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격 (3) '성숙'에서 뽑은 53개의 핵심 파트
일의 격 마지막 파트 '성숙'이다. 성숙은 개인 커리어 성장과 조직 성공을 넘은, 한 개인의 삶과 행복에 대해 주로 다룬다. 결국 커리어 성장도, 조직의 성공도 궁극적으로는 행복하기 위해 추구하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장', '성공' 이후 '성숙'으로 이어지는 구성이 참 와닿는다고 생각했다.
책은 나왔지만, 신수정 님은 계속해서 글을 쓰고 있다. 커리어 성장, 조직 성공, 성숙한 삶에 관심 있고, 이것들을 추구한다면 신수정 님 페이스북을 팔로우하길 추천한다. 정말 좋은 세상이다. 이렇게 깊은 통찰을 가진 분의 글을 내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시간에 볼 수 있는 세상이라니.
5) “상사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자신은 스스로 책임지지 않도록 일을 깔끔하게 하거나 또는 스스로 책임지는 법을 익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차피 자신 외에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곰곰이 생각할 기회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에 오히려 생존능력, 설득력, 사고력을 개발할 수 있다"
6) 중국 작가 장징푸는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이끌어주는 사람 또 하나는 뒤로 미는 사람이다. 우리는 이끌어주는 사람에게만 감사하지만 뒤로 미는 사람에게도 감사해야 한다고 한다. 이들에게 감사할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좌절을 딛고 새롭고 강한 인생을 살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8) ‘나를 밀어내는 사람'조차도 나의 삶에 도움이 되도록 만들 수 있는지의 여부는 바로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다.
4) 대개 과도하게 착하거나 과도하게 좋은 사람은 어렸을 때 부모 등으로부터 온 심리적 트라우마가 있다. 이로 인해 무의식에 내가 누군가를 구해야 한다는 자동화된 생각이 깔려있거나 착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 자신의 삶의 가장 큰 우선순위가 된다. 좋은 사람이어야만 사랑받는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6) 중요한 것은 나답게 사는 것이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남들의 기분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의 기준에 맞추는 것이다.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은 거절하기도 한다. 거절당해도 다시 도전한다. 오지랖 넓게 내가 다 해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스스로 해결하도록 돕거나 내버려 둔다. 돈을 쉽게 빌려주지 않는다. 고민이 되면 혼자 고민하거나 죄책감에 시달리지 말고 상대에게 그냥 이야기한다. 하고 싶은 말을 한다. 때로 독한 인간이라는 소리 듣는 것을 즐겨라. 쿨할 필요가 있다.
4) 살다 보면 ‘실패'란 당연하다. 그런데 내 열심과 능력을 못 알아준다고 술 먹고 상사나 고객을 원망하거나 또는 자책에 빠져 스스로 원망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 아니, 악화될 뿐이다. 그러고는 예전 방식대로 다시 도전해봐야 또 실패할 뿐이다. 겸허한 자세와 피드백을 통해 자신을 업그레이드할 ‘기회'로 여기고 용기 있게 찾아가서 피드백도 받고 새로운 준비를 한다면 그 ‘실패'는 인생의 값진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6) 어떤 벌어진 사건에 너무 일희일비할 필요 없다. ‘과거는 과거다' 나쁜 일이 벌어지면 좋은 일도 있으려니 하고 좋은 일이 벌어지면 감사하되 경계할 필요가 있다. 밤이 있으면 낮이 오고, 낮이 있으면 밤이 오는 게 인생이리라. 단지, 행운이 부족한 어떤 이에게는 밤이 좀 길고, 행운이 많은 어떤 이에게는 낮이 좀 길뿐이다.
3) 개인의 철학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의 생각은 둘 다 답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떤 삶을 살든 자신이 ‘선택'하려 사는 것이라면 괜찮은 것이다. 그런데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어떻게 산다면 그것은 괜찮지 않다.
8) 좋은 것은 그래도 경험해볼 필요가 있다. 이왕이면 안 해보고 ‘별거 아냐'라고 하기보다는 해보고 ‘별거 아냐'가 좋지 않겠는가.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이든 당당한 것이다.
10) 경험하지 못하면 선택하기 어렵다. 경험해보고 선택하면 된다. 좋은 학교 나와 대기업에 가거나 공무원이 되거나 의사가 되고 죽도록 아껴서 집 사고 연금으로 노후 생활을 하며 사는 것이 성공인 시대는 저물고 있다.
11) 자기 삶은 자신이 사는 것이다. 고급도 경험하고, 투자도 배우고 사업도 시도하고 글로벌로도 시도하고 다양한 것을 경험하면서 가능성을 선택하면 좋지 않겠는가. 물론 예전에는 이러다 굶어 죽기 직전의 사람들도 꽤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앞으로야 이런다고 굶어 죽기야 하겠는가.
1) 인간관계를 힘들어하는 분들에게서 발견하는 두 가지 특성이 있는데, 하나는 ‘과제의 분리'를 잘 못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일어난 일(사실)과 해석의 분리'를 잘 못하는 것이다.
2) 심리학자 아들러의 주장 중 하나인 ‘과제의 분리'는 자신의 일과 타인의 일을 구분하라는 것이다. ‘이 일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누가 받을 것인가?’가 누구의 과제인지를 결정한다.
3) ‘과제의 분리'를 하면,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 괘념하지 않게 된다.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그의 일이지 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나를 생각하고 대하는가에 따라 내 감정이 흔들리는가 아닌가는 나의 과제이다.
