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나는 내가 선택한 전공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알아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내가 '정밀기계'라는 전공을 택한 것은 그저, 내가 원하는 대기업에 취업이 잘 됐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입학하자마자 배운 기계란 분야는 너무 생소하게 다가왔다. 선반이 뭔지, 밀링은 또 뭔지 이걸 어떻게 외우고 프로그램을 짜야하는지. 생소했고, 어려웠다. 그런 내게 선배들이 전시해놓은 쇠로 만든 우리나라 지도는 정말 경의로울 지경이었다.
처음 기계를 만진 날이 생각난다. 처음보는 기계. 나중엔 한 몸처럼 익숙해진 '선반'이었다. 참 간단했다. 원하는만큼 눈금을 맞추고 핸들을 돌리면 눈금만큼 모재가 절삭된다. 사실 그 외에도 수 많은 기능이 있지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이 기계를 한 몸처럼 조작하기 위해 수 없이 많은 땀을 흘렸고, 땀과 비슷한 똑같은 기름을 묻혔다.
일반적인 학생이라면 초등-중등-고등학교로 이어지는 교육과정이 어느 정도 통일성을 띤다. 기역, 니은, 디귿으로 시작해서 점점 심화되는 교육을 받는다. 국어, 수학, 과학, 영어 등 대부분 과목이 그렇다. 그렇지만 나는 고등학교에서 그 흐름이 끊겼다. 일반적인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전혀 배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배우지 않고 기본적인 것만 배운다. 나머지는 오직 전공만 배운다. 그렇기에 어쩌면 중학생 때 공부를 잘했더라도 기계란 분야에 적성이 안 맞으면 좋은 성적을 받기가 힘들다. 특히나 실습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손재주가 좋은 친구들이 다른 머리 좋은 친구보다 좋은 점수를 받는 경우도 다반사다. 일반적인 인문계 학생에 비해 성적을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이 꽤 다양한 것이다. 기계란 참 무궁무진한 것이어서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싶어도 새로운 것을 배우면 낯설게 느껴진다. 아주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것이 이 분야여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치수가 1mm만 어긋나도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이제 막 중학생 티를 벗은 학생들은 교복이 아닌 작업복을 입는다. 맨 처음 받은 작업복은 아주 파란 청 작업복이지만 기름을 뒤집어쓰며 실습하다 보면 어느새 때가 껴서 까매진다. 그걸 세탁기에 돌리거나 손빨래하면 새까만 물과 먼지가 한참 나온다. 나는 그걸 어머니께 맡겼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가 그 작업복을 빨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 그 심정을 그땐 생각하지 못했다.
의외로 마이스터고생의 일과는 그리 편하지 않다. 실업계라서 편하게만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아주 힘들다. -물론 모든 학생이 힘들겠지만- 아침 6시에 일어나 구보를 시작하고, 여느 학생들과 같이 아침자습을 시작한다. 그리고 각자의 교과과정에 맞춰 실습, 수업을 한 뒤 9시 30분쯤 기숙사로 돌아온다. 그리고 중간고사, 기말고사만 있는 게 아니라 전공수업의 수행평가(실습), 자격증 취득까지 신경 써야 해서 중간고사 공부와 전공 실습을 같이 해야 하고, 끝이 나더라도 자격증 시험을 준비해야 해서 그리 녹록지 않다. 그렇게 정신없이 1학기, 2학기를 끝내고 나면, 처음에 어려웠던 작업도 손쉽게 해낼 수 있고, 여러 가지 변수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한다. 그렇게 우리는 기계가공이란 분야에 익숙해져 갔다.
그렇게 정신없이 눈 앞에 닥쳐오는 일들을 해쳐 나가다 보면, 1학년에게 주어지는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특채가 시작된다.
모두의 목표였다.
어느새 취업은 우리들의 눈 앞에 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