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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름배우사랑 Dec 09. 2020

<버스터 키튼>

Berster Keaton 1895.10.4 ~ 1966.2.1

그렇게 할리우드 영화를 좋아하면서 가보지 못한 곳이 있다면 바로 미국이다. 할리우드 영화, 프랑스 영화, 이탈리아 영화, 일본 영화 등등, 다 좋아하면서도 끊임없이 보고 있는 영화들이 미국에 있는데 그곳을 가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피하고 있는 걸까. 내가 미국으로 간다면 굿즈들을 사 모으다가 재산을 탕진할 곳이 바로 미국이니까. 보이는 대로 족족 다 사서 수화물이 오버차지가 생길 정도일 것이다. 이 파국을 겪지 않기 위해 절대 가지 말아야 할 곳이 있는데 미국 오하이오 주 마이애미 카운티에 있는 도시, 피쿠아다. 피쿠아는 지금부터 설명할 버스터 키튼이라는 배우의 출생지이기도 하고 버스터 키튼의 박물관이 있는 곳이다. 내 집엔 버스터 키튼을 사랑하면서도 그에 대한 이렇다 할 상품들이 없다. 하물며 그의 영화 DVD, Bluray도 많지 않다. 유독 그에 대한 자료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가끔 그곳에 가면 그에 대한 모든 것들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버스터 키튼이라는 배우의 존재를 몰랐을 때, 남녀노소 다 알고 있는 찰리 채플린이라는 또 하나의 위대한 배우가 있었다. 버스터 키튼과의 첫 만남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가 그를 계속 기억하고 있었다는 건 그 역시 또 하나의 위대한 배우라는 인식이 무의식 중에 자리 잡혔을 것이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피터 한트케의 시 구절 중 이런 문장이 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아이는 놀이에 열중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열중하는 것은 일에 쫓길 뿐이다. 


    

그때도 쫓기고 있었고 지금까지도 쫓기고 있는 그런 시절 중, 2015년. 버스터 키튼의 탄생 120주년 특별전으로 그의 전작전을 상영하는 프로그램이 시네마테크에서 열렸다. 최대한 다 보겠다며 미친 듯이 다른 스케줄을 뒤로하고 시간표를 짰다. 참고로 나는 컬러영화보다 흑백영화를, 흑백영화 중에서도 무성영화에 더욱 매료되는 사람이다. 배우들의 연기만 놓고 바라봤을 때 말이 주는 힘도 중요하지만 행동과 상태가 모든 것을 보여준다고 믿고 있다. 그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요소가 흑백 무성영화에 담겨있다. (행동을 정의 내리지 못한다면 열렬히 무성영화를 보는 방법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서서히 그의 영화들을, 연기들을 바라보며 어른이 된 나는 아이가 되었고 그 아이는 놀이에 열중했다. 그는 걱정거리가 사라지게 만드는 영화들을 만들어냈다. 나는 그 어떤 것에도 쫓기지 않았고 그때만큼 스크린을 바라보는 눈이 초롱초롱한 적도 없었을 것이다. 사실 그의 영화 대부분은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한 남자의 고군분투가 주를 이루는데 그 고군분투는 자신의 온몸을 던지며 파생되는 것들이다. 의도적으로 자신의 몸을 던지기도 하는데 때때로, 어쩌면 자주, 본인이 의도치 않게 몸이 던져지기도 한다. 버스터 키튼이라는 배우는 슬랩스틱과 아크로바틱에 굉장히 다재다능하며 도대체 저걸 어떻게 한 거지라고 할 정도로 기예, 곡예, 차력에 가까운 기술들을 보여준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현대에 들어와서 그만큼 몸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어떤, 어느 누군가의 팬에게는 미안하다) <일렉트릭 하우스>, <손님 접대법>, <셜록 2세>, <항해자>, <스팀보드 빌 주니어>, <손님 접대법> 등 영화 안에서 정말 우아하고 파괴적이며 현실 불가능한 신체 곡예를 보여준다. 한 일화로는 아무 일 없이 잘 지내다가 정밀검진을 받았는데 목 골절이 발견되었고 몇 년 동안이나 별다른 통증 없이 잘 지냈다고 했다니 영화를 보지 않아도 그의 몸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버스터 키튼의 별명은 ‘그레이트 스톤 페이스’ 정말 모든 영화에서 그의 얼굴은 돌처럼 굳어있고 무표정한 채로 연기한다. 심지어 별의별 상황을 다 겪는데도 불구하고 놀란 표정도 좀처럼 발견할 수 없다. 팬으로서 그의 미소를 발견한다면 신기하고 탄성이 나올 정도다. 배우로서 어떤 이미지가 강하게 박히기 시작하면 그 이미지를 탈피하기 어렵고 일상생활도 하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일평생을 그렇게 연기했는지 기이할 정도로 캐릭터의 태도를 고수한다. 그의 평소 일상이 궁금할 정도로.   




   

그리고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납작모자는 마치 마블 영화에 나오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레비테이션 망토처럼 어디든지 따라다니고 벗겨지는 일이 거의 없고 어떻게든 찾아낸다. 분신 같은 모자. 도대체 저 모자는 저 머리에 어떻게 붙어있는 건가 한참을 고민해본 적도 있다. 핀을 꽂은 건지 너무나도 딱 맞는 건지. 그런 이미지에 매료된 나머지 나는 버스터 키튼을 따라 해보고 싶어서 한편으로는 그와 관련된 어떤 것이라도 갖고 싶은 나머지 국내에서, 해외에서 그와 비슷한 모자를 찾으려고 한참을 수소문했고 심지어 국내 모자 제작업체에 SNS를 팔로우 해놓았지만 찾지 못했다.  


    

무엇을 위해서 자신의 이미지를 고착시켰던 것일까. 그 당시 배우의 삶의 방식이기도 할 것이다. 어떤 배우는 해적의 이미지로 기억되기도 하고 탐정의 이미지, 마피아의 이미지로 기억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캐릭터의 타이틀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로서 그를 생각하면 약 세 가지를 떠올릴 수 있다. 아크로바틱, 납작모자 그리고, 그레이트 스톤 페이스. 




     

영화광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을 그 당시의 무성영화배우 세 명은 찰리 채플린, 해롤드 로이드, 버스터 키튼이 있다. 나는 그를 알게 되면서 이 셋의 순서를 과감하게 바꿔버린다. 



좌측에서부터 찰리 채플린, 버스터 키튼, 해롤드 로이드 (세 명 모두 당대 최고의 무성 영화배우들이었다)



버스터 키튼, 찰리 채플린, 해롤드 로이드. 하지만 아쉽게도 초기 무성영화의 위대한 배우를 떠올린다면 대부분 앞서 얘기했던 찰리 채플린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나는 또 한 번 아쉽게도 찰리 채플린을 뒤로한 채 버스터 키튼을 이야기한다. 버스터 키튼을 알게 되면서 당대 최고의 배우는 버스터 키튼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런데 버스터 키튼은 적어도 내 주변의 사람들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영화를 소개해줘도 흑백영화여서, 무성영화여서 거리감을 두는 사람들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워 슬프기까지 할 정도. 그런데 그의 영화를 제대로 보기 시작하고 마무리까지 한다면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보는 사람은 없는,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영화들로 가득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영화 안에서 몸을 던지는 것처럼 그가 출연하는 영화의 스크린에 몸을 던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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