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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H Oct 18. 2023

나는 갈등에 취약한 사람이다

내가 나에 대해 배운 것들 (2) 단점

지난 글에서 내가 나의 장점을 썼다면 이번 글에는 단점에 대해 써보려 한다. 세상에 단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면서, 최소한 일을 하기 위해서 단점이 단점이 되지 않을 만큼은 단점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축구선수들마다 장단점이 다르지만, 단점도 프로에서 활동하지 못할 만큼 치명적인 단점은 아니니까. 장점이 과해지거나, 장점의 그림자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는 생각에서 아래 단점들을 썼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강박이 심하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모든 일을 실수 없이 처리하고 싶다는 강박,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 등등. 그러다 보니 자연히 내가 놓친 것은 없을까,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어느 정도는 놓친 게 없을지 돌아보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혼자 끌어안은 채로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여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최선을 다하고 난 뒤, 놓친 게 있으면 그때 최선의 대처를 하면 된다. 머리로는 알지만 생각보다, 실천은 잘 되지 않는다.


강박을 갖게 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실수, 실패 등으로 비난과 비판받기 싫다는 감정이 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일에 대한 비난과 비판이 나에 대한 비난과 비판이 아닌 것은 머리로는 안다. 하지만 내가 상대방에게 어떤 말이나 어떤 행동을 한 뒤, 상대방이 뭐라고 할지 어떤 반응을 보일지에 대해서 생각하면 항상 부정적인 비난 혹은 비판이 올 것을 두려워한다.


왜 이런 것들을 두려워하는지 생각해 본다면, 비판 혹은 비난을 준 사람들을 잘 대할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내 성향을 생각해 본다면,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든 상대를 이겨먹거나 갈등의 끝까지 가기보다는 보통 회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갈등을 겪고 난 후 상대방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흔히 돌아다니는 짤 같은 걸로, 뒤에서 욕 안 먹는 사람이 어디 있냐는 짤 보면서 '맞아 욕 좀 먹을 수도 있지, 어떻게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지만, 매일매일 마주쳐야만 하는 구성원들을 이런 마음으로 대하는 게 아직까지는 어렵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 강하다. 따라서 도움을 청하거나 질문을 할 때도, 스스로 멍청하게 보이고 싶지 않고, 또 좋은 질문을 하고 싶다는 강박으로 인해서 질문 하나 하는데도 시간을 엄청 쓰는 경우가 많다. 슬랙 한 문장으로 물어보고, 끝내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 등을 고민하면서 시간을 더 오래 쓰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일들도 늦어지고, 자연히 업무 시간도 길어지며 지치는 경우가 꽤 많다.



갈등을 마주했을 때의 대처


위 내용과 연관 지어서, 건강한 갈등을 잘 만들지 못하는 것이 단점이다. 이와 관련해서 '갈등 상황에서, 갈등을 만들기 싫어서 스스로가 손해 보는 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피드백을 들은 적도 있다. 사실 건강한 갈등은 꼭 필요하고, 서로 다른 관점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일을 하기 때문에 갈등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위에 말한 것처럼 비난, 비판받을 것으로 인한 두려움, 그리고 나를 비난하고 비판한 사람들을 앞으로 내가 잘 대하지 못할 것 같다는 걱정으로 인해 갈등 상황을 잘 만들지 못한다.


위에서 건강한 갈등이라고 했는데, 갈등은 크게 건강한 갈등과 건강하지 않은 갈등으로 나눌 수 있다. 건강하지 않은 갈등은 이성과 근거가 아닌 감정과 순간적인 기분에 기반한 갈등이다. 화가 나면 그대로 막 감정적인 말들을 쏟아내는 것이 건강하지 않은 갈등의 대표적인 양상이다. 이런 건강하지 않은 갈등은 없으면 없을수록 좋다. 그래서 보통 이런 건강하지 않은 갈등을 마주했을 때는 상대방의 감정에 빨려 들어가는 대신,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금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집중해서 대화를 이끌려고 한다. 물론 쉽지는 않고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다. 아무래도 상대방이 감정적인 반응을 보일 때 이에 말리지 않고 나의 페이스를 찾아오는 것은 상당한 내공을 필요로 하는 일인 것 같다.


그리고 조직 내에서 보통 건강하지 않은 갈등은 과거 지향적인 이야기가 많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군가가 이걸 했어야 했는데, 못해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 그러니 지금 발생한 문제는 누구의 책임이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서 건강하지 않은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특정 구성원, 특정 팀에 대한 비난 역시도 건강하지 않은 갈등의 씨앗이 된다. 모든 구성원은 사람인 이상 놓치는 것이 분명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특정 한 부분을 가지고 특정 부분에 대해서만 비판을 하기보다는 '특정 팀은 일을 못한다, 일을 아무것도 안 한다.' 이런 감정적인 비난을 하는 경우 건강하지 않은 갈등의 시작이 된다.


이런 건강하지 않은 갈등에 직면했을 때, 감정 대신 사실에만 집중해야 하는데 이걸 잘 못한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영향을 많이 받는 성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건강하지 않은 갈등에 직면한다면 하루 혹은 더 길게 이에 영향을 받고 힘들어한다.


