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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나비 Nov 30. 2022

나이에 대한 단상

나의 나이테


10살 때 나를 상상해 본다. 국민학교 3학년이다. 눈을 감고 생각해보면 언제나 즐거워하고 잘 웃던 내가 있다. 나는 짜증 보다는 웃음이 많은 아이였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도 즐거움을 느꼈고, 밝은 표정을 지었다.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부족한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디서 채워지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잠시 힘들고 괴로운 일도 어느 사이엔가 채워지는 마법을 경험했다. 친구들도 정말 많았고, 이상하게 모든 친구들이 나를 좋아했다. 그 또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11살 때부터 방송국 합창단을 했다. 그전에 내가 느꼈던 행복감이란 건 무엇이었던가. 늘 자신감 있고, 즐거웠던 아이는 어디로 간 걸까. 대부분이 부자인 아이들은 갖고 싶은 걸 전부 갖고 있었다. 처음 보는 예쁜 옷과 구두가 부러웠다. 1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매번 프로그램에 나갈 수 없으니 그중 10명에서 20명을 뽑아야 하는 건데, 얼굴이 예쁘고 무용을 잘하는 아이들, 그도 저도 아닌데도 예쁜 옷을 많이 가진 것 같은 아이들이 자주 뽑혔다. 그런 것에 대한 부러움과 알 수 없는 허탈감을 느꼈기에 삶이 조금 지루해졌다. 나는 목소리 특성상 알토였는데 엄마는 소프라노가 아닌 것이 늘 불만이었다. 느낀 감정이 무엇이었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그걸 잘 표현할 수도 없었다. 꼭 합창단 일이 아니었더라도 그때부터 세상이 내가 생각하는 아름답고 진실된 곳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었다.


나이에 대한 단상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눈을 감으니 왜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매년 달력 12장이 뜯겨 나가면서 먹는 나이 말고 스스로 달라져가고 있음을 느끼는 마음의 나이테라는 것이 있다. 그 첫 번째 나이테가 그 맘 때가 아니었을까. 아주 우울하기만 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어차피 우리들 모두 나이를 먹고, 세상을 알아가야 하는 거니까. 마냥 밝고 즐거운 마음으로만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그 마음 그 상태대로 한동안 흘러갔던 것 같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때 또 한 번 나이를 먹었다. 그건 나이를 먹고 어른스러워지는 상태로의 변화인지 더욱 아이 같은 마음으로 변하는 길목이었는지는 아직도 확실히 모르겠다. 늙음이라는 글자와는 상관없지만 열정이란 걸 모르는 삶에 열정이라는 불씨가 생긴 변화이니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테를 둘러줘야 할 것 같다. 그때부터 무엇인가가 되고 싶고, 열심히 노력하면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가 굉장히 중요하고, 그걸 제대로 못한 것에 대해서 우울했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대상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 걸 알겠다. 정말로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열정을 품었고, 그 열정을 오랜 시간 불태웠다는 것에 있다. 살면서 그 열정은 여러 번 다른 것들로 바뀌지만, 그 최초의 열정을 품었던 때의 태도가 내 삶을 온통 물들게 되었던 것이다. 누구나 그럴 수 있지만, 또 누구나 그래 본 적은 별로 없을지 모를 그런 시기였다.


다시 어느 시기를 넘어 나이를 먹었던 건지 눈을 감는다. 이번에는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생겨난 그 시절 어느 때쯤이었을 테다. 그때 나는 또 한 번 나이를 먹었다. 삶을 바라보고, 삶을 살아내는 자세가 많이 바뀌었다. 이전에 가졌던 열정 따위는 모두 잊어버릴 정도로, 아이들을 지켜내고 자라나게 하는데 애썼다. 그건 새로운 내가 생겨난 때가 시작되었다기보다는 나라는 존재가 송두리째 없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물론 나라는 인간의 특수성으로 인한 게 아니라 자연의 섭리였다는 걸 안다. 그런 시절이 20년 가까이나 이어질 수 있었다는 건 신이라는 존재가 어머니로 분해 세상에 왔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난 또 하나의 테를 드리우며 새로운 나이를 시작하고 있는 줄 안다. 좀 더 시간이 흘러야 더 명확하고 선명해 보이리라는 것도 분명하다. 어쨌든 나는 자연의 섭리로 얻게 된, 엄마라는 나이테를 넘어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10살 때의 나를 다시 불러오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나였던 시절은 그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세상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다 알고 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나라는 변함없는 사실.  그런 나는 우울하고 불만 가득한 사람이 아니라 어떤 일에도 웃을 수 있고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사랑할 수 있는 넓고 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일 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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