을 지나는 길에는 과일가게가 늘여져 있었다. 그림으로 그려진 간판 속 포도는 보라색으로, 사과는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어느 검은색으로 보였던 그림은 무슨 과일이었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차를 잠시 세워달라 부탁했다. 멈췄던 곳 앞의 과일가게 이름은 '과일상회'였다. 배라던가 감이라던가 싱그러운 과일들이 가게 앞에 나란히 전시되어있는 걸 보면 가게 이름이 참 수수하구나 싶었다. 그중에서도 토마토가 가장 눈에 띄었다. 참, 할아버지가 토마토를 좋아하시지. 가게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토마토 맛있나요?”
“그럼요 맛있지요.”
“하나만 먹어봐도 될까요?”
“예예. 하나 드셔보셔잉.”
호쾌한 주인장 모습에 이건 맛이 없어도 사야겠구나 싶었다. 한 입을 베어 먹었다. 새콤달콤한 것이 마음에 들어 결국 두 봉지를 사버렸다. 휴게소에서 산 명절 선물은 충분했는데 토마토는 굳이 왜 산 걸까. 내가 먹고 싶었던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시골에 오면 인심이 후해지는 뭐 그런 마음이었을까. 한 봉지는 택시 아저씨에게 드렸다. 토마토를 드시냐는 질문도, 좋아하냐는 질문도 하지 않았다. 단지 저 새콤한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다. 갑자기 받는 호의에 당황했을텐데도 오히려 잘 먹겠다는 말을 하셨다.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마음이 들었다.
할아버지 집에 도착했다. 할머니는 오는 길 너무 고생했다며 할아버지는 잠시 시장에 가셔서 곧 오실 거라 하신다. 손주에게 먹일 고기 몇 점 사러 가셨나 보다. 나는 챙겨 온 과일들과 선물을 드렸다. 고등어를 드렸을 때는 아이고 이거 비쌀낀데 하시다가, 사과를 드렸을 때는 아이고 이거 뭐한다고 사왔노 하신다. 생색을 내고 싶었지만 그냥 좋아하시는 게 생각나서 사 왔어요, 하며 얼버무렸다. 확실히 선물을 고를 때는 나를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오는 길에 택시에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다. 철마 국도변 얘기를 하고 과일가게 얘기를 하고 고향 얘기가 막 나왔을 때 할아버지가 돌아오셨다. 늘 그래 오셨듯 무뚝뚝한 표정에 무뚝뚝한 말투. 어 왔나? 하시며 안부와 인사를 주고받았다.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는 것 같아 가방에서 토마토가 든 검은색 봉투를 꺼냈다. 할아버지는 토마토를 보시더니 이런 건 어디서 사 왔냐면서 화를 내셨다. 갑작스러운 호통에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다. 검은색 비닐봉지가 맘에 안 드신 건지, 그 안에 있던 과일이 맘에 안 드신 건지 몰랐다. 할아버지는 이런 못생긴 토마토를 어찌 먹냐고 하신다. 분명 토마토에는 검은 점이 몇 묻어있기도 했고 아직 덜 익은 초록빛을 띤 것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래도 좋은 마음으로 가져온 건데, 나는 이거 먹을 수 있는데 하며 내심 속이 상했다. 할아버지는 무릇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아이다. 잘했다. 좀 쉬고 있어라' 하며 방으로 슬슬 들어가신다. 미웠다. 이건 미운 마음이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에 대한 서운함이다. 먹진 않아도 잘 사 왔다며 말해줄 수 있는 것 아닌가. 방에 들어가시는 뒷모습을 보고 오늘 어디 아프신가, 기분이 안 좋으신가 걱정하는 내 모습에 나도 참 줏대가 없구나 싶었다.
한숨 자고 일어나 보니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밥을 차린 후 내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밥상에는 내가 가져온 고등어에 이곳에 올 때마다 먹는 소고기 뭇국. 그리고 반찬들이 있었다. 나는 아까 일이 신경 쓰여 괜스레 머리를 만지며 머쓱해하고 있는데 할아버지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묵자’ 한 마디를 하시고는 밥을 드신다. 눈칫밥이라고 해야 하나, 이걸 먹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숟가락을 딱 들었을 때 우연히 식탁의 구석에 눈이 갔다. 이쁜 접시 위에 토마토가 송송 잘라져 있었다. 위에는 설탕이 뿌려져 있었다. 할아버지, 저거 제가 사 온 토마토예요?라고 물으니 아무 말 없이 밥을 드신다. 할머니는 웃으며 저 토마토 할아버지가 직접 자르신 거야라고 하셨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아까 짜증을 내셨던 이유는 토마토의 상태라거나 검은색 비닐봉지 때문이 아니라 이미 간직하고 있었던 어느 불편한 감정이 토마토로 잠시 옮겨간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건 몸이 아파서 그런 걸 수도 있겠고, 날씨가 우중충해서 그런 걸 수도 있겠고, 손주에게 먹일 고깃값이 너무 비싸서 그런 걸 수도 있겠다. 그런 서툰 마음은 모두에게 있겠으나 이걸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 그러니까 짜증을 내셨던 할아버지가 미안한 마음에 토마토를 잘게 잘라놓는 것처럼. 그리고 그걸 본 내 마음이 이내 수그러지는 것처럼. 사람 마음이란 말처럼 단순하지 않아야 사람 마음이라 할 수 있겠다. 글처럼 정해져 있지 않아야 사람 마음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