4) ‘과제의 분리'를 하면, 내가 누군가를 돕거나 벽을 허무는 것, 용서하는 것은 나의 과제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의 과제라는 것을 알게 된다.
5) 누구든 자신의 삶만 자신이 책임지는 것이다. 타인의 삶을 내가 책임질 수 없다. 그의 삶은 그의 책임이다.
6) 나는 나의 과제를 하고 그는 그의 과제를 한다. 나는 타인의 과제에 끼어들지 않고 타인은 당신의 과제에 끼어들지 않게 한다.
7) 다른 사람이 나의 길을 결정할 수 없다. 당신이 ‘과제의 분리'를 한다는 것은 당신이 카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바꾸기 위해 나를 바꾸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나를 바꿀 뿐이다. 나는 나의 일을 담담히 한다. 사람을 도울지라도 대가에 그리 연연치 않는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면 좀 쿨 한 삶을 살게 된다.
9) 왜 선택을 주저하는가? 그것은 새로운 가능성보다 현재가 주는 ‘혜택'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 혜택은 ‘자기 연민'일 수도 있고 ‘자기 옳음'일 수도 있고 현재 상태가 주는 ‘편안함'일 수도 있다. 놓지 않는 이유는 생각 부족, 의지력 부족이 아니라 그 혜택을 잃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10) 선택할 필요가 있다. 거울을 본다. 자기 연민 속에 빠진 자신의 몰골을 본다. ‘이제 그만하자'고 외친다. 그리고 면도(또는 화장)를 한다. 스스로를 가두는 방에서 나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싸워본다. 그게 다다.
1) ‘행복'에 관한 책들을 몇 권 읽어보니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유전적 요인이 50% 정도라고 한다.
2. 환경적 요인이 10% 정도라고 한다.
3. 나머지 40%는 매일매일의 습관이나 행동을 선택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스스로 의도한 행동'을 함으로써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4. 중요한 것은 행동한 결과가 성공일 때 행복한 것이 아니라 원하는 행동 자체를 한 것이 행복을 결정한다고 한다.
5. 성공해야 행복한 것이 아니다. 성공해서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해서 성공한다.
6. 그 행동의 성공 여부에 무관하게 자발적으로 적극 행동을 하면 그 자체로 행복해진다. 더 많이 행동하면 더 행복하다. 또한 행복해질수록 더 행동한다.
7. 결국 더 많이 시도하고,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감사하고, 더 많이 맛보고,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기뻐하고, 더 많이 여행하고, 더 많이 용서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울 때 행복해진다.
5) 매시간 빈둥거리다면 문제가 있지만, 매 순간 100% 빡빡하게 사는 것도 위험하다. 20% 정도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 좋을듯하다. 이래야 미래를 위한 고민도 하고, 가족과 책이나 자연을 즐기고, 비상 상황 시 백업으로 쓸 수 있다.
6) 의외로 열심히 살면서도 무언가 여유가 있으면 잘못 살고 있는 듯 죄의식을 느끼는 과도하게 성실한 분들이 꽤 있다. 죄의식을 놓을 필요가 있다. 삶의 20%는 좀 빈둥거려도 된다. 휴일에는 노셔라. 그게 오히려 삶의 건강한 지속에 도움을 줄지 모른다.
4) 생각이 행동을 만들기도 하지만, 행동이 생각을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5) 그러므로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먼저 행동하는 것도 괜찮다. 이러다 보면 어쩌면 그게 가식이 아니라 진짜 자연스러운 자신의 삶이 될지도 모른다.
2)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이런 통찰 넘치는 말을 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다. 환경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낼 뿐이다”
5) 인생에서 벌어지는 일들, 즉 환경에 어떤 책임을 돌릴 수 없다. 어떻게 사는가는 온전히 ‘자신의 책임'이다.
2) 우리의 큰 실수 중 하나는 어떤 발생한 사건으로 그 사람의 인격이나 특성을 정형화하여 해석하는 것이다.
3) 때로 이러한 정형화는 자신을 어떤 형편없는 모습으로 규정하도록 하고 그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한다.
6) 실수를 했으면 고치면 되고, 잘못을 하면 꾸중을 듣고, 성과가 안 나오면 교훈 삼아 다음에 잘하면 되고, 차였으면 다른 사람을 찾으면 된다.
7) 그게 다다.
1) 우리 뇌는 우리가 보고, 우리가 듣고, 우리가 느끼는 모든 것을 처리하지 않는다고 한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 전략을 쓰는데 그것은 ‘변화가 있는 것'만 저장하고 처리하려 한다는 것이다. 변화가 없는 상황이나 기간은 마치 그것이 우리 인생에서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지워 버린다.
5) 변화가 많은 삶을 살수록 인생은 길어진다.
5) 진짜 자유한 사람은 고급 슈트에 넥타이를 조이고 포르셰를 타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필요할 때 아무거나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다. 굳이 나는 성공한 사람이야라는 신호를 줄 필요가 없다. 타인의 눈으로부터 자유롭고 시그널을 주려 애쓸 필요 없는 사람이 진짜 자유인이고 부자다.
6) 보석은 진흙을 묻혀도 보석이고, 진짜 황금 덩어리는 먼지가 쌓여도 황금이다. 그러나 돌들은 금빛을 칠해서 은쟁반에 올려놔도 돌이다. ‘나는 금이니 좀 봐주세요'라고 외쳐도 본질은 여전히 돌이다.
