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을 바라는 남편
그 순간 어떤 익숙한 목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
“벨 소리는 들리지도 않, 이게,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나는 내 목을 부여잡고 몇 번 콜록거리다가 시아를 밀치고 오는 친정엄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둘이 싸웠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냔 말이다!”
“콜록, 엄마. 싸운 거 아냐.”
엄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시아를 바라보았다.
“싸운 게 아니면 이게 다 무어란 말이야? 저 애는 왜 네 목을 조르고 있어?”
시아는 여전히 초점 없는 눈으로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조금 전에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도 인식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손끝이 가느다랗게 떨렸고, 어깨도 숨을 고르느라 들썩였다. 엄마가 흥분하며 말했다.
“이게, 이게 무슨 일이야. 저 아이가 널… 어떻게 이런 일이.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해. 제정신이 아니야, 분명히.”
“엄마, 맞아. 저 애 지금 꿈꾸는 중이야.”
엄마가 대체 무슨 말을 내가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 채 설명을 요구하는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알기 쉽게 설명해 봐라.”
입을 열었지만 설명할 수는 없었다. 시아가 갑자기 픽 쓰러졌기 때문이다. 친정엄마가 황당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고 나도 그런 그녀의 늙은 주름을 바라보았다. 시아는 대체 어디쯤에서 길을 잃은 걸까. 이 아이의 외로운 꿈을 끝내 알아보지 못하는 내가, 이 현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엄마에게 설명하며 시아를 부축했다.
“이 애. 지금, 이 세상에 반쯤만 발 디딘 채로 살아. 그게 몽유병이야.”
친정엄마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별꼴을 다 보는구나. 어떻게 이렇게 살아? 이전에도 널 공격했니?”
“아니, 그렇지는 않은데. 방금은 처음 있는 일이야. 나도 놀라긴 했지만.”
시아를 제 방으로 눕히러 가는 내내 엄마의 한탄이 이어졌다.
“이 서방은 뭐라고 하더냐. 병원에는 데리고 가봤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시아 엄마도 몽유병 환자였대. 위험 요소 제거하고 스트레스 안 주면 된다고만 하던걸. 그이도 참, 제 자식한테 무심한 건지 오픈 마인드로 감싸주는 건지 알 수 없어. 나도 중간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그냥 내버려 두고 있었지.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지만.”
엄마가 입술을 달싹이더니 이내 말했다.
“그래도 이렇게 살면 곤란하지. 이제 주호도 있고, 저 애는 성인이 되었으니 어서 내보내거나 병원으로 보내거나 하라고 하면 안 되겠니. 아니면 주혜 너 주호 데리고 우리 집으로 들어오너라.”
“뭐라고? 주호 데리고 남편만 시아랑 같이 이 집에 두고 집으로 들어가란 말이야? 싸운 것도 아닌데?”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는 굳은 결심이 서려 있었다.
“타협을 봐야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래? 주호가 저런 상태의 애와 같이 자라나서 좋은 영향을 미칠 리도 없지 않겠니. 그냥 네가 우리 집으로 주호랑 들어와서 연락을 넣어. 저 애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지 말해주고 저 애를 어떻게든 하지 않는 이상 이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확실하게 이야기하렴. 저 섬뜩한 애랑 더 이상 같은 지붕 아래서 지내는 거 나는 허락해 줄 수 없다. 나도 힘을 실어줄 테니, 어서 짐부터 싸렴.”
그 말은 마치 마음속에 억눌려 있던 문장을 꺼낸 듯, 엄마의 얼굴은 한층 가벼워진 듯했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하는 말 하나하나가 다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애써서 외면하고 있던 질문들이, 엄마의 말 한마디에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정말 시아는 섬뜩한 존재일 뿐일까? 내가 본 영상 속 시아는 그렇게나 사랑받고 싶어 했는데. 게임 속에서라도 엄마를 다시 한번 만나고 싶어 했던 게 아닐까. 하지만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조용히 일어나서 짐을 쌌다.
