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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나비 Dec 01. 2022

나에게 남은 시간이 단 하루밖에 없다면

일주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에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먼저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건 순전히 감각의 일일지 모른다. 보고, 듣고, 만지고, 그리고 무언가의 냄새를 맡고 맛을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단 하루밖에 남아 있지 않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가장 해보고 싶을까.


또 한 가지, 산다는 건 관계 안에서의 일이다. 갓난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죽는다면 그 아이와 관계있는 사람들에게 한없이 슬픈 일이다. 또 그 아이와 관계없더라도 이미 삶에서의 즐거움, 관계 안에서의 행복을 느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 갓난아이의 죽음에 마음 아파할 것이다. 그런 것도 못 누리고 세상을 떠나버린 가엾은 영혼이라고.


나에게 단 하루가 남아있을 뿐이라면 내가 가장 느끼고 싶은 것과 가장 함께 하고 싶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지금껏 살아온 날들이 대충 49 곱하기 365를 하면 17000일이 넘는다. 그 날들 중 하루를 소환해서 살아보고 싶을 것인가 아니면 전혀 새로운 모험을 하려 내게 주어진 이 유일한 하루를 살아 볼 것인가. 고민에 빠진다. 머릿속으로 흘려버릴 고민이라면 잠시 머뭇거릴 텐데, 글로 쓰려고 앉아 있으니 그야말로 지독한 고민이 시작되는 것 같다.


우선 살아갈 날이 단 하루 남은 자이므로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되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는 사이에도 1초 1초 흘러가서 하루 남은 시간을 갉아먹고 있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말이다. 내가 기억이란 걸 시작했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내 삶을 반추해본다. 문득 내 살아온 삶은 왜 이리도 짧게 느껴지는지.. 주어진 시간의 길이는 단지 물리적인 측정만 가능한 게 아니지 싶다.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거린 24시간과 어딘가 새로운 곳을 모험한 24시간의 길이는 같을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내 삶의 길이는 참으로 짧구나 하는 회한 섞인 슬픔을 드러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니 남은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이런 길이의 관점으로만 생각한다면 난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하루가 다 끝날 때까지 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 같다. 목적지가 필요한 게 아닌 단지 그 여정을 위한 떠남을 말이다. 그러나 이 길이의 연장은 도무지 의미가 없으니 생각으로만 남겨 두어야 할 것 같다.


내 감각이 지금 무엇을 하면 주어진 하루를 최대치로 느낄 수 있을까, 마지막 남은 1초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난 무엇을 할 때 가장 나다왔고, 그 시간을 온전히 살았는지 생각한다. 내가 좋아했던 장소, 음악, 책, 그림, 음식…. 그 모든 것들을 떠올려 보려 애쓰지만 마음이 조급하니 제대로 생각나는 것이 없다.


내게 남겨진 날이 일 년이라면, 한 달이라면, 아니 일주일이면 얼마나 좋을까. 갑자기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엄청난 길이로 다가온다. 일주일만 살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는 우스운 독백까지 할 것 같다. 단 하루는 너무나 짧다. 난 어떤 준비로 하지 않았으니까. 죽음은 그만큼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관념적인 것이었다.


어차피 주어진 시간이 단 하루라면, 그 하루를 쪼개어 24개로 만들어 봐야겠다. 그리고 그 단위별로 내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을 채워 넣는 계획을 세워보면 어떨까. 갑자기 하루가 24시간으로 쪼개어지니 조금은 빛이 보이는 것 같다. 그리고 어차피 죽을 것이니 잠을 잘 필요가 없으니 하루가 이틀이 되는 마법까지 생긴 듯. 완전한 체념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을 변형하니 잠깐 숨이 쉬어진다.


시간 단위로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죽기 전에 꼭 보고 싶은 사람, 나를 꼭 보고 싶어 할 사람이 24명이나 될까. 그렇진 않을 것 같다. 부고를 듣고 안타까워할 사람들은 있지만, 굳이 그를 생전에 꼭 봐야 했다고 한탄하고 슬퍼할 만큼 안타까운 사람들이 몇 안 되는 것이다. 어쩌면 단 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단 한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24시간을 보낼지도 모르겠다. 그의 모든 것을 눈에 담으려 애쓰며 삶을 마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아름다운 죽음이 있을까 싶다. 그래도 한 번 더 부탁하고 싶다. 하루 말고 일주일로 늘여 줄 수 없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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