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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vertheless Feb 21. 2020

독서실 좋아하세요?

나의 독서실 앤트러사이트 연희점에서.

학창시절.

독서실이란 내게 율무차 제공처였다.


꼬소한 향미 가득한 200원짜리를 먹으러 시험기간만 되면 출근하던 그곳. 공부는 커녕 그저 율무차 자판기가 있던 쉼터에 앉아 공상에 빠져있는 것을 즐기던 그곳이 기억 저편 구석에 남아있다.


어머니께 죄송하지만 독서실에 가서 공부를 한 기억은 거의 전무하다. (당당하군..) 답답함 그 자체로 빼곡히 둘러쌓인 어두컴컴한 곳에 스탠드를 키고 앉은 사람들의 뒷모습을 볼때면 숨소리도 골라쉬어야 할 것만 같았다. 요즘 말로 하면 미세먼지 매우나쁨 단계.


미래의 자신의 삶을 바꿔 줄 명분을 내세운 시험 준비를 하며 가방끈을 늘리기 위해 겨우겨우 참고 있는 그들은


동료인가?

적인가?

의적인가?


엿같은 세상을 바꿔줄


구원자인가?

아님 빌런이 될 것인가!?


감옥같은 던전에 소정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퀘스트가 끝날때 까지 밖으로 나갈 수 없는 플레이어들. 나 또한 그 중 하나였지만 나는 당당히 pc방으로 플레이를 하러갔다. (다시 한번 당당하군..)


어머니께 또 다시 미안해지는 순간이다.

죄송합니다..


그랬던 나는 교복을 벗고 지금

또 다른 독서실에 앉아있다.


방식은 비슷히다.


-하루 간 잠시 내자리가 될 공간을 비용을 지불하고 대여한다.

-괜찮은 차 한잔을 먹을 수 있다.

-휴식을 취할수도, 하고자하는 것에 몰두할 수 있다.


독서실처럼 실내는 어둠이 내려앉아있지만 분위기는 확연한 차별성을 띈다. 자연광이 들이닥쳐 우울함에 심심한 위로를 던지고 눈 앞에 적당한 컬러들이 생생함을 더한다. "숨소리가 방해되요 닥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는 포스트 잇이 없는 적당한 소음이 나를 포용한다. 그리고 수용한다.


그렇게 생전 하지 않았던 자기발전을 이 곳의 긴 테이블에 앉아 종종 실행중이다. 글을 쓰고, 몇몇 작업을 하고, 아이디어를 떠올려도 보고, 책도 보지만 불편하지 않다.


독서실의 공기처럼 숨이 막히지도 않고 매초마다 움직이려 노력하던 엉덩이도 의자와 혼연일체가 되어있다.


참으로 기이하다. 나는 왜 그곳에 억지로 앉아있었을까. 그리고 지금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까.


이 공간은 모든 애매한 행동을 방관하며 지원한다. 무엇을 해도 상관이 없다. 그 목적을 실행하게 위해 저마다의 관점을 지닌 사람들이 이곳을 찾을 뿐이다. 목적의식이 분명한 공간이 오히려 인간의 행동의 제약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곳에 앉은 수 많은 사람들의 표정을 통해 읽어본다. 그런 수 많은 정제되지 못한 공간들이 우리의 삶을 깊숙히 부터 망가트리고 있음을 느껴본다. 인간을 위해 만들어놨다는 결과물이, 디자인이 어떻게 인간을 구속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그저 이렇게 애매한 것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이런저런 행동을 해도 제약을 받지 않는 공간들이 늘어나길 바래볼 뿐이다.


자유를 지닌 공간이 우리들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여기며 오늘 내가 할일에 몰입하기 전에 글을 몇자 적어본다.





낮이든 밤이든  좋은 에너지를 나누어주는 나의 독서실 혹은 아지트. 혼자도,  혹은 여럿이 와도 즐거운 무엇을 하든.




앤트러사이트 연희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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