“엄마 말대로 해. 주호는 어린 아기야. 지금이 중요하지.”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마음속 어딘가가 크게 뒤틀렸다. 내가 지켜야 할 게 주호 하나뿐이라면, 선택은 쉬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아는, 누군가에게 버려진 적이 있었다. 나는 그런 애의 두 번째 어른이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또 한 번 시아를 외면하려 하고 있었다. 조용히 낮잠을 자는 주호를 데리고 집을 나와 버렸다. 시아의 방을 지나치며, 나는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정적을 두려워했다. 그 안에 갇힌 고독이 이제는 더 이상 울지도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집으로 가면서 남편에게 전화했다. 시아가 몽유병 증상이 다시 나타났고, 내 목을 졸랐노라 말했다. 남편은 어째선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나는 그 애를 어떻게든 할 때까지 친정으로 가 있겠노라고 말한 후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아무 말 없던 남편이 신경 쓰인다. 하지만 내가 그 이의 생각을 알 수 있을 리는 없으니, 뭔가를 내가 할 방법도 없을 것이다.
친정에서 생활은 아주 평화로웠다. 부모님도 주호를 매일 보니 좋아하시고, 나도 주호가 웃을 일이 많아져서 즐거웠다. 친정집은 행복으로 가득했다. 내가 꿈꾸던, 정말 사람답게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렇게 지낸 지 한 달이 지나서야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다. 근처에 왔으니 잠시 만나자는 얘기였다.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고 얌전히 앉아 있는 남편을 보자 한숨이 새어 나왔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여기까지 부른 건지 알 수 없었다. 얘기를 할 거라고 해봤자 시아를 어떻게 하겠다고 하는 한마디면 만족할 일이거늘, 나를 굳이 만나서 얘기하고자 한다는 건 다른 할 이야기가 있다는 뜻일 터였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이 남자의 뒤통수를 보며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왔네.”
그가 뒤돌아본다. 심란한 얼굴을 한 채로. 그런 그 이의 생각을 알 수 없으니 달래줄 수 없다. 그가 조그맣게 입을 열었다.
“응.”
나는 또다시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삼키며 남편의 앞 의자에 걸터앉았다.
“시아는?”
하지만 남편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그가 커피를 들고 천천히 한 모금을 삼켰다. 결국 나도 한숨이 터져 나왔다.
“해결되지 않았구나.”
남편이 시아와 닮은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이 남자는. 남편이 말했다.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당신이 어쩌면 듣고 싶었을지도 몰라. 나는 사실, 이 이야기를 당신에게 몇 번이나 할 뻔한 적이 있어. 하지만 할 수 없었어, 시아 때문에. 그 애가 들을까 봐.”
“내가 듣고 싶었을 이야기라니, 무슨 얘기야?”
남편의 눈이 촛불처럼 살짝 흔들렸다. 그가 입을 열어 말했다.
“시아 엄마 이야기. 그녀의 이야기. 듣고 싶어 했었지 않아?”
나는 답 없이 남편의 복잡한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래, 분명 그랬다. 연애할 때, 몇 번이나 물으려고 했지만, 남편은 눈으로, 마음으로, 행동으로 거절해 왔다.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이의 모든 거절이, 오히려 내 마음속 궁금증을 부풀려 왔었다. 그랬던 그이가 말해주겠다고? ……이제 와서?
“이제 관심 없어요. 당신이 먼저 그랬잖아요? 우리의 미래가 더 중요하다고. 당신이 거부해 왔잖아요? 왜 이제 와서 그 이야기를 내게 하겠다는 거죠? 이해할 수가 없네요.”
남편은 내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었는지 커피잔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이가 말했다.
“아니, 이제 당신은 알고 싶지 않아도 알아야 해. 시아가 내 핏줄인 이상, 당신은 알고 싶어 해야 해. 시아를 이해할 수 없지 않았어? 알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내 낡은 폰을 훔쳐본 거잖아.”
나는 깜짝 놀랐다. 처음에 발견한 그대로 돌려놓고 나왔는데,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목으로 긴장이 삼켜지는 것이 느껴졌다.
“좋아. 하고 싶은 얘기, 해 봐. 당신이 하고 싶은 얘기, 내가 듣고 싶어 했던 시아 엄마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