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ippe Noiret. 1930.10.1 ~ 2006.11.23
<시네마 천국>. 토토와 알프레도. 알프레도 역을 맡았던 ‘필립 느와레’. 토토보다 알프레도. 나는 필립 느와레의 영화는 <시네마 천국> 하나만 기억한다. 그가 나온 <일 포스티노>도 보았지만 <일 포스티노>를 본 모든 사람들에게 이 영화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필립 느와레 말고 다른 주연인 우편배달부 이야기부터 꺼낼 것이다. (그보다도 더 루이스 바칼로프의 OST는 상징적일 만큼 기억에 남고 아름답다) 그만큼 그는 <시네마 천국>에서 더 강렬하다. 이 영화에서의 알프레도는 토토만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성장시켰다. 내가 그 사람들 중 하나다. 어려서부터 이 영화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익히 들었을뿐더러 영화를 보기 전에도 우리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OST를 각종 CF나 라디오에서 엄청나게 들었을 것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것 치고는 이 영화를 뒤늦게 봤다.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아껴놨을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를 기억해도 대체적인 줄거리는 다 기억하면서도 더욱더 기억이 나는 건, 전에 살던 좁은 내 방에서 두 시간 분량의 러닝타임 중 약 30분 정도부터 방의 문을 걸어 잠갔고 수건을 싸매고 울며 한 시간 반 정도를 봤다. 샤워 후 몸을 닦은 수건마냥 수건은 엄청나게 젖어있었다. 그리고 가족들을 무시한 채 빠른 걸음으로 거실을 왔다 갔다 했던 기억. 영화를 보자마자 정신 상태를 가다듬고 영화에 대한, 필립 느와레에 대한 검색을 하기 시작했고 역시나 타계했다는 뉴스를 보게 된다. 이 영화를 본 시점은 2010년 겨울. 필립 느와레는 2006년에 타계했으니 약 4년이 흘렀다. 그의 묘지는 프랑스의 몽파르나스 묘지에 묻혀있었다. 이상하게, 정말 이상하게도 알지만 너무나도 정확하게 모르는 사람의 묘지를 찾아가길 처음으로 마음먹는다. 언제 지켜질지도 모르는 망자와의 약속. 그 날이 언제인지도 모른 채.
2년 뒤 고등학교 친구 2명이 내게 유럽 배낭여행을 제안한다. 마다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당연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생각한 사람이 필립 느와레. 여행지에 프랑스가 있었고 조금 더 검색을 해본 후 나는 몽파르나스 묘지를 진짜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며 친구들에게 나는 몽파르나스 묘지를 꼭 가야 된다고 이야기했다. 왜?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거기 묻혀 있어. 미X놈, 혼자가 제발. 나 영어 못해 제발 같이 가줘라. 그러면서 친구들은 마지못해 따라나섰고 우리 셋은 몽파르나스 묘지에 도착한다. 내가 느꼈던 건 우리나라의 묘지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일단 태생이 한국인이라 묘지에 입성하게 되면 경건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이 생기지만 그곳은 마치 공원 같은 느낌이었다. 선입견일지 몰라도 더 개방적인 느낌이랄까. 낯설지만 분명 칙칙하지 않고 아름다운 느낌이었다. 문제는, 묘지에 비석이 정말 너무 많아서 그의 묘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도저히 알 수 없고 시간도 없었다. (쓰다 보니 친구들과 함께 시간제한 약속까지 했었던 것 같다) 뛸 수는 없고 정말 빠른 걸음으로 묘지들을 훑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유명인사들의 묘지들을 더러 본 기억이 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 그러다가 점점 체념의 상태로 들어간다. 이렇게는 찾을 수 없다는 체념. 그런 상태에서 친구 녀석이 내게 다가와 관리인 같은 사람이랑 이야기했는데 여기 유명인사들 묻힌 묘지들이 다 적혀있다며 A4용지 크기의 지도를 내밀었다. 영어 philippe Noiret 스펠링을 더듬어가며 찾는데, 있다. 그의 이름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형을 알 수 없으니 이리저리 돌아다닌 끝에 친구와 함께 그의 묘지를 찾아낸다. 세상에 그런 감격도 없다. 찾아내서 엄청나게 좋은데 말도 안 되게 방방 뛸 수는 없었다. “와......”라는 감탄사를 연신 내뱉으며 감격에 겨워 머뭇거렸던 기억. 약간의 고민.
“절을 해야겠다.”
“진짜 미X 거 아니야?”
“모르겠어. 하고 갈래.”
친구는 내가 어이없고 우스운 나머지 사진을 찍었다. 우리나라 의식답게 절은 두 번. 모르겠다. 주변 의식을 한참 할 때였는데 과감하게 절을 했던 것 같다. 누군가 봤다면 도저히 이해 안 될 행동들. 특히 외국에서는 더더욱 더. 마치 우리나라에서 어느 외국인이 어떤 묘지에 절을 하고 있다면 희한하게 쳐다볼뿐더러 무슨 사연이 있길래 저 묘지에 절을 하는지 궁금해서 구경하러 갔을 법한 행동. 절을 하고 난 뒤 찬찬히 비석을 살폈다. 친구들은 내가 결국 찾아냈으니 묘지를 떠나야 하는 시점이었다. 사진보다도 더, 무언가 기념할 것들을 찾았다. 근처의 모래, 돌을 가져갈 수는 없었다. 어떤 명판을 가져갈 수도 없는 노릇. 그런데 정말 어디에 사용하는지 지금도 알 수 없는, 분명 돌인데 초록빛을 띠고 있는 조약돌 같은 게 두어 개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묘지고 남이 올려놓은 것인데 미친 듯이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누가 봐도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걸 올려놓은 누군가에겐 정말 소중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걸 하나 가져오기로 마음먹고 반 무릎을 꿇고 속으로 기도를 했다. “누가 올려놓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죽을 때까지 갖고 있을게요. 필립 느와레를 너무 좋아해요.” 그러고 나서 우리 셋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딘가로 떠났을 것이다. 신기한 건 이 기억은 너무나 생생한데, 우리는 어디서부터 몽파르나스 공동묘지로 갔는지, 그 묘지에서 어디로 향해갔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필립 느와레의 영화는 단 하나 <시네마 천국>이다. 그런데 그 영화의 강렬함이 내가 한 여행에서의 기억을 극대화시켰다는 것이 아직까지도 신기하게 남아있다.
다른 나라 사람과의 약속을 지킨다는 것. 친한 친구와의 약속을 지킨다는 것이 나이를 먹으면서 더욱 힘들다는 걸 느끼는데, 하물며 망자와의 약속이었는데 그걸 지키려 안간힘을 썼던 2012년의 내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을 찾아냈었다. 여행 중 몇 개 되지 않는, 무모하면서도 아름다운 기억 그리고 추억. 지금의 나는 어떤 약속을 지켜내려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