9) 그 본질을 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내적 학식과 인격, 철학으로 무장하고,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자신감이 있으면 자신의 본질은 금이 된다. 그러나 자신이 스스로를 형편없는 사람으로 여긴다면 그 본질은 돌이 될 뿐이다. 나는 형편없고 돈도 학벌도 지위도 약한 사람이라서 강자에게 굴복하며 살아야 한다고 여기면 돌로 살 수밖에 없다.
10) 상대의 고작 몇 가지의 외적 ‘시그널'에 기가 죽고 쪼그라들고 좌절감이 든다면 돌로 살 수밖에 없다.
3) 우리는 흔히 ‘외부 사건'이 나의 감정(우울, 불안, 분노)을 만든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외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외부 사건에 대한 나의 생각과 해석'이 나의 감정을 만든다는 것이다.
5) 결국 누군가 또는 어떤 사건이 나를 힘들게 하고 좌절시키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힘들게 하고 좌절시키는 것이다.
6) 인간이 어떤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는 일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의미 부여와 해석이 극단을 향하여 갈 때, 인간은 스스로 고통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7) 이를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인가? 인지 심리학자들은 이에 대해 벌어진 사건을 자신의 마음에서 극단적으로 확대 해석하지 않고, 사건과 해석을 분리해서 사건을 쿨하게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라고 한다.
9) 삶은 오로지 자신의 책임이며, 자신이 삶의 주인이다. 그 누구도 그 어떠한 상황도 우리를 흔들 수 없다.
4) 인생도 그러하다. 과도하게 잘 풀리는 게 좋은 게 아니다. 고생도 하고, 좌절도 하고, 장애물도 만나면서 이를 극복하며 축적을 하나씩 할 때, 오히려 겸손할 수 있고 어려운 상황을 만나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5) 지금 인생이 잘 안 풀린다면? 축적의 시간으로 생각하고 감사하라. 지금 너무 잘 풀린다면? 겸손하고 최악의 상황과 미래의 전환을 대비하라.
6) ‘결핍'이 올 때 이를 ‘고통'이나 ‘원망'이 아닌 ‘기회'로 본다면 우리의 미래에 더 큰 가능성이 열려 있을 것이다.
7)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약할 그때, 바로 내가 강한 것이다.(When I am weak, then I am strong)’
8) 공적 생활과 사적 생활이 각각 통하는 법칙이 다르다. 사적인 영역에서는 ‘효율’보다 ‘낭비'가 때로 필요하고, ‘답'보다 ‘공감'이 필요하고, ‘똑똑함'보다 약간 ‘바보스러움'이 필요하다. ‘결론'보다 ‘과정'이 필요하고, ‘지시'보다 ‘함께함'이 필요하다. ‘냉정함'보다 ‘따뜻함'이, ‘몸사림'보다 ‘몸 씀'이 필요하다.
3) 아무리 잘 먹고 잘 살아도 자신의 삶에 자신이 ‘원인'이요 ‘선택자'요 ‘창조자'가 아니라면 인간은 행복할 수 없다.
4) 연구에 의하면 인간이 실제 자신의 삶을 통제하지 못하더라도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착각)만 해도 삶은 훨씬 건강하고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통제할 수 없다고 절망되는 환경, 직장 환경, 상사, 자녀 등에 쌓여있다고 해도 인간은 길이 있다.
5) 인간의 ‘생각'은 ‘실재'에 대한 ‘관점'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많은 경우 ‘관점'을 바꾸면 ‘실재'도 정말 바뀌곤 한다는 것이다.
6) 자신이 삶의 ‘원인'이요 ‘통제자'요 ‘자유인'으로 여기고 우뚝 서서 삶을 직면하자. 그러면 삶은 내게 그렇게 실재가 될 것이다.
4) 모건 하우절도 그의 책 [돈의 심리학]에서 이런 말을 한다. “부는 자유에 관한 것이면 독립에 대한 것이다. 부는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사람들과,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원치 않는 사람을 만나지 않고 원치 않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이며 그것이야말로 돈이 가져다주는 최고의 배당이다"
6) 부자이면서 지혜로운 이들은 대개 돈에 연연하지 않으면서도 돈을 번다. 돈 보다 시간이나 주변 사람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욕심을 절제한다.
2) 심리학자 아들러는 ‘타인의 인정을 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구하는 삶을 살게 되면,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만족시키는 삶을 살게 될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부모님의 인정, 상사의 인정, 친구의 인정에 적합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타인의 판단에 예민하게 된다. 궁극적으로는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는 것'으로 귀결된다.
4)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타인의 판단, 시선과 기대에 따라서 사는 삶, 타인의 칭찬과 인정을 구하는 삶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이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그저 쿨하게 받아들일 뿐이다. 물론, 타인의 조언과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모든 선택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
5) 우리의 삶은 우리의 것이다.
4) 우리는 ‘무엇을 얻고 싶은가?’에 대해서는 쉽게 답한다. 그러나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해서는 쉽게 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5) 얻고 싶은 것을 얻는 것이 자신이 원하는 삶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정말 원하는 삶은 다른 것일 수도 있다.
6) 그러므로 이런 질문을 다시 해보자. “그것을 다 얻었다면 그다음에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그것을 다 얻었다면 어떻게 살고 싶은가?” 그것이 바로 우리 삶의 진정한 ‘가치'일 것이다.
