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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오 Feb 22. 2020

[축구, 그리고 숫자] EP 4: xPoints

데이터로 보는 '레스터 시티 동화'

레스터 시티의 역사적인 시즌

2015-16 EPL 시즌은 리그 역사상 제일 극적이고 큰 이변이 있었던 시즌이라고 할 수 있다. 0.02%라는 불가능에 가까운 우승확률로 시즌을 맞이한 레스터 시티가 세계적인 빅클럽들을 제치고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것이다. 이전까지 단 한 시즌을 제외하고 1992년 공식 출범한 EPL의 역대 우승팀은 단 네 팀(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아스널, 맨체스터 시티)뿐이었다. 이제 2015-2016시즌의 레스터 시티는 1994-95시즌의 블랙번 로버스와 함께 위 네 팀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두 팀이 되었다. 만년 우승후보가 아닌 새로운 팀이 우승한 것만으로도 주목받을 일이지만 불과 7년 전, 3부리그에 소속되어 있던 팀의 우승은 역사적인 업적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어떻게 2015-16시즌의 레스터 시티는 불가능에 가까웠던 우승을 이뤄내고 '레스터 시티 동화'를 쓸 수 있었을까? 


레스터 시티의 돌풍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단골 우승 후보의 부진이 큰 부분을 차지했다. 단순 순위만 봐도 리버풀, 첼시가 각각 8위, 10위로 평소보다 낮은 순위(적은 승점)를 기록한걸 볼 수 있다. 하지만, 승점만 보고 팀의 한 시즌을 평가하는 것은 득점 수만 보고 공격수를 판단하는 것과 비슷한 단편적이고 결과론적인 접근이다. 득점 지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기대득점' 지표가 있듯이 승점과 연관된 '기대승점' 지표를 활용하면 2015/16 시즌에 레스터의 활약과 'Big 6'의 부진을 더 명확하게 분석해볼 수 있다.

(해당 글에서 사용될 모든 데이터의 출처는 https://understat.com/ 사이트입니다.)


xPts (Expected Points, 기대승점)

지난 글에서 공격수를 평가할 수 있는 효과적인 지표이자 근래 축구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데이터 지표로 xG (Expected Goals, 기대득점)에 대해 소개했었다. '기대득점'이 주목받는 이유는 xG 데이터의 활용도가 비단 공격수 평가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팀 내 개인의 xG(기대 득점) 데이터를 합산하면 팀 단위의 xG를 계산할 수 있다. 그리고 특정 경기에서 상대 팀의 xG는 우리 팀의 xGA (Expected Goals Against, 기대실점)로 환산된다. 그리고 이 xG와 xGA를 기반으로 각 경기에서 두 팀의 xPts (Expected Points, 기대승점)을 계산할 수 있다. 


xG는 슈팅 찬스를 기반으로 하며 한 경기에 나온 모든 슈팅 찬스(그리고 슈팅 찬스 허용)에 각 xG와 xGA 값이 부여된다. 이 값을 사용하여 Monte-Carlo 방법으로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리면 각 팀의 xPts (기대승점)을 계산할 수 있다. 기대승점 값은 최대 3점(이겼을 시에 획득하는 승점)에서 0점(졌을 때 얻는 승점) 사이의 값을 갖게 된다. 


강팀의 기준

승점과 기대승점의 관계는 득점과 기대득점의 관계와 일맥상통하다. 팀의 실제 승점(Pts)이 기대승점(xPts) 값보다 클 때 크게 두 가지의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운이다. 앞선 글에서 여러 번 얘기했듯이 축구에서 운이 차지하는 지분은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여러 시즌을 분석하는 것이 아닌 단기간의 성과를 평가할 때는 운의 영향이 더 클 수 있다. 한 팀의 공격진이 평소보다 뛰어난 골 결정력을 선보이거나 수비의 실책이 평소보다 덜 나왔던 시즌이라면 해당 팀의 승점이 기대승점 보다 높게 기록될 수 있다. 반대로 얘기하면 매년 기대승점 이상으로 실제 승점을 쌓아왔던 팀도 불운으로 인하여 특정 시즌에선 기대승점 이하의 승점을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 

   

두 번째로, 실력이 있는 강팀일수록 기대승점을 뛰어넘는 결과를 낼 확률이 높다. 흔히 강팀을 얘기할 때 질 경기를 비기고, 비길 경기에서 이기는 팀이 강팀이라고 얘기한다. 기대승점 개념을 알면 이 얘기가 어떤 의미인지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공격을 마무리하는 능력이 좋고 마지막 수비가 견고하면 확률상 계산되는 득점보다 실제로 더 많은 득점을 하고 더 적은 실점을 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기대승점보다 실제 획득하는 승점 값이 더 클 확률로 이어진다.

