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a Karina. 1940.9.22 ~ 2019.12.14
2008년의 나는 실로 어리석었다. 대학교 1학년. 처음 갔던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나의 목표는 각국의 영화들을 시간을 잘 분배해서 닥치는 대로 보자라는 심산이었다. 영화제 기간 동안 몇 백 편의 영화가 상영되는데 처음 가보는 거니, 정말 많은 영화들을 보고 싶어서 하루에 최대 관람할 수 있는 기준인 네 편을 하루치 스케줄로 구상을 했다. 그 와중에 영화관에서 영화관으로 이동하는 물리적인 거리 계산을 하지 못했다. 지금은 연락도 하지 않는 친구 한 명과 영화에 대해서는 지금은 일절 이야기도 하지 않는 가끔 연락하는 친구 한 명. 그렇게 셋이서 함께 갔는데 다들 초죽음으로 영화제 스케줄을 버텼던 기억.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까지도 그들에게 미안하다. 심지어 그때 봤던 영화들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 것은 추가적인 고통. 인생 최악의 스케줄. 더 최악이었던 것은 그 당시 내한했던 ‘안나 카리나’의 마스터클래스를 보고 듣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프랑스의 ‘누벨바그’ 영화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뭐든지 보기만 하면 내게 흡수될 것 같았던 열망과 애욕만 가득했다. 2008년의 나는 그 열망과 애욕을 안나 카리나에게 쏟아부어야 했다. “누벨바그의 여신이여.”
안나 카리나에 대해 알게 되기 시작한 것은 군대에서 세계 영화사에 대해서 공부를 하며 영화들을 찾아보기 시작한 것이 계기였다. 시네마테크를 전투적으로 다니기 시작하고, 에릭 로메르를 알아가고, 장 뤽 고다르를 알아가고, 프랑수와 트뤼포 등을 알아갔다. 지금도 그들의 영화들은 가끔은 난해하고 발칙하며 흥미를 유발하며 사랑한다. 그런 그들의 곁에는, 특히 고다르의 곁에는 안나 카리나라는 배우가 있었다. 할리우드에 수많은 여성 배우들이 존재하지만 프랑스로 넘어가면 독보적인 존재는 안나 카리나다. 처음 그녀를 알게 된 영화는 <미치광이 피에로>. 그녀는 그 이야기 속에서 폭발적인 활력과 활기를 보여준다. 내용은 서서히 남자 주인공을 배신해가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냥 스크린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황홀했다.
안나 카리나를 알기 시작하면서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의 DVD들을 전투적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여자는 여자다>, <비브르 사 비>, <알파빌>, <국외자들> 등. 아마 안나 카리나가 나와서 이기도 했지만 고다르와 관련된 어떤 것들도 수집을 하려고 했기에 그와 작업한 영화들이 많았다. 문제는, 문제는. 영화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가 출연했다는 것과 그녀의 이미지만이 내 기억에 엄청나게 자리 잡혀 있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고다르의 언어를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그와 작업한 그녀는 얼마나 어려웠을까. 정말 다 이해하고 한 걸까. 배우 생활을 하는 내 입장에서 고다르와의 작업을 가끔 생각해본다면 정말 나는 위대한 사람과 작업하고 있는 거야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끔찍한 상상이다. 그녀는 그 어린 나이에 그와 그 영화들을 해내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아직도 내가 한 번씩 들춰보는 것은 단연 <미치광이 피에로>다. 혹자는 <여자는 여자다>, <비브르 사 비>를 이야기하지만 내게는 <미치광이 피에로>. 이 영화에서 특히 아름다움과 발랄함의 끝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영화 속에서 어떠한 진중한 태도로 있어도 생기 있는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태생적으로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어보면 길을 걷다가도 춤을 추고 노래를 해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봤을 정도라고 이야기하니 그 에너지는 얼마나 내재되어 있던 걸까 라는 생각까지 해 본다. 얼마나 위대한 장면들이 존재했는지 칸 영화제에서 기념 포스터를 만들었을 정도였으니까.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매일, 매달, 매년 기억하기는 쉽지 않다. 