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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나비 Dec 12. 2017

편지를 써야하는 이유

폴 오스터, <내면 보고서>에서 발췌...


...그녀는 당신이 부탁한다면 어떤 편지든지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다. 전부 다 공개하기 꺼려진다면 기간을 정해 놓고 그 기간 동안은 모두 봉인해 둘 수도 있다-둘 다 죽은 후 10년, 20년, 50년. 그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젊을 때, 특히 1967년에서 1968년까지, 그녀는 런던에 있고 당신은 파리에 있다가 뉴욕으로 오게 되면서 떨어져 지냈던 그 14개월 동안 특히 그녀에게 편지를 많이 썼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얼마나 많이 썼는지는 몰랐다. 1백여 통이 있고 페이지로 치면 5백 페이지가 넘는다는 말을 듣고 숫자에 깜짝 놀랐다. 산 넘고 물건너 날아가 이제는 북부 뉴욕 주에 있는 상자 속에 모셔진, 거의 잊힌 그 오래된 메시지에 그토록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니 놀라웠다....
당신이 불과 열아홉 살이었던 1966년 여름부터 내내, 그 후로도 오랫동안, 심지어 1970년대 말에 당신의 결혼 생활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 보낸 편지들이었다. 당신은 이 책을 계속 써나가며 소년 시절의 정신적 풍경을 탐색하는 것과 함께, 아주 오래전에 썼던 그 글들을 읽으며 청년 시절의 당신을 다시 찾아갔다. 너무나 오래전이라서 마치 낯선 타인이 쓴 글을 읽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사람이 이제 당신에게는 너무도 멀고, 이질적이고, 미숙하게 느껴졌다. 필체도 지금의 필체와는 닮지 않은 엉성하고 급하게 흘려 쓴 필체였다. 당신은 그 자료를 천천히 소화하여 시간 순서대로 늘어놓으면서 이 엄청난 양의 종이들이 바로 당신이 열여덟 살 때 쓸 수 없었던 일기이며, 그 편지들은 당신의 사춘기 후반과 청년기 초반을 담은 타임캡슐, 기억 속에서 거의 희미해진 시기를 가장 선명하게 잡아 낸 사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당신에겐 과거를 향해 직접 열리는, 이제야 찾아낸 유일한 문이라는 점에서 귀중한 것이었다.
초기 편지들이 가장 당신의 흥미를 끈다. 당신이 열아홉 살 때와 스물두 살 때(1966-1969)썼던 것들이다. 스물세살 생일 이후에 쓴 편지들 속에서는 그 전 해 쓴 편지들에서 보다 당신이 더 나이든 것 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당신은 아직 젊고, 여전히 스스로에 대해 확신이 없지만, 지금의 당신 모습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하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듬해 겨울에는, 그러니까 막 스물네 살로 접어든 직후의 당신은 명백하게 당신 자신이다. 당신의 필체와 산문 어투 모두 지금의 것과 거의 동일하다. 스물세 살과 스물네살, 그리고 그 이후의 모든 세월은 잊어라. 당신의 흥미를 가장 강하게 끄는 것은 뉴어크에 있는 어머니의 아파트에서, 전원적인 메인 주에 있는 1박에 6달러짜리(식사 포함) 숙소에서, 파리에 있는 1박에 2달러짤리(식사 미포함) 호텔에서, 맨해튼 서부 115가의 작은 아파트에서, 모리스 카운티 숲 속 어머니의 새로운 집에서 편지를 쓰는, 소년도 남자도 아닌 방황하는 타인이다. 당신은 이제 그 인물과 접촉이 끊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페이지 위에서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이제는 그를 알아보기가 힘들다.

-폴 오스터, <내면 보고서>





편지를 써 본지 얼마나 오래되었던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루에도 몇 장씩이나 되는 편지를 쓰던,
그런 시절이 내게도 있었던 것을 기억해 내면서
긴 글을 옮겨 보았다.
이 부분이 참 마음에 들고,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읽는 순간 이 모든 문장들이
이미 내가 생각해오던 것인 양 반가웠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빵굽는 타자기>... 라는 책을
또 빌려 오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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