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이 될 씨앗 Jan 08. 2022

도시남녀의 사랑법:서린이를 이해하며

나는 린이의 선택을 응원한다

넷플릭스를 두 달 정도 이용하게 되면서 카카오TV 드라마 콘텐츠 <도시남녀의 사랑법>을 보게 되었다. 드라마에는 주인공인 은오와 재원 커플 외에도 두 커플이 더 등장하는데, 특히나 린이와 경준초등학교 동창이었다가 어른이 되어 오랫동안 연애를 하는 서브 커플로, 주변에는 흔하지만 나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이기에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 이 커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 주로 이 커플의 이야기를 할 때 린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대부분인데, 나는 오히려 린이가 이해 가는 입장이어서 가 왜 린이를 이해하는지 정리해보려고 한다.



도시남녀의 사랑법


서린이 역 (배우 소주연)
프리터. 자신만의 세계가 견고한 사차원.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사는 안정적인 삶’ 대신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삶’을 살겠다고 결정한 뒤 알바만 하는 중. 환경운동에 관심이 많고 소박한 생활이 몸에 배어있다. 수저 네 벌, 밥그릇 네 개. 그녀의 인간관계 숫자와 똑같다. 남친 경준과 절친 은오와 건. 자신을 포함해 이 네 명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사는데 취미가 없어서 그렇지 누구보다 따뜻하고 정이 많다.


이 글은 드라마 <도시남녀의 사랑법>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물 설명을 읽은 것이 드라마를 보고 난 후라 그런지, 서린이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나로서는 이 설명이 꽤나 불친절하게 느껴진다. 사차원이라고 표현한 것부터 린이의 선택들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것 같아서.


서린이는 환경을 사랑하고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면서 자기 생활에도 녹여내는 환경운동가다. (환경운동가까지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다면, 운동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나의 행동으로 그 신념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린이는 이렇게 자신의 기준과 신념이 확고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기 인생을 주체적으로 꾸려가는 사람이다. 물론 경준을 매우 사랑하고 애정도 크지만, 그를 사랑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경준이 그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 다시 말하면 경준이 그녀의 생각과 삶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두 사람은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이르 5년 동안 알콩달콩 연애를 해온 둘은 결별을 맞이한다. 알고 보니 경준 린이가 선택한 삶의 형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녀가 깨달아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경준은 아주 현실적인 캐릭터이고 그의 마음에 공감한다. 그가 린이를 대학원 준비생으로 만들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도, 남들에게 린이를 무슨 일 하는 사람으로 소개해야 할지 어려워했던 것도 모두 이해할 수 있다. 나 역시도 경준이라면 그랬을 것이기에. 하지만 린이를 이해하는 입장에서 경준에게 서운했던 것은 경준이 그동안 린이에게 보여주었던 행동들이다.


경준은 린이가 협탁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자 어디 전시되어있던 제품을 얻어왔다며 120만 원짜리 협탁을 구입해서 린이에게 선물한다. 하지만 그전에 린이는 이미 버려진 협탁을 주고 그것을 경준이 리폼해주자 그 협탁을 더욱 마음에 들어 한다. 린이에게 쓸모 없어진 고급 협탁은 -린이의 친한 친구에게-35만원에 팔려가고 린이는 그 돈으로 경준에게 머플러를 사줄 수 있다며 신나 한다. 이 외에도 자주 등장하는 이 커플의 모습은 주로 쓸데없는 소비를 하지 않는 린이와 그 소비가 쓸데없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준으로 그려진다. 포크가 부러지자 본드로 붙여서 쓰면 된다는 린이와 새로 사는 경준. 이불 빨래를 해서 오늘은 친구 집에 가서 잔다는 린이와 그냥 이불 한 채 더 사면 안 되냐는 경준. 


린이는 자신이 보통의 삶과는 다른 형태로 살아가기 때문에 늘 경준에게 설명한다. 또 사면 낭비다, 고쳐서 쓸 수 있다 등 불필요한 소비는 쓸데없는 지출도 막을 수 있고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경준은 린이가 살아가는 방식을 알기에 린이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사주거나 선물하기 어렵다. 그래서 늘 사주고 싶은 것이 생겨도 새로 산 것이 아닌 것처럼 스토리텔링을 가미해 자연스럽게 건넨다. 문제는 경준의 이런 행동이 린이의 신념과는 반대되는 행동이라는 것. 경준의 입장에서 배려였던 행동은 린이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그녀의 삶을 부정하는 행동이다. 그리고 이 문제의 시작은 경준이 처음 린이에게 들이대는(?) 사건 동네 놀이터 철거 반대 시위부터였다.