10) 이제 점점 진짜 자랑거리, 진짜 자부심을 가질 만한 것, 진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순위로 정할 수 없는', ‘자신만의 특별한 것'이다. ‘자신의 개성'이고 ‘자신만의 취향'이며 ‘자신만의 자신감'이다. 특히, 계급장을 뗀 공간에서는 그 또는 그녀가 가진 오프라인 스펙이나 지위로 인기나 존경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만의 독특한 매력과 재능으로 결정된다.
11) 가진 자들은 늘어나지만 욕심에서 자유한 자들은 점점 감소하고 있으니 ‘마음의 자유'가 더 희소하고 더 큰 자부심이 될 것이다.
12) 흥미롭게도 이런 것은 일부러 자랑하려고 하는데서 나오는 것도, 독특한 것을 해서 남에게 이겨봐야지 하는 경쟁심이나 열등감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자유인으로서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자연스럽고 자신 있게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스타일대로 사는데서 나오는 것이다.
2) 왜 다들 인정에 목마른가요? 그것은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모르고 살아서 그래요.
4) 매사 열정적이고 이기고자 하며 겸손하며 의지가 굳건해서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을지라도 그 뒤에는 여전히 충족되지 않은 무엇인가 있을 수 있다. 사실 그것이 자신의 삶을 성공케 한 원동력이지만 역으로 삶에 평안과 자유가 없게 하기도 한다.
5) 자신 안에 5살 또는 10살 또는 20살짜리의 작은 아이가 살고 있음을 깨닫고 그 아이를 이해해야지만 조금씩 자유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나는 불충분해', ‘나는 부족해'라고 독백하며 ‘사랑'이나 ‘인정'에 목말라하며 살게 될 수 있다.
5) 첫째는 지금의 ‘나’가 ‘진짜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한다. 둘째는 다른 사람의 눈에 착한 사람,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한 삶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라. 그것을 위해 살려고 하라. 남의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 때 타인에 대한 원망이 없어진다.
6) 착한 이들이여 ‘착함'을 벗어던지고 ‘당당하게’ 살아라. 진짜 착하게 살아야 할 사람들은 당신들이 아니라 착한 사람들을 이용하고 괴롭히는 나쁜 놈, 악한 놈들이다.
1) 사람은 물리적 병이나 사고 때문으로만 죽는 줄 알았다. 그러나 상심만으로도 죽을 수 있고, 절망만으로도 죽을 수 있다고 한다.
2) 이러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위험은 ‘스트레스'인데, 이중 ‘절망'과 ‘무기력'이 가장 위험하다고 한다.
4) 사람들이 암 선고를 받은 후에 심장마비나 뇌졸중으로 죽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생각 때문에 죽는 것이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환경도 그대로인데 자신만의 해석과 의미 부여로 어떤 사람은 죽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살기도 한다.
6) 생각의 차이는 이렇게 중요하다. 이에, 삶을 보는 자신의 관점을 ‘감사'와 ‘희망'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의 끈을 놓지 않고 유지하자. 그러면 우리의 삶은 훨씬 강해질 것이다.
3)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 힘든 이유는 자신에게 온 스트레스, 염려, 책임, 불안, 경제적 짐 등이 너무도 무거워서라고 생각한다. 왜 자신에게만 무거운 짐이 왔는가라고 원망한다.
4) 그러나, 실제는 그것의 가볍고 무거움과 삶이 힘든 것과는 관계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설령 자신의 염려, 불안, 책임이 물컵처럼 가벼워도 힘들 수 있다. 역으로 돌덩이처럼 무거워도 힘들지 않을 수 있다. 가벼워도 힘든 이유는 틈틈이 내려놓지 않아서이고, 무거워도 힘들지 않은 이유는 틈틈이 내려놓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힘든 것은 ‘무게'와 상관이 없다. ‘내려놓음'과 상관이 있다.
5) 물론, 자신의 책임과 염려, 불안, 스트레스를 완전히 내려놓거나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그렇게 살 수 없다. 그러나 틈틈이 내려놓을 수는 있다. 짐을 지되 틈틈이 쉬어가자. 그것이 삶에 짐이 있어도 가볍게 살 수 있는 비결이다.
2) 물론 스트레스가 생각을 할 여유도 빼앗아가고 건강도 망칠 수 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뭔가 돌파를 하는 경우는 스트레스가 하나도 없을 때가 아니라 약간의 위기감과 긴장감이 있을 때였다.
3) 심리학 교수 캘리 멕고니걸은 그녀의 유명한 그녀의 유명한 TED 강의에서 말한다. “스트레스는 당신의 적이 아니라 친구로 여기세요. 스트레스가 많으면 사망 확률이 43% 증가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흥미로운 결과를 발견했습니다. 스트레스를 해롭다고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많은 스트레스가 그 사람들의 사망 확률을 높이지 못했습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병 걸리고 죽는 확률이 높은 사람은 실제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그 스트레스가 자신에게 큰 피해를 준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4) 뇌과학자 이안 로버트슨도 유사한 말을 했다. “스트레스의 강도가 너무 세면 사람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그 스트레스는 사람에 따라 어떤 이에게는 자신을 발전시키는 ‘도전'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자신을 망가뜨리는 ‘위협'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통제력'입니다. 스트레스는 자신을 강하게 할 수도 있고 무너뜨릴 수도 있는데, 그 핵심 요소는 스트레스 자체에 있지 않고 스트레스에 대한 자신의 ‘태도'에 있습니다. 자신이 자신의 삶과 스트레스를 ‘통제'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스트레스가 도전일 뿐입니다"
1) 스페인 인지치료학자 라파엘 산탄트루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세 가지의 비합리적 신념에 대해 말한다. 1)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잘 되어야 돼. 2) 사람들은 나를 친절하고 공정하게 대해야 해. 3) 모든 일은 내 뜻대로 돌아가야 해. 그리고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분노하기도, 우울해하기도, 실망하기도, 아파하기도 한다.
