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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vertheless Dec 29. 2019

감각을 깨우는 이상하고 친숙한 공간에 관하여

을지로 "감각의 제국"



어김없이 찾아온 우리의 적 월요일

다시 바쁘게 돌아가는 서울의 시간.


지금은 오전 9:00

나는 을지로에 서있다.


생업의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호텔에 짐을 풀고 근처를 배회하는 사람들

그들이 을지로에 뒤죽박죽 섞여있다.

.

.

.


잠시 시간이 흐르고 저마다의

소리들이 공명한다.


(꼬르르륵)


끼니도 거른 채 시작됐던 하루에 가장 즐거운 점심시간을 알리는 11과 12 사이의 시곗바늘. 구석구석에 자리한 오래된 식당들이 골목골목의 터줏대감들이 되어 저마다의 솜씨를 뽐낸다. 가성비 좋은 요리가 대접되고 까다로운 제각각의 손님들의 미각을 돋군다.



(글을 쓰는 지금 잠시 침이 흐른다. 츄릅)



정신 차리시고 자. 다시 시작된 오후 일과. 약간은 느긋해진 분위기 햇살을 머금은 공간들.



달달한 믹스커피와 함께 남은 하루에 다시 집중하는 사람들. 골목골목에 숨어있는 커피와 디저트를 찾아 나선 모험가들이 함께 공존하며 구별된다.



누군가에겐 일 때문에 와야 하는 일터

누군가에겐 즐거움이 숨어있는 놀이터.



목적은 다르지만 을지로를 사용하는 방법이 다채롭다. 을지로를 대하는 입장 차이는 분명하게 나뉘어있다. 하지만 밤이 찾아오면 그곳의 사람들이 이내 구별 없이 다시 뒤섞인다.



오래된 건물들 창틀 사이로 은은하게 혹은 화려하게 피어오르는 조명들로 채워진 공간이 지친 하루와 즐거웠을 하루에 마침표가 되어준다. 풍미 가득한 가지각색의 음식과 곁들여 기울이는 술 한잔. 저마다의 콘셉트로 똘똘 뭉친 재밌는 공간들이 찾아온 사람들의 미소를 이끌어낸다.




그리고 이 글의 주제 그 중심에

감각의 제국 이 그 일대를 군림하고 있다.


이름부터 강렬하다.


이곳은 엘리베이터도 없는 오래된 건물 4층에 위치해있음에도 언제나 그곳을 찾은 힙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계단 한층도 엘리베이터를 타는 게으른 사람들은 감히 올 수 조차 없는 이곳은 그 번거로움에 보답하기 위해 아주 치밀하게 설계된 콘텐츠를 제시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곳의 콘셉트가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가 없다.


태어나 자라오면서 느낀 수많은 감각들이 소소하게 포진되어있다. 명확한 콘셉트 그 무언가가 배제된 정서의 융복합이 나를 폭격한다. 말 그대로 오감이 반응하지만 “이건 뭐다!”라고 규명할 수 없는 한국인의 정서가 복잡한 듯 매력적으로 스며든다.


그렇게 나의 시각이 그곳에 지배될 때쯤 90년대 음악이 뒷 속으로 파고든다. 그러더니 곧바로 2010년대가 되었다가 동요가 흘러나온 뒤 팝송으로 장르가 전환되어 청각을 타고 흐른다. 제목은 몰라도 흥얼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쯤 주문한 음료가 도착한다.


기본 안주로 서빙되는 아폴로와 하리보 & 마시멜로 추억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하는 불량식품들이 내입 안을 휘젓는다. 혀를 통해 추억을 삼킨다. 이내 미각까지 만족할 때쯤


학창 시절 즐겨하던 다양한 게임들이 저마다의 테이블에서 펼쳐진다. 젠가를 하는 사람들 / 할리갈리를 하는 사람들 / 닌텐도를 하는 사람들 / 맞아. 저거 알아! / 그땐 그랬지 라며 감탄사를 연신 내뱉으며 몰입된 그즈음


마지막이 시작된다. 


피슈우우우웅.


클럽에서나 볼 법한 드라이아이스 스모그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나면 그 연기에 취한 사람들과 함께 디제이의 공연이 시작. 사람들은 흥을 주체 못 하고 모두 그 순간으로 몰입해 쉐이킷 쉐이킷! 하지만 누구도 터치할 수 없다.


헌팅도 번호교환도 불가란다!

이곳은 무언가 건전한 느낌마저 갖춘다.

그저 놀랍다.


콘셉트를 살리느라 구구절절 설명하는 공간이 아니다.


이곳에는 정서와 문화가 분명히 녹아있지만 이걸 뭐다 라고 설명하기란 복잡 미묘하고 다채롭다. 어찌 흘러들어왔을까 내 눈 앞에 보이는 외국인의 얼빠진 표정이 아주 흥미롭기까지 하다. 더욱이 일상적이고 내가 자라오며 느낀 감각의 정서만이 존재할 뿐이기에 공감하기에는 너무도 찐덕한 우리의 일상. 아비규환의 융단 폭격


이름 그대로 5글자가 표현하는 오감을 자극하는 감각의 제국. 이름만이 이곳을 설명하기에 안성맞춤인 듯하다. 그렇게 나와 같은 또래들에게 정말 미친 듯이 즐거운 공간이 되어주는 이곳은 돈으로 휘황 찬란한 척 감아놓은 그럴듯한 공간, 콘셉트만 신경 쓰느라 정작 필요한 기본도 준비되지 않은 공간들과는 확연히 차이를 둔다.


멋있다?

힙하다?


그런 단어들은 사실 지금 유행에 맞춰 만들어진 말일뿐이다. 두 눈과 몸으로 담은 그곳은 그 이상의 감정을 만끽하게 해 준다. 흥미로움이 온몸을 휘감는다.


지금을 살아가는게 조금은 지쳐 충전이 필요하다면 시간을 내어 을지로에 숨은 것들을 찾아 모험하고 피날레로 감각의 제국에 방문해보길 권장하며 오감에 전율과 함께 흠뻑 취해 스트레스를 풀어 보기를 제안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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