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SH Jan 17. 2024

왜 그렇게까지 일해요?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1.

오랜 기간 밤늦게까지 일하거나, 주말에 급한 일을 대응하고 나면 종종 듣는 말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일하냐"라는 말이다. 그 말을 들으면 그냥 "월세 내려면 어쩔 수 없죠"하고 흘려 넘긴다.  저 질문을 듣고 있으면,  '그렇게 일한다고 보상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갈아가면서 일하냐'는 뜻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진짜로 궁금해서 물어볼 수도 있고, 또 나를 걱정해 주는 것이지만 표현이 저럴 뿐일 수도 있고, 내가 꼬아서 듣는 걸 수도 있다.



2.

사실 오랜 기간 밤늦게까지 일하거나, 주말이나 휴일에 급한 일을 대응하고 난 뒤에 그냥 고생했다고 말해주는 게 제일 좋긴 하다. 아무튼, "왜 그렇게 까지 일해요?"라는 질문에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두어 가지 정도 있다. 첫 번째로는 '나 때문에 프로젝트에, 프로덕트에, 조직에 피해를 끼치기 싫다'라는 생각에서 그렇게까지 일한다.



3.

사실 좀 더 정확히 따지면, '내가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아서, 프로젝트, 프로덕트, 조직에 피해를 끼치게 되는 경우, 그 상황에서 비난을 받을 게 두려워서' 하는 것이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분명 긍정적인 동기는 아닌데, 그렇다고 또 마냥 나쁜 동기는 아닌 것 같다. 적절한 스트레스는 긴장감을 주니까. 결국 스스로 이 불안감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느냐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4.

그리고 두 번째는 스스로에게 떳떳해지고 싶어서이다.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할 때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도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할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래서 이렇게 최선을 다했을 때 스스로에게 떳떳해질 수 있는 것 같다. 스스로에게 떳떳해지는 느낌, 내가 나를 속이지 않는 느낌을 받고 싶어서 그렇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다.



5.

물론 그렇다고 항상 이렇게 일하는 게 좋고 기쁜 것만은 아니다. 어떨 때, 아니 꽤 자주 너무 힘들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물리적으로 일이 너무 많아 늦게까지 일해서 몸이 힘든 것도 물론 너무 힘들다.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든 건 역시 심적으로 힘든 것이 제일 힘들다. 내가 말하거나 움직이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가만히 있을 때, 내가 물어보지 않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그런 때도 힘들다.



6.

'나는 이렇게 프로젝트와 프로덕트에 대해서 밤늦게까지 일하면서 고민하고 걱정하고 불안해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나와 같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에서 출발해, 나 혼자 이렇게 고민하고 불안하고 걱정하는 거 같아서 외롭다는 느낌이 들 때가 가장 힘든 순간이다. 그러면서 '회사가 뭐라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도 포기하고, 밤늦게까지 고민하고 걱정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럴 때는 물론 다 때려치고 싶지.



7.

사실 이런 마음이 들면,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집중도 잘 안된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하려고 한다. 왜냐면 어쨌든 내가 힘든 건 힘든 것이고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니까. 해야 할 일을 안 하면 안 되니까. 어쨌든 돈 받고 다니는 회사니까, 어떻게든 해보려고 한다.



8.

위에 했던 얘기와는 조금 결이 다르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해야 할 일을 하려고 하는 태도'가 바로 성숙함이라고 생각한다. 주변 상황과 내 기분에 따라서 해야 할 일을 미루거나 던지는 것은 성숙함이 낮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회사 상황이 어수선할 때, 누군가는 그 상황에서도 스스로 해야 할 일을 하려고 노력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상황이 어수선하니 이런저런 불확실한 루머를 좇고 일을 느슨하게 하거나 하루 종일 회사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9.

주변 상황이 어떻든 내 상태가 어떻든,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성숙함이 높은 사람이고, 주변 상황에 휩쓸려 내가 해야 할 일을 잊거나, 느슨하게 하는 사람은 성숙함이 낮은 사람이다. 모든 사람은 주변 상황이 어수선하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다만 성숙함이 높은 사람은 그 흔들림을 최소화하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인 것이고, 성숙함이 낮은 사람은 상황에 그저 휩쓸릴 뿐이다.



10.

뒤돌아보면, 혼란하고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조직의 Pivot으로 인해 운영 중인 프로덕트를 관두고 새로운 사업을 하는 게 거의 확실해졌고, 그 상황에서도 기존 프로덕트 관련한 일을 계속해 나가야 했다. 그때 당시는 참 힘들었다. 왜냐면 지금 내가 담당하고 있는 프로덕트를 접어야 할 게 거의 확실시 됐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피셜 하게 마무리되기까지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 했다.



11.

그리고 지나서 그때를 생각해 보니, 스스로에게 또 그때 당시의 리더에게 떳떳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상황과 분위기에 흔들리지 않고, 최선을 다 했기 때문에. 그래서 그 시기의 그 경험을 어디 가서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그리고 이 경험은 정말 중요한 경험이었고, 이를 통해서 어떤 상황에서든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당시는 힘들었지만 꽤 값진 경험이었다.



12.

주변 상황이 어수선하고, 멘탈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어쨌든 내가 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고, 이를 해야 할 때,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어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물론 쉽지는 않지만, 도를 닦는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는다. 물론 최선을 다하는 것과 매일 늦게까지 일하는 것은 다르다. 최선을 다할 것이지만 항상 늦게까지 일하려는 건 아니다. 회사 밖에도 나의 삶이 있으니.



13.

"온 힘을 다해 살고 눈을 감을 때마다 미소 하나 건지는 것 이게 real 인생샷 찍는 법" 에픽하이 Leica라는 노래의 가사다. 이 노래처럼 잠깐의 순간에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살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떳떳해지는 삶을 살 수 있으면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