2) 그러나 실제 가질 필요가 있는 합리적인 신념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1) 모든 것을 잘하고 싶어. 하지만 못한다고 해도 망가지는 건 아냐. 2) 다른 사람들이 내게 친절하게 대하면 좋겠어. 하지만 그렇게 안 해도 괜찮아. 3) 내 뜻대로 돌아가면 좋겠어.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어.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아도 괜찮아',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어'에 익숙하지 않다.
8) 마음의 건강은 집착을 버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3) 프로이트는 과거의 원인(트라우마)으로 현재의 어떤 일이 발생한 것이라고 하지만, 아들러는 사람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현재를 만든다고 했다.
5) 많은 사람은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서 성공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실패할까 두려워 열심히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에 자신을 제한하는 것들을 곰곰이 고찰해보라. 실패가 두려워 스스로를 제한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6) 프로이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의 현재 행동은 과거의 트라우마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바꾸기 어렵다고 한다. 과거를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들러의 주장이 맞다면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깨닫고 우리가 필요한 목적을 선택하면 더 이상 자신을 제한하는 한계에 묶이지 않는다. 현재의 행동과 현상을 바꿀 수 있다.
9) 당신의 삶은 당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4) 사람들을 움직이고 재미와 감동을 주는 스토리는 ‘간절히 원했지만 너무 얻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를 극복하고 성취하는 스토리다'
5) 나중에 나이가 들어 되돌아볼 때 자신의 삶에 있어서 어떤 순간이 가장 빛나고 기억날까? 바로 간절히 원하는데 얻는 것이 너무 어려웠던, 그러나 그것을 이루기 위해 분투했던 순간일 것이다.
6) 우리의 삶에 있어서 우리가 주인공으로 느끼며 사는 순간이 어떤 순간일까? 바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갈망한 순간일 것이다.
2) 많은 경우 우리는 어떤 일어난 ‘사실'이나 어떤 ‘환경', 자신의 ‘모습'이 자신의 삶을 좌지우지 한다고 생각한다.
3) 일어난 ‘사건'이나 주위의 ‘환경', 나의 ‘모습' 이 자체가 나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내가 부여한 의미(해석)’가 나의 삶을 좌지우지 한다는 것이다. 그 자체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것들에 ‘의미를 부여하여' 스스로를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만든다는 것이다.
4) 만일 이것이 진실이라면 행복과 불행, 감사와 원망, 기쁨과 슬픔, 용기와 좌절은 결국 ‘나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의미를 부여한 이는 타인도 세상도 아닌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5) 이는 또한 우리에게 희망을 제시하는데 우리의 삶의 어떠함은 ‘우리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자신감과 희망으로 이 세상과 일어난 사건을 볼지, 아니면 비관과 좌절로 이 세상을 볼지는 전적으로 나에 달렸기 때문이다.
3) 분노나 두려움, 미움, 혐오 등의 감정은 억누를수록 더 폭발한다. 그러나 재해석을 하면 완화되거나 사라질 수 있다.
6) 스스로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성격을 바꾸는 것도, 인내심을 기르는 것도 아니다.
7) 그러면 방법이 없는 것인가? 하나의 비결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세상이나 현상을 다른 관점으로 보고 재해석하면 인내심이 부족하고 성격이 좋지 않아도 감정 조절이 가능해진다.
8) 관점의 변화, 즉 재해석이 우리의 행동을 바꾼다.
3) 인간은 객관적 환경이 어려울 때 고통과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 않다. 자신이 환경을 통제할 수 없다고 여길 때 그 고통과 스트레스가 진정 커지고 확대된다. 그러나 자신이 환경을 통제할 수 있을 때 인내하고 이겨낸다.
7) ‘믿음'은 우리를 인내하게 하고 이기게 한다.
1) 인간은 모든 것에 ‘원인'이나 ‘이유'를 찾으려 하는 성향이 있다. 이에 어떤 일이 발생하면 논리를 만들거나 원인을 찾는다.
4) 그러나, 일어나는 모든 일에 이유와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 독약을 먹으면 죽고, 알코올을 마시면 취하지만 세상 일이 다 이렇게 인과관계가 분명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집어넣어 해석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불행이 발생한다. 사람은 이유와 원인을 찾지 못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기에 이유와 원인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이를 찾거나 만들어낸다.
6) 그러나 세상에는 모든 것이 법칙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여기 곳곳에 ‘우연'들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냥 의미 없이 발생하는 것'들이 있다.
9) 세상의 모든 일이 ‘우연'이라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필연'도 있지만 ‘우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의미 없이,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이 많다.
10) 이에 ‘벌어지는 일'에 겸허한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이 진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인간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해석'이라고 말했다.
11) ‘책임'을 회피하라는 것이 아니고 ‘집착'과 ‘자책'을 버리라는 말이다.
12) ‘인과관계'의 해석은 우리에게 동일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발전시키기도 하는 요인이기도 하지만 그냥 의미 없이 발생하는 일에 대한 과도한 해석으로 자신을 집착과 자책 속에 가둘 수도 있다는 것이다.