기억과 추억은 찾아오다가도 가버리고 다시 오면 반가워지는 감정들이니까. 안나 카리나를 매일 생각하며 살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의 뮤즈 중 한 명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던 중 2019년 한 영화를 보고 누군가에게 감사한 마음이 생겨 난다. 그건 안나 카리나보다 약 8개월 정도 일찍 영면한 여성 감독 아녜스 바르다. 아녜스 바르다 역시 프랑스의 누벨바그의 역사 속에 자리 잡은 그 당시 유일무이한 여성 감독이다. 그녀가 만든 영화인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라는 영화에는 주인공인 클레오가 극 중에서 영화관에 영화를 보러 가는 신이 있는데, 그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안나 카리나와 장 뤽 고다르가 출연하는 단편이었다. 정말 짤막한 단편으로서 존재하지만, 모르고 있었던 영화에서 상상도 못 했던 안나 카리나가 출연하는 걸 알게 됐을 때는 정말 스크린으로 빨려 들어가는 줄 알았다. 인생에 있어서 알고 있었던 사람을 다시 소개받을 때의 느낌은 이런 식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으레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으로 지나갈 뿐이지. 그런데 재소개를 받는 나의 감정은 처음일뿐더러 엄청나게 기이한 경험이었다. 그녀는 내게 나를 잊었던 거냐며 한 시간 반 정도의 영화에서 갑자기 등장해서는 짧고도 강렬하게, 물리적으로는 느끼지 못할 내 팔짱을 끼고 애교 섞인 감정으로 가볍게 툭 밀친 채 사라졌다. 영화도 정말 매혹적이었지만 다시 한번 되뇌이는 영화 제목,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라는 영화를 만든 아녜스 바르다에게 무척이나 감사했다.
수집욕이 또 발동한 나머지 DVD의 시대는 저물고 블루레이라는 매체가 등장하기 시작하며, 클래식한 영화들을 전문적으로 출시하는 해외업체에서 <미치광이 피에로>의 블루레이가 출시된다. 이것도 뒤늦게 알았고 찾아보니 절판이 됐다. 중고로 알아보니 어떤 사람이 그 블루레이를 미개봉으로 갖고 있는데 가격을 약 세 배 이상으로 게시해 놨다. 지금이 아니라면 살 수 없다는 생각에 거금을 내고 그 블루레이를 샀다. 전혀 아깝지 않았다. 특히 지금은 더 아깝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의,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최고의 영화에 나왔던 그 배우가 지금은 잠들었으니.
그녀는 2019년 12월 14일에 잠들었다. 나는 그녀가 유독 오래 살 거라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 유럽을 가본 적이 있지만, 다시 가게 된다면 무슨 생각과 방법에서인지 프랑스에서 그녀를 찾아갈 거라는 무모한 다짐을 하고 있었고,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무모하고, 한편으로는 철저히 개인적인 계획은 슬픔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내가 앞서 말했듯이 2008년의 나는 어리석었다고 얘기한 것이다. 그 당시의 나는 내가 사랑하는 배우와 감독 혹은 관련된 어떤 사람들과의 추억을 만드는 것에 환장해 있었다. 사인을 받는 일이나 혹은 함께 사진을 찍는 일을. (지금보다 더!) 그때의 나는 그 일을 하지 못했다.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그녀의 까랑까랑한 음성을 들으며 그 공기를 함께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래서 그녀가 잠든 후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내한한 당시의 대화를 엮은 책을 찾아보는 일이었다. 마지막이기에는 너무 늦은 2008년의 그 이야기를 찾아보고 싶었다. 그런데 서적도 나오고 그 당시 마스터클래스를 하고 인터뷰를 했던 DVD까지도 출시가 됐는데 벼르고 벼르다가 사지 못하고 뒤늦게 찾았더니 책은 구했는데 DVD는 모든 판매처에서 품절이 되어 거짓말 안 보태고 약 열 군데의 판매처에서 돈을 돌려받았다. 그렇게 안나 카리나와는 만나지 못할 운명이었을까. 끝까지 만나지 못할 존재와 밀고 당기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다. 내가 기억하는 한 끝까지 안나 카리나의 존재를 좇을 것이다. 이것이 그 당시에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어주었던 그녀에 대한 감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