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멀사이클코페.
아직은 이른 봄날의 어느
토요일 오후 3시: 58분
종로구 옥인동 어느 골목
세모난 자투리 땅
겨우 뿌리를 내린 건물의 3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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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깍재깍 오후 4시
정각으로 포개진 시곗바늘을 확인한 몇몇의 사람들이 뭔가에 홀린 듯 건물의 요상한 철문을 열고 줄줄이 등반을 시작한다. 나 또한 질세라 그 대열에 합류해 고지로 향한다. 구불구불한 공간의 서른 개 남짓한 계단을 오르니 다시 한번 철문이 막아선다.
마지막 관문처럼 생긴 이 문 앞에 덕지덕지 붙은 종이들을 보며 잘 열리지도 않을 것처럼 생긴 그 문 뒤로 무언가 있음이 느껴진다. 불안과 설렘이 공존하는 미묘함을 안은채 문을 연다.
(싸늘하다. 가슴에 궁금증이 날아와 꽂힌다.)
이건 또 무엇인가.
생경한 풍경이 펼쳐져 어안이 벙벙한 순간 눈앞에 펼쳐진 것들을 채 눈에 담기도 전에
“몇 분이세요” 사장님이 뭔가 귀찮다는 듯 내게 물었다.
“한 명입니다.”
“그럼 거기 앉으세요.”
실내와 실외를 나누는 문 턱 단 한 발자국 앞에 자리한 의자 겸 테이블이 오늘의 나의 자리였다.
그 앞으로 몸을 굽힌다.
이미 앉아있는 사람들의 똥 마려운 강아지 같은 표정들이 하나같이 내 모습과 겹쳐 보인다.
(이런 대접은 처음이야.. 짜릿해) 불쾌한 듯, 궁금한 듯, 신기한 듯 한 오만가지 표정이 담긴 사람들을 흘깃흘깃 바라보며 두리번거리던 찰나에 휘갈겨쓴 메뉴판이 내 앞으로 배달됐다. 그 메뉴판으로 먼저 온 순서대로 음료를 받을 수 있는 영광을 얻는 룰이 존재했다.
차례가 왔으니 메뉴판을 살핀다. 메뉴는 그때그때 로스팅한 원두로 직접 내려주시는 핸드드립 커피가 전부이지만 커피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전혀 부족함이 없는 메뉴판이다. 원하는 원두를 골라 따아를 부탁한 뒤 그제서야 공간을 차분하게 들여다본다.
내가 본 어떠한 카페 공간보다도 작다. 겨우 9~1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이들은 모두가 함께 방문한 듯 붙어 앉아있다. 작은 소리로 대화하지 않으면 누군가의 이별 이야기, 가정사를 함께 들을 수 있을 정도다.
그렇기에 적당히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일까? 나른한 샹송이 개인사를 살짝 가려주는 역할로 공간에 분위기를 더한다.
다음은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화분을 포함해 족히 50개가 넘을 듯한 여러 가지의 푸르스름함은 그다지 관리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으나 꾸역꾸역 살아가려 안간힘 쓰는 그들에게서 내가 비치는 듯하다.
사람들은 왜 이곳을 찾는 것일까.
이곳의 이름은 “노멀사이클코페”
sns 공지로 어느 날, 어느 시에 한정적으로 운영되는 이곳은 가고 싶다고 해서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특이점을 갖는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처럼 운 좋게 운영시간을 맞췄다 하더라도 자리가 없다면 그것 또한 실패. 그럼에도 언제든 사람이 드나들며 채워있는 이 공간의 다소 엉뚱하면서 신선한 정체성이 재미있다. 그 말인즉슨 나는 오늘 운이 좋기에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 된다. (하하)
잠시 후 사장님이 몇 발자국만에 코 앞으로 다가와 뜨거우니 조심하라는 투명스러운 배려와 함께 커피를 하사해주셨다.
하사된 커피가 담긴 잔도 모두 다른 형태다. 어떤 잔은 사이즈가 애매해 겨우겨우 꽉 들어찬 커피를 들고 오시는 모습이 웃프다. (내 잔이 저것이 아니어서 참 다행이다) 저마다의 컵들에 어떤 규칙이 있는 것일까. 나름의 의미를 찾아보려 해 보았지만 당최 연결고리가 발견되진 않는다.
“됐고 커피나 마시자.”
호로록.
맛이 꽤나 좋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이곳을 기꺼이 오고자 하는구나 하는 관점이 생겨난다. 뭔가 납득이 가는 기분이 몸을 감싼다. 다시 관점을 열고 이곳을 관찰해보니 투박해 보이는 모든 것들이 차차 섬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레시피가 적힌 메모들이 노력의 흔적을 기억하고 구석구석에 배려의 문구가 그것을 보증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장님의 손놀림에 맞게 구비된 용품들의 위치와 형태 / 코끝에 닿을 듯 말듯한 향기만을 남기고 열심히 환풍중인 환풍구/ 곳곳을 비춰주는 간접 조명들
상세하게 적어낸 커피의 맛들 / 군더더기 없이 포장된 원두 주머니 / 흘러나오는 나른한 음악 / 화장실의 문구, 여분의 화장지 / 성능은 확실한 변기 / 창을 통해 비치는 주변의 사물들
그에 상응하는 정중한 손님들.
때가 타 더러워 보이는 것들이 쓰임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음을 보며 아니 훌륭하게 맡은바 자신의 역할을 실행해내는 것을 보며 여전히 부족하고 편협한 나의 시각적 판단에 반성한다. (여전히 나는 멀었다.)
어느새 정리가 서툰 어머니의 어질러진 집안 거실에 앉아 따듯한 집밥을 먹듯 익숙한 기분이 돋아난다. 그 어질러짐 속에는 이상하게도 운율이 있었기에 그것을 인정하면 이곳이 그리 낯설지 않아 보인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기에 지금 이곳에 동화된다.
결국 입에 들어가는 것이 맛이 있지 않은가.
그거면 된 것이다. 그게 제일 중요하니까.
덩어리는 투박해 보일지언정 그 안의 요소들에는 섬세한 손길이 닿아 자신의 철학이 발현되고 그것을 향유하고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드는 것임을. 나름의 해석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그렇게 나와 비슷한 시에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잔을 비우고 떠나자 새로운 사람들이 기웃기웃 어색한 표정을 머금고 문을 연다. 여전히 퉁명스러운 그는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몇 분이세요” , “거기 앉으세요”
오늘 공지된 시간은 3시간 남짓. 사장님은 오늘의 영업을 마치고 어디로 갈까? 커피를 연구할까, 운동을 할까, 여가 활동을 즐길까. 그의 행적은 9to5의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의 라이프와는 확연히 다른 자기주도성을 띈다. (멋.. 부럽다)
훌륭한 그의 자세를 본받아 나 또한 주도적 삶을 살기 위해 오늘도 꿈을 키워가리라. 이루어질진 미지수이지만 그럼에도 잠시 이곳에서 힘을 얻어간다.
그렇게 아쉬운 마지막 한 모금을 비우고 자리를 나선다. 계단을 내려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뭔가 다른 곳에 다녀온 기분이 든다. 도깨비의 공유가 평범한 문을 열어 캐나다로 갔던 것처럼 문의 안과 밖이 이질적이라 여전히 얼떨떨하다.
다음은 또 언제가 될 수 있으려나. 불편해하실 사장님께서 이 글이 불편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운이 좋다면, 작은 순간에 희한 안 재미를 만끽하고 싶다면 이 곳에 들러 커피 한잔을 즐겨보길 제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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