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아이
신발 속에 대못이 박혀 있었다던가 하는 일은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지는 못했다. 발에 이물감이 느껴져 걸음을 불편하게 만들었을 뿐, 내 심장의 중심부까지 관통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나는 그때, 그런 고통을 준 사람들을 그저 “영혼에는 손 하나 까딱 못할 인간들”이라 치부하며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길을 잃는 일은 달랐다. 길을 잃는다는 건 단순히 집으로 가는 길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 속에서 내가 놓여 있는 자리를 잃는 일과 같았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익숙한데도 모든 것이 낯설고, 발걸음을 뗄수록 더욱 불안이 쌓여 가는 경험. 어린 나에게 그것은 삶 전체를 흔드는 거대한 사건이었다.
도서관에 가야 했다. 조별 과제였고, 직접 발로 뛰어 자료를 모아야 했다. 길을 잘 몰랐던 나는 아이들 뒤를 졸졸 따라갔다. 그들의 발소리만이 내 이정표였다. 처음에는 장난처럼, 나를 놀리듯 빠르게 걸음을 옮기던 아이들은 어느 순간 아예 사라져 버렸다. 나 혼자 길 위에 남겨졌다.
심장이 짜게 식었다. 발끝은 어느 쪽으로 향해야 할지 몰라 방황했다. 낯선 건물과 전봇대, 차들이 오가는 소리, 어쩐지 하나같이 나를 모르는 세계처럼 느껴졌다. 큰 길로 나서서 무작정 일자로 걷기 시작했다. 마치 어디로든 가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은 절박감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길가에서 풍선을 나눠 주던 아저씨가 내게도 하나를 건넸다. 손바닥 위에 내려앉는 가벼운 공기 주머니. 바람결에 흔들리는 풍선의 줄이 손가락을 간질였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 작은 울림이 일었다.
“아직 이 세계는 평화롭구나.”
나는 분명 세상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는데, 그 한켠에는 누군가의 사소한 친절이 살아 있었다. 풍선 하나가 설렘과 슬픔과 위안을 동시에 데려왔다. 아이러니했다. 눈물이 차올라 흐느끼면서도, 한편으론 웃고 있었다. 세상은 차갑게 나를 밀어내면서도, 동시에 한 줌의 따스함을 내밀어 주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다리는 점점 저려왔고, 무릎은 돌처럼 굳어 갔다. 눈물이 핑 돌더니 이내 목소리마저 넘쳐 흐느낌으로 터져 나왔다.
‘이대로 집을 못 찾으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이대로 학교에서 사라져 버리면, 나를 따돌린 그 아이들은 무엇을 느낄까.’
어린 마음에 들끓는 질문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나를 삼켰다. 나는 길 위에서 울면서 걷고 또 걸었다.
그때, 앞에서 세 명의 교복 입은 언니들이 다가왔다. 햇볕에 반짝이는 칼단발 머리, 가지런히 접힌 치마 주름. 그들은 내 울음소리를 듣고 멈춰 섰다.
“아가, 왜 울고 있어?”
나는 중간중간 흐느낌에 말이 끊기면서도 겨우 대답했다.
“숙제 때문에 도서관 왔다가, 길을 잃었어요. 친구들이 절 버리고 가 버렸어요.”
내 눈물은 샘물처럼 솟아올라 도무지 멈출 줄 몰랐다. 언니들은 잠시 놀란 눈빛을 주고받더니, 이내 나를 다독였다.
“널 버리고 갔다고? 어휴, 못된 친구들이네. 집이 어디야?”
나는 흐느적거리며 집 근처를 설명했다. 언니들 중 한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거기라면 알아. 언니가 같이 가 줄게, 걱정 마.”
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언니들의 말투와 표정, 한 걸음 앞서 걷다가 이따금 돌아봐 주던 시선. 그것은 타인의 무심과는 결이 다른 것이었다. 그들은 내게 필요 이상으로 친절했지만, 그것은 의무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난 배려였다. 기억은 희미하게 흩어졌지만, 그날의 공기와 언니들의 목소리는 내 가슴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그 따스함이 없었다면 나는 더 깊이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그 언니들의 교복은 내가 훗날 다니게 될 고등학교의 교복이었다. 아마도 대선배쯤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때의 언니들은 내 영혼을 어루만져 준 사람들이었다. 길을 잃고 방황하던 내게 먼저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 언니들이 내 글을 읽고 있기를, 혹은 어디선가 여전히 웃으며 살아가고 있기를 바란다.
만약 그렇다면 이 자리를 빌려 꼭 말하고 싶다.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세상은 여전히 따스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덕분에 버텼고, 덕분에 살아왔습니다. 보고 싶어요.”
나는 아직도 길 위에 서면, 그날의 언니들을 떠올린다. 길은 사라지지 않고, 사람의 온기가 내 안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