 

실제 승점과 기대승점의 차이 값

실제 승점과 기대승점을 함께 분석하면 예상했던 승점보다 얼마나 더 많은 승점을 획득했느냐를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팀의 실제 승점이 기대승점 보다 2점 더 많으면 그 팀은 비길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고 간주할 수 있다. 


기대승점 보다 실제로 더 많은 승점을 기록했을 때 실제 승점에서 기대승점을 뺀 값 (승점 - 기대승점)은 양의 값을 가지게 된다. 이를 ‘실제 승점과 기대승점의 차이 값'으로 정의하면 강팀일수록 이 값이 클 것이며 약팀일수록 값이 작고 음의 값(실제 승점이 기대승점에 못 미친 경우)을 가지게 될 것이다. 물론, 운의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시즌 내 특정 기간이 아닌 여러 시즌의 결과를 분석한다면 운의 요소를 줄일 수 있다. ‘실제 승점과 기대승점의 차이 값'이라는 개념을 통해 2014-15시즌부터 2018-19시즌까지 5년 동안 EPL 상위권 팀과 2015-16시즌 레스터 시티의 기록을 살펴보겠다.


'Big 6'의 부진

시즌별 EPL 순위. 단순히 순위표만 봐도 다른 시즌과 비교했을 때 2015/2016 시즌 ‘Big 6’의 부진이 한 눈에 보인다.

2000년대 EPL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아스널, 리버풀이 꾸준히 리그 순위 상위권에 랭크했으며 이들을 ‘Top 4’라고 지칭했다. 그리고 2010년대에는 맨체스터 시티, 토트넘의 상승세로 ‘Top 4’에 두 팀이 추가됐으며 'Big 6'라고 일컫는 6강 체제가 EPL에 자리잡혔다. 2015-16시즌, ‘Big 6’는 여느 때 보다 초라한 성적을 거뒀다. 순의표만 봐도 매년 6위 안에 드는 ‘Big 6’ 중 무려 3팀이 6위권 밖에서 시즌을 마감했다. 이를 위에서 언급한 ‘실제 승점과 기대승점의 차이 값'을 활용하면 한 층 더 깊이 있는 분석을 할 수 있다. 


실제 승점에서 기대승점을 뺀 값을 나타낸 그래프. 'Big 6'는 대부분 그 차이가 양의 값을 가진다.

강팀일수록 실제로는 기대승점 보다 더 많은 승점을 기록할 확률이 높다고 위에서 얘기했었다. 실제로 2014-15시즌부터 2018-19시즌까지 2015-16시즌을 제외한 네 시즌 동안 'Big 6'는 대체로 기대승점 보다 많은 승점을 기록했으며 그 차이가 양의 값을 가진 것을 그래프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평균적으로 기대승점 보다 6점을 더 기록했고 ‘Big 6’팀이 기대승점 보다 적은 승점을 기록한 경우는 네 시즌 통틀어 단 네 번 뿐이었다. 하지만 2015-16시즌은 무려 4팀이 기대승점 보다 적은 승점을 기록한 시즌이었다.


그러면 리그의 다른 팀과 비교 했을 때 ‘Big 6’의 차이 값은 어땠을까? 한눈에 비교해 볼 수 있게 ‘실제 승점과 기대승점의 차이 값’으로 리그 순위를 매겨봤다.