경준과 린이가 고등학생이었던 시절, 린이의 동네는 놀이터가 있었는데, 그곳을 허물고 새로운 건물을 올리기로 한다. 하지만 그곳에 위치한 놀이터가 소중하다고 판단했던 린이는 철거 반대 시위를 하게 되고, 시위를 하러 간 놀이터에는 이미 -한참 멀리 떨어진 동네에 사는-경준이 팻말을 들고 먼저 시위를 하고 있었다. 그 덕에 용기를 얻은 린이는 경준과 함께 열심히 시위를 하게 되고 어린아이들까지 합세하자 성공적으로 놀이터 철거를 막을 수 있게 된다.


이후 청소년 바자회에 참여한 린이가 중학생들에게 무시를 당하자 그때도 경준은 은근슬쩍 등장해 린이를 도와주고 응원한다. 재수하는 린이 앞에 나타나 수능 잘 보라며 선물을 주고 가기도 하고, 소개팅하는 남자들을 평가하며 린이가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입대 후에는 휴가에 나와서까지 린이 할머니의 병문안을 오고 린이는 이런 경준의 모습에 스며들어 제대 후 고백하는 경준을 받아들인다.


린이가 경준을 받아들인 이유는 그동안 자신이 봐왔던 경준이 어떤 모습인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자신과 생각이 비슷하고, 늘 자신을 응원해주고, 무슨 일이 있어도 곁에 있는 경준. 하지만 경준이 했던 행동들은 린이를 이해해서가 아니라 그저 린이의 마음에 들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던 계산된 행동이라는 것을 그때의 린이는 몰랐다. 아니, 헤어지는 그날까지도 몰랐다.


물론 둘이 어렸을 때 만났으니 경준은 린이가 계속 알바만 하고 지낼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고, 린이를 좋아하기만 할 때는 린이의 생활 전반을 속속들이 알지 못했을 테니 점점 현실에 부딪히기 시작했을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니까 애써 외면했을 것이고 나중에는 바뀔 것이라는 생각도 했을 수 있다. 하지만 경준이 그렇게 생각할수록 린이와는 점점 멀어져만 가고 있었다. 한 번도 그런 부분에 대해서 린이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고 둘은 서로를 알지 못한 채 그저 사랑만 있는 연애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린이에게 크게 공감하고 경준에게 실망을 하게 됐는데, 린이는 경준이 속으로 저런 생각을 한다는 것도, 자신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린이는 그간 경준에게 자신의 모든 모습을 보여주었고, 린이가 보기에는 경준이 그것을 모두 받아들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경준을 더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이고, 경준의 애정에 힘입어 자신의 삶을 더욱 힘차게 이어나갈 수 있었겠지. 하지만 알고 보니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형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가장 답답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은 사랑하는 경준이었다. 린이가 느꼈을 배신감과 허무함은 나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었다.


당연히 나이가 들면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힘들고 린이가 사는 방식으로 계속 살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린이는 결혼할 마음도 없고 가족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기 때문에 더더욱 홀로 살아갈 준비가 잘 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린이가 선택한 삶이고, 이후의 문제는 린이가 감당해야 한다. 사랑하니까 걱정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경준은 이미 그 전 단계부터 잘못된 방향으로 린이를 사랑하고 있었으니 린이와 더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린이가 결혼할 마음이 없는데 경준을 만나고 있는 것도 나쁜 일이라고 말한다. 당연히 대한민국 사회에서 결혼을 하는 것이 더 보편적인 결정이니,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라면 미리 말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상대가 당연히 결혼할 거라고 생각하고 미리 짐작하는 것은 좋은 판단이라고 할 수 있을까?


린이가 경준과 헤어지고 나서 하는 말 중 "헤어질 이유가 있으면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라는 대사가 있다. 많은 커플들이 이것만 아니면 괜찮은데 하고 헤어짐을 보류한다. 나와 상대가 100% 같은 모습일 수는 없지만 상대에게서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그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분은 바로 헤어질 이유가 되는 것이고, 그 이유는 사랑을 절대 이길 수 없다. 지금 회피하고 열렬히 사랑한다 한들 그 이유는 사라지지 않고 또다시 부메랑처럼 돌아올 것이다. 누군가 한 명이 바뀌어야 하는 부분이라면 그것은 폭력이 될 것이고.


래서 나는 시즌 2가 제작된다고 해도 린이가 경준을 위해 삶의 형태를 바꾸는 방향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린이의 입장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 조금이나마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한민국에 린이와 같은 비주류의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존중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스타트업 다녀봐서 할 수 있는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