13) 세상에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의미 없는 일들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교훈'은 간직하되 과도하게 낙심하거나 슬퍼할 이유도 없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게 마련이고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다. 인생은 ‘새옹지마'이다. 우리는 각자 한 자유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길을 창조하며 선택하고 나타난 일은 쿨하게 받아들이면 될 듯 싶다.
2) ‘자유'라는 것은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선택 가능할 때 누릴 수 있는 힘이다. 자유는 너무도 멋진 것이지만 사실 행사하기 쉽지 않다.
3) 그 이유는 ‘불안’과 ‘두려움' 때문이다. 자유는 ‘불안’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사르트르는 심지어 ‘불안은 자유의 증거다'라고 했다.
4) 그러면 ‘자유'와 ‘도피'는 어떤 차이인가? ‘자유'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어도 자신이 책임을 지는 선택으로 맞서는 것인 반면, ‘도피'는 답답하고 힘든 현 상태를 일단 무책임하게 빠져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피'할 때는 잠시 마음이 편하다. 일단 현실을 빠져나오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는 불안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오히려 자유를 행사하려면 그 불안이나 두려움에 맞설 용기가 필요하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이 필요하다.
5) 흥미롭게도 자유 또한 선택할수록 더 얻게 된다. 자유의 삶의 선택에 익숙해진 사람은 더 많은 자유를 선택한다. 자유를 잃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유를 희망하지 않는 것이다.
6) 그러므로, 자유를 꿈꾸고, 선택해 갈 필요가 있다. 그것이 설령 작은 것이라도, 그럴 때 더 큰 자유를 선택해 나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관성으로 머무르게 된다. 그리고 설령 자유가 주어진다고 해도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1) 보스조르메니 나지는 인간관계에서 보이지 않는 ‘관계 통장'이 있다고 한다. 배려, 사랑, 칭찬, 코칭, 선물 등은 ‘입금'이고 폭력, 무시, 화, 비난 등은 ‘출금'이다. 서로 좋은 것을 주고받아 입금이 많이 쌓이면 웬만한 어려움이 생겨도 서로 견딜 수 있지만, 둘 다 또는 한쪽이 잔고가 없거나 마이너스 상태라면 조그만 위기가 와도 와르르 무너진다는 것이다.
5) 베풀어 줄 때도 상대가 어느 정도 갚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관계가 지속될 수 있다고 한다.
1) “두뇌에 가해지는 최악의 행동은 무엇인가?” 하버드 뇌과학자 존 레이티 박사의 답은 ‘소극적 삶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라 한다. 그냥 익숙한 대로 살고, 앉아서 내내 TV만 보고, 세상에 대해 호기심을 잃은 채 무관심한 태도로 살면 뇌를 약화시킨다고 한다. 쉽게 말하면 편하게 사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2) 그러면 뇌를 강하게 해서 머리도 핑핑 돌고 나이 들어도 생생하려면 1) 운동을 하라: 산책, 수영 등 특히, 지속되는 유산소 운동은 우울증에 특효약이라고 한다. 2) 새로운 것을 배우라: 댄스, 무술, 피아노, 기계 수리법 등 배우고 배워라. 3) 균형 잡히게 먹어라 4) 영성과 명상의 시간을 가져라: 기도, 신앙, 명상 등은 뇌에 큰 도움을 준다.
3) 흥미롭게도 사람은 대의명분이 아닌 ‘그깟 사소한 일'로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사람과 조직을 떠나기도 한다.
4) 그런데, 여기서 기억할 것은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깟 사소한 그 일 하나'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99도 상태에서 사소한 어떤 일이 1도를 증가시켜 100도의 기체로 만든 것이다.
5) 누군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매우 작은 일에도 예민하거나 인상을 쓰거나 화를 낸다면 그 사람의 스트레스가 터질 만큼 쌓였다고 여겨야 한다.
7) 만일 당신이 스트레스가 99도인 상황이라면? 만일 당신이 작은 일에도 예민해지거나 짜증과 화가 나거나 우울하고 슬퍼진다면 스스로가 위험 상황임을 인식해야 한다. 용기를 내어 당사자와 솔직한 대화를 하든, 여행을 떠나든, 심리 상담가를 찾든 그 온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
2)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서로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다. 특히,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낸 사람들로부터 영향받는다.
3) 꿈이 큰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자신의 꿈도 커지지만, 꿈에 냉소적인 사람과 같이 있으면 있는 꿈마저 사라진다.
4) 시간을 같이 보내는 사람을 바꾸기만 해도 자신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자신의 에너지를 다 빼앗는 사람들과는 빨리 헤어지는 게 상책이다. 그리고 나와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 큰 생각과 꿈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게 좋다.
6)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하려 애쓰지 말라. 환경을 바꾸고 만나는 사람들을 바꾸는 게 훨씬 빠른 길이다.
8) 평범해 보이는 주위 할머니, 할아버지 또는 아저씨, 아줌마 중에 일생의 귀인이 있을 수도 있다. 겉모습으로만 판단하고 무시해서 행여 일생의 귀인을 놓치지 않을까 유의하라.
9) 상대가 운전 기사라고, 서빙하는 종업원이라고, 후질구레한 잠바를 입은 아저씨라고, 수수한 차림의 아줌마라고, 학벌이나 외모가 그저 그렇다고 무시하는 사람들은 재산과 학력과 권력이 아무리 커도 자신들의 숨은 열등감을 드러내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10) ‘주위 사람 모두가 신(God)이다'라는 마음으로 산다면 진짜 신을 만날지도 모른다.