건강한 갈등의 경우, 핵심은 갈등이 아니라 '건강한'이다. 건강한 갈등이 이루어지려면, 갈등의 당사자들 모두가 모두가 건강한 갈등을 만들 수 있거나, 아니면 갈등의 당사자 중 한 명이 높은 지위에서 압도적으로 건강한 갈등을 만들 수 있는 경우에 건강한 갈등이 이뤄질 수 있다. 즉, 건강한 갈등을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갈등을 겪고 이를 또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스스로 생각을 해봤을 때 건강한 갈등을 잘 겪지 못하고 피하는 것에는 보통 두 가지 정도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째는 상대방과 건강한 갈등 자체를 만들 자신이 없는 경우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상대방이 건강한 갈등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가 않아 갈등을 피하는 경우다. 갈등이 발생할 경우, 상대방이 감정적인 소통 등을 하는 것이 예상되어서 건강하지 않은 갈등이 예상되는 경우다. 건강한 갈등을 추구했으나, 건강하지 않은 갈등이 되어도 끝까지 명확한 것을 추구해야 하는데, 갈등을 대처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일단 알겠습니다' 등으로 끝내는 경우가 많았다. 명확하지 않은 것은 업무에도 관계에도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데, 갈등 그 자체와 갈등 이후의 후유증으로 인해서 명확하지 않은 채로 끝내서, 갈등은 갈등대로 생기고, 스스로도 찜찜한 경우가 꽤 많다. 사실 따져보면 건강하지 않은 갈등을 예상한다고 하더라도, 항상 건강하지 않은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몇 번의 건강하지 않은 갈등을 겪은 기억 때문에,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상대방의 감정적인 대처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기억 때문에 갈등이 예상될 때 더 움츠러들게 된다.


두 번째는 상대방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어서, 갈등을 겪을 경우 좋은 관계가 깨질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건강한 갈등을 만들지 못하는 경우다. 업무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꽤 괜찮은 상대라고 생각해서, 갈등이 생기면 좋은 관계가 틀어질까 봐 갈등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상대방이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했다면 그 이후에 해소를 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 스스로가 갈등을 겪고 난 후에 상대방을 안 좋게 대할 것 같은, 혹은 상대방이 나를 안 좋게 대할 것 같은 미지의 두려움 때문에 갈등을 회피하게 된다.


결국 어떤 쪽으로든 매일매일 상대방을 마주치는 내 회사 생활이 더 힘들어질 것 같다는 걱정 때문에 갈등을 피하게 된다. 이 역시도 다른 사람의 감정에 영향을 많이 받고, 다른 사람들의 감정이나 기분을 많이 신경 쓰는 내 성향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것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신뢰가 없는 사람과의 갈등, 신뢰가 있는 사람과의 갈등 모두 결국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고, 당장 매일매일의 내가 더 힘들어지지 않고 싶어서 피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서 어떤 구체적인 노력을 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아직 뚜렷한 답은 없다. 이제 막 내가 나의 단점을 어렴풋이나마 보게 된 상황이라, 이제부터 어떤 해결책을 찾고 연습할 것인지 앞으로 꾸준히 찾아 나가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책을 샀는데, 이 책을 읽고 책에 나오는 방법들을 연습해 실생활에 적용해 보려는 시도를 하려고 한다. 아직 목차만 읽었는데, '논쟁에서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논쟁을 피하는 것'이라는 부분이 있다. 논쟁에서 지면 지는 대로, 이기면 이기는 대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요지로 알고 있다.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평소에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참이라 논쟁을 피하면서 명확함을 추구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


개인적으로 갈등을 피하게 되는 것에는 조직의 수준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조직을 이루는 구성원들이 성숙할 때, 건강한 갈등을 만들 수 있고, 개인적으로도 갈등에 대해서 좀 더 잘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조직이 건강하지 못하다면 개인이 아무리 건강해도 건강한 갈등을 만들 수 없다. 갈등은 혼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만드는 것이니까.


현실적으로 모든 구성원이 성숙하게 건강한 갈등을 만들고 대처할 수 있는 조직은 없다. 즉, 어느 조직을 가도 빌런은 있고, 언제든지 건강하지 않은 갈등을 만날 수 있고, 신뢰가 없는 상대방과 갈등을 겪어야 할 경우도 있고, 신뢰가 있지만 관계가 깨질까 봐 갈등을 피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갈등에 대처하는 연습이 꼭 필요하다. 지금의 갈등을 피하려고 다른 환경을 찾아 떠난다면 그 환경에서 똑같은, 혹은 더 힘든 갈등을 마주할 수도 있다. 그때는 아마 몇 배로 더 힘들 것이다.


환경은 내가 만들지 못하지만, 갈등에 대한 대처는 스스로 연습할 수 있고 체화할 수 있다. 사실 이 과정은 엄청 오래 걸리고, 또 힘들 것이다. 일 힘든 건 버텨도 사람 힘든 건 못 버틴다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사람 관계, 특히 갈등에 대처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제 내가 갈등에 취약하고, 갈등을 회피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이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지에 대한 숙제가 남았다. 이 숙제가 언제 풀릴지는 모른다. 영원히 풀지 못할 수도 있겠지, 다만 이를 알고 노력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천지차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부터라도 좀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뻔한 결론이 나온다. 얼른 더 구체적인 방법을 알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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