'실제 승점과 기대승점의 차이 값'을 기반으로 한 순위표 ('Big 6' 중심)

차트에서 볼 수 있듯이 'Big 6'는 통상적으로 ‘차이 값’ 순위에서도 매 시즌 상위권에 랭크한다. 4번의 부진을 제외하면 매 시즌 6팀이 10위안에 들었다. 다만, 2015-16시즌은 맨유, 토트넘을 제외한 무려 네 팀이 리그 최악에 가까운 14, 15, 18, 19위에 랭크했다. 매년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던 여섯 팀 중 네 팀이 동일 시즌에 리그에서 손꼽힐만한 초라한 모습을 보여줬다. ‘Big 6’의 전례 없는 부진으로 인해 다른 팀의 우승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컸던 2015-16시즌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팀이 바로 레스터 시티였다.


레스터 시티의 활약

레스터 시티는 2015-16시즌 기대승점 보다 12점이나 많은 승점을 기록했으며 이는 해당 시즌 리그에서 2위에 해당하며 어느 ‘Big 6’팀 보다도 뛰어난 수치이다. 

'실제 승점과 기대승점의 차이 값'을 기반으로 한 순위표. 2015-16시즌 레스터 시티 기록은 단연 독보적이다.

2015-16시즌을 제외하고 2014-15시즌부터 네 시즌 동안 레스터 시티는 기대승점 보다 더 낮은 승점을 기록했으며 리그 내에서도 그 차이 값은 하위권에 가까웠던 것을 보면 2015-16시즌이 이례적으로 운이 많이 따라준 시즌이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레스터 시티의 우승이 단지 운으로만 이뤄졌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레스터 시티는 해당 시즌, 리그에서 4번째로 많은 기대승점을 기록했으며 이는 레스터 시티가 충분히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해당 기대승점 값 또한 지난 5년간 우승팀의 값 중 제일 낮았으며 레스터 시티가 기록한 실제 승점 또한 지난 8년간 우승팀 중 제일 낮았다. 여러모로 2015-16 EPL 시즌이 전례 없는 시즌이었던 것은 분명하며 그 어느 때 보다 레스터 시티가 우승할 수 있는 적절한 조건이 갖춰진 시즌이었다.


스포츠의 묘미, ‘언더독의 반란'

‘레스터 시티의 동화'를 오직 기대승점을 통해서만 설명하는 것은 무리이다. 더 다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레스터 시티의 활약과 ‘Big 6’의 부진에 대해 세세하게 분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라니에리 감독의 리더십, 레스터 시티 선수단의 팀워크 등은 데이터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팀의 우승에 분명 큰 영향을 준 요소이다. 기대승점이라는 개념을 통해 레스터 시티의 돌풍과 ‘Big 6’의 부진이 얼마나 이례적인 일이었는지 알아보고 이 대단한 업적을 다시 한번 회상할 수 있는 시간이었길 바란다.


클리셰이긴 하지만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다'라는 말이 레스터 시티의 2015-16시즌에 정말 잘 어울린다. 선수단 몸값은 리그 최상위보단 최하위에 가까웠고, 불과 7년 전 3부리그 소속이었던 레스터 시티였다. 이런 팀이 선수 영입에 천억 단위로 쓰는 맨시티, 맨유 등 만년 우승후보를 제치고 우승을 일궈낸 업적은 진정한 ‘언더독의 반란'이었다. 그리고 레스터 시티는 축구 팬뿐만 아니라 많은 스포츠 팬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사람들은 이변에 열광하고 언더독의 성과에 희열을 느낀다. 강팀에 비해 승리 확률은 낮지만 ‘도전자' 입장의 언더독은 열정을 바쳐 싸우고 응원하는 팬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그리고 가끔, 이변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세상에 결과를 보장하는 일은 어떠한 것도 없고 성공적인 성과를 이룰 확률은 높을 때 보다 낮을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릴 응원해주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꿋꿋이 우리만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어쩌면 우리는 인생에서 '언더독'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승 확률은 낮지만, 이변을 꿈꾸는 스포츠팀과 동병상련하여 ‘언더독의 반란'에 더 열광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공감대를 끌어내는 이 점이 우리가 스포츠를 사랑하는 이유이고 스포츠가 아름다운 이유라고 생각한다. 레스터 시티의 우승처럼 우리만의 ‘레스터 시티 동화’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길 바란다.



이미지 출처: https://www.si.com/planet-futbol/2016/12/29/leicester-city-epl-title-top-stories-2016

데이터 출처: https://underst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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