5) 현재의 상황과 환경을 핑계 대며 새로운 행동이나 기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영원히 그 상황과 환경 속에 있게 된다. 과감히 받아들이고 새로운 가능성을 강조한다면 현재의 상황과 환경이 바뀌어진다.
2) 서울대 의대 전홍진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멘탈은 정신 건강과는 좀 다른 얘기다. 멘탈이 강하다는 것은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람이 오히려 더 정신이 건강하지 않다.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오히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수용하고, 감정을 이야기하고, 감정에 자연스러운 사람이다"
4) 우리가 보기에 초강력 멘탈을 가진 이들은 사실 뇌에 문제가 있는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들이 많다는 것이다. 또한 후천적으로도 권력에 중독되면 뇌의 변화로 초강력 멘탈로 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5) 그러므로, 당신이 그리 멘탈이 강하지 않다면 그것은 ‘정상적'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과도하게 강한 멘탈을 가진 사람들이 ‘비정상적'일 가능성이 높다.
6) 다만, 멘탈이 너무 약하면 두 가지 이슈가 있다. 첫째, 삶이 힘들 수 있다. 그러므로, 적절한 훈련을 통해 멘탈을 어느 정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7) 또 다른 위험은 바로 비정상적으로 멘탈이 강한 이들에게 이용당하고 착취당하는 것이다. 주위에 소시오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들을 대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8) 소시오와는 만나지 않는 게 최상이다. 어쩔 수 없이 만났다면 조짐이 보일 때 최대한 빨리 헤어지고 주위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싸워야 한다면 목숨 걸고 싸워야 한다. 이들은 흔들리지 않고 잘 교화되지 않기에 어중간한 자비심을 보였다가는 언제든 복수당한다. 이들은 따뜻함을 보이면 감동하는 게 아니라 약점으로 보고 파고들어 오기 때문이다.
1) 누구에게나 약점이나 트라우마가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약점이나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2) 자신의 약점이나 트라우마를 알지 못하면 어떤 현상이 생길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피하게 된다. 그러므로 문제를 전혀 해결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무의식은 다루기 어렵기 때문이다.
3) 약점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약한 점은 무의식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애쓴다.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는 환경을 도망간다. 약점에 당당하지 못하고 움츠린다. 그러면 평생 해결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를 알아야 한다. 자신의 강점뿐 아니라 트라우마와 약점도 알아야 한다.
4)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무의식에서 의식의 영역으로 가져온다는 것이다. 의식의 영역으로 가져오면 다를 수 있다. 시간이 걸릴 수는 있지만 해결 가능하다. 약점을 안다면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당하게 드러내고 도움을 구하는 것이다.
2) 우리가 보기에 끝없이 성장하는 듯한 기업도 잘 들여다보면 큰 굴곡이 있다. 멀리서 보니 멈춤이나 후퇴가 없어 보일 뿐이다. 가까이 보면 크고 작은 후퇴들이 있다. 그런데 이런 후퇴들 뒤에 새로운 전환과 성장을 보였다.
8) 반짝 빛나다가 사라지는 유성이 되지 않으려면 후퇴가 올 때 오히려 감사하라. 물론, 후퇴를 잘못 다루면 완전히 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후퇴는 그동안 쌓인 거품을 걷어내고 초심으로 돌아가며 새로운 전진을 할 수 있는 응축의 기회가 될 수 있다.
9) 오히려 실패 없이 끝없이 성공하기만 한다면 두려워하라. 운을 자기 실력인 줄 착각하고 교만해진다. 거품이 끼여있음을 기억하라. 이러다가 큰 위기를 만나면 한 번에 빵 터지거나 고속 하강하게 될 위험이 크다. 그러므로 이럴 때일수록 시스템을 만들고 겸손하라.
10) 멀리 가려면 후퇴를 환영하라. 위기가 기회라는 말은 위로의 말이 아니다.
2) 그저 직장생활 열심히 해서 경제적 자유를 얻는 것은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자본 소득을 누리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점점 힘들게 살게 될 가능성이 높다.
4) 동경대 이또 모토시게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회사에서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Work이다. 개개인은 Worker라고 부르고 Worker는 톱니바퀴의 일부를 담당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그 일을 담당해도 회사는 아무 지장이 없다. Worker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속한 톱니바퀴가 얼마나 크고 단단한가이다. 자신의 경쟁력보다는 자신이 소속된 회사를 자랑한다. 그러나 Worker가 잘 사는 시대는 저물어 간다. 이제 Player가 필수적인 시대가 오고 있다. Player는 자신의 전문성, 컴퓨터나 타인이 대체할 수 없는 독특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톱니바퀴에서 빠져나와도 생존할 수 있는 사람이다"
5) 깨인 사람들은 Worker로 일하지 않고 Player로 일한다. Worker는 수동적인 컴포넌트로 일하지만 Player는 게임을 하듯, 경기를 하듯 자신이 주도권을 가지고 일한다.
7) Play를 잘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독립심, 유연성, 호기심'이 강하다. 주도성과 독립심이 강하면서도 유연하고 끊임없이 배우고 탐구한다. 타인이 대체하기 어려운 자신만의 차별화된 것을 쌓는다. Work 하기보다는 게임하듯 경기하듯 한다. 물론, 게임이나 경기에서 다치고 패배하기도 하지만 오뚝이같이 일어선다.
3) 범선은 바람에 의해 가는 배이다. 잘 나갈 때는 매우 잘 나간다. 그러나 외부 환경에 의존적이다. 범선의 선장은 외부 환경에 예민하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역풍이 불면 힘을 쓰지 못한다.
4) 반면 크루즈는 스스로 원동기를 부착한 배이다. 바람에 의해 방향과 속도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선장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의해 결정된다.
5) 범선에 있는 사람들은 대개 outside-in의 사고를 한다. 스스로 생각하기보다는 외부에서 답을 찾는다. 반면 크루즈의 사람들은 inside-out 사고를 한다. 자신으로부터 답을 찾는다. 스스로 생각을 많이 한다. 외부 정보는 불완전하지만 자신의 생각, 스토리가 있다. 문제에 대한 답보다 해결할 문제 자체를 발견한다.
6) outside-in의 사고를 하는 사람은 “이런 예측이 있고", “그것은 어떻게 될까?”의 사고에 익숙하다고 한다. 반면, inside-out 사고를 하는 사람은 “제 생각은", “그것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해"의 사고에 익숙하다고 한다. 미래를 예측하기보다는 내가 미래를 위해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한다고 한다.
2) 성경이 인류에게 가져다준 큰 통찰 중의 하나는 ‘갈망'도 ‘노력'도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한다는 것이다.
3) 성경의 통찰은 ‘노력'이 먼저가 아니라 ‘믿음'이 먼저라는 것이다. 믿고 믿음대로 담대하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4) 인정받기 위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라, 먼저 자신이 인정받는 존재임을, 좋은 사람임을, 성공의 존재임을 믿으라는 것이다.
5)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와 ‘인정받는 존재'는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인정을 받기 위해 끝없이 갈구하지만 결국 채우지 못한다. 후자는 이미 인정받은 존재이기에 인정에 애쓰고 연연해 할 필요가 없다.
6) 당신이 인정에 일희일비하고, 사랑에 일희일비하며, 돈과 성공에 노심초사한다면 당신은 ‘노력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4) 왜 불안, 무기력, 우울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그렇게 안될까? 잘 고찰해보면 그렇게 하는 데에 ‘자신의 이득'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7) 이득이 무엇인지? 그 이득을 버릴 수 있는지 생각해보라. 그 이득을 버릴 때 비로소 변화가 가능하다. 그것을 버리길 선택하지 않는다면 변화할 수 없다. 변화가 되지 않는 것은 노력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이득을 포기하기로 선택하지 않아서이다.
2) 흥미롭게도 우리가 관심이 있는 것은 엄청나게 잘 보인다. 그러나 관심이 없는 것은 내 눈앞에 존재해도 잘 보이지 않는다. 존재한다고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것이 아니다. 각 개인에게 있어서 이 세계는 자신의 ‘인식의 범위'만큼 존재한다.
3) 이로 인해 부작용이 생긴다. 즉, 자신의 눈에는 자신이 믿는 것, 자신이 관심 있는 것만 보인다는 것이다.
4) 자신이 불평, 불만의 시각을 고수하면, 자신에게는 이상하게도 불평, 불만, 부조리만 보인다. 자신의 뇌가 그렇게 만든다. 실제 세상이 그러하지 않아도 그 사람에게 세상은 그렇게 인식되고 존재한다.
5) 이러한 메커니즘에 끌려다닐 것인가? 그럴 수도 있지만 역으로 인간은 이를 현명하게 이용할 수도 있다. “무엇(WHAT)을 원할지 결정하고 기록하고 이를 상상하라. HOW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마라. 그러면 당신의 뇌는 자동적으로 HOW를 실행해 줄 것이다"
6) 즉,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뇌에 심어놓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의 뇌는 세상을 그 목표에 맞춰 자신에게 인식시켜준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명하게 정의하면, 우리 뇌는 그것에 맞춰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을 자신에게 인식되게 하기 때문이다.
9) 여러분은 어떤 목표와 어떤 태도, 어떤 관점을 선택하고자 하는가? 그것에 따라 세상은 자신에게 인식된다는 것을 기억하시라. 자기에게 인식되는 세상은 자신의 선택의 결과물이다.
1) 우리가 삶을 추구하는 방식은 대개 Do-Have-Be- 또는 Have-Do-Be이다.
3) 그러나 깨달은 자들이 우리에게 주는 대부분의 통찰은 이 순서가 바뀌었다고 말한다. 즉, Be-Do-Have라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존재이므로(Be), 어떤 것을 행할 수 있고(Do), 그 결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소유(Have)한다는 것이다.
7) 그러므로 먼저 자신의 ‘존재'를 선포하고 믿음을 가지는 것이 우선이다.
6) 부자가 안돼서 인생이 힘든 게 아니라. 비교 자체가 인생을 힘들게 하는 것이다.
7) 현재 있는 정도에서 매일 즐겁게 지내면 된다. 물론, 돈은 벌수록 좋다. 가능한 많이 벌고 투자도 잘하는 게 좋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부자가 된 후 행복을 누리겠다는 게 아니라 바로 지금 소소하더라도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8) 때로, 슬픔과 아픔과 두려움도 살아있는 삶의 일부이다. 삶은 그 자체가 선물이다.
4) 죽음을 준비할 때만 우리는 어떻게 살지 배울 수 있다. 삶은 ‘Gain’이 아니라 ‘Gift’이다.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도록 해준다. 무언가 ‘얻으려', ‘이루려' 사는 게 아니라, 성취하려 분투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를 선물로 받아들여라. 기쁨이란 추구하고 움켜지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