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성장의 핵심은 결국 프로덕트다.
모든 부서와 직무는 각자의 스트레스가 있다. 마케터도, 세일즈도, 디자이너도, 개발자도 모두 각자의 스트레스가 있다. 마케터로 일하며 겪는 스트레스 중 하나를 써볼까 한다. 절대 직군별, 부서별 스트레스를 비교하기 위함이 아니다.
마케터가 겪는 스트레스는 크게 아이디에이션, 카피라이팅, 디자인과 같은 창작 스트레스와, ROAS로 대표되는 효율 스트레스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이번에는 ROAS로 대표되는 효율 측면에서의 스트레스를 한 번 써볼까 한다. 나중에 창작 관련 스트레스도 한 번 써야겠다.
마케터는 직접적으로 회사의 돈을 쓴다는 것이 보이는 직군이라 더 효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마케팅 효율과 관련한 스트레스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보통 마케팅 성과를 측정하는 방법과 지표는 정말 다양하지만 가장 기본적으로 궁극적인 목표와 관련한 지표로 성과를 측정한다. 예를 들어, 매출이 최종 목표라면 ROAS를 궁극적인 지표로 잡는 경우가 많고, 앱 설치가 최종 목표라면 CPI (Cost Per Instill)를 측정하는 식이다. 이 외에도 각자 비즈니스와 상황에 맞는 지표를 세운다.
뭐 여기까지는 너무 당연한 얘기고, 대표 혹은 윗 직급의 누군가가 "페이스북 광고 ROAS가 왜 저조하지?"라는 물음을 가질 때를 예로 들어본다. 이때 ROAS가 저조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광고가 별로거나, 제품이 별로거나. 아니면 둘 다 별로일 수도 있고. 이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간단하다.
'광고 클릭률'과 '광고를 통해 들어온 고객들의 구매 전환율'을 비교해보면 된다. 전자가 저조하면? 광고가 별로인 것이니까. 광고 크리에이티브를 바꾸거나 타겟을 바꾸거나 다른 마케팅 방안을 생각해보면 된다. 후자가 낮으면? 상세 페이지를 바꾸거나 제품에 문제가 있는지 체크해야 한다.
스트레스는 여기서부터 생긴다. '광고를 통해 들어온 고객들의 구매 전환율'이 저조한 것으로 밝혀진 이후에도, 대표가 "엄청나게 매력적인 카피와 이미지의 광고를 만들고, 광고비를 더 많이 쓰면 고객들이 더 많이 들어오고, 매출도 늘고 ROAS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부터 스트레스가 생기는 것이다.
한 마디로 진짜 헛소리다. 프로덕트의 퀄리티가 저조한 ROAS의 근본 원인인데, 광고와 마케팅으로 해결하겠다는 건 음식 맛에 문제가 있는데, 접시와 플레이팅을 바꾼다는 거랑 똑같은 말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는 말이 있듯이 접시와 플레이팅 물론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꾸며도, 모형 떡을 먹을 수는 없다. 결국 문제의 근본, 즉 프로덕트의 퀄리티를 끌어올려야만 한다. 있지도 않은 마케팅 묘수를 찾는 게 아니라.
또 '엄청나게 매력적인 카피와 이미지의 광고'를 만드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미디어를 접하다 보면 정말 엄청나게 기억에 남고 매력적인 광고들이 많이 있다. 지그재그 윤여정 광고라던지, 초특가 야놀자라던지. 그렇지만 이런 광고들은 하루 종일 광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몇 날 며칠을 한 광고에 매달려서 만들어낸 것이다. '더 좋은 광고 만들 수 없나?' 이 한마디가 나와서 며칠 만에, 일주일 만에 엄청난 광고를 뚝딱 만드는 건 정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 매력적인 카피와 이미지를 가진 엄청난 광고를 만들어 냈다고 치자. 그럼 저절로 ROAS가 막 높아질까? 잠깐은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오래가지는 못한다. 한 때 페이스북에서 많이 보였던 마약 배게, 돼지 코팩 같은 제품을 생각하면 된다.
단기적으로 광고는 잘 됐을지 몰라도, '지금도 여전히 이러한 제품들이 인기인가?'라는 질문에는 의문점이 붙는다. 만약 제품이 정말 좋았으면 지금까지도, 계속 인기가 많아서 스테디셀러에 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광고를 성공시키고 퀄리티가 그만큼 받쳐주지 못했으니까, 한 때 반짝하는 제품에 그친 것이다.
또한 고객들은 점점 더 똑똑해지고 있다. 소비자의 인식부터 구매 결정까지의 과정에서 이제 '비교'는 필수다. 클릭 한 번으로 최저가, 별점순, 추천순 등 각종 방식으로 비교가 가능해진 현실에서, 고객들은 카피 하나, 이미지 하나에 그렇게 쉽게 구매를 결정하지 않는다.
이런 유형의 스트레스도 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이번 달 목표는 'ROAS 300%인데, 지금 ROAS 가 290%이니, 10% 올리기 위해 페이스북 광고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혹은 'CPA가 1,000원 이하여야 하는데 지금 1,200원이 나오는 상황이네. 이걸 해결하기 위해 고객들에게 더 소구 될만한 페이스북 광고 카피나 이미지를 만들자'는 생각에서부터 시작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정말 고객들이 접하는 광고가 별로라서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현 상황에서 저 ROAS 290%, CPA 1,200원이 최선의 결과일 수도 있다. 현재 상태가 최선의 결과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마지노선을 정해놓고 테스트를 해야 한다.
즉, 언제까지 총 몇 개의 광고를 얼마의 금액으로 집행해 보고, 그때까지 안 나오면 이게 현 상황에서는 이것이 최선의 성과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고 목표치가 나올 때까지 무조건 계속하자는 식으로 하면 목표를 달성할지도 불확실한데 기약 없이 노력, 시간, 비용을 투입하게 된다. 사실상 노력, 시간, 비용을 낭비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노선을 정해놓고 그때까지 안되면 새로운 마케팅 채널을 발굴하든, 프로모션을 하든, 프로덕트를 개선하든,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을 방법을 찾고 실행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방법이다.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니다. 좀 더 큰 관점에서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돈과 시간이 충분히 있고, 항상 광고 제작 및 테스트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구성원이 있다면 뭐 그래도 되긴 하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돈, 시간, 인력 모두가 부족하기 때문에 작은 목표에 매몰되기보다는 최고의 업무 성과와 효율을 낼 수 있는 업무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작은 스타트업일수록, 대표나 창업자들이 직접 광고를 집행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래서 나중에 마케터가 들어왔을 때, 마케터의 성과를 자신의 성과와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 적당한 비교는 꼭 필요하다. 왜냐면 마케팅을 전적으로 담당하지 않는 대표보다 마케터가 더 못하면 큰일이니까.
그런데 과거의 성과를 참고하는 것이 아니라, 현 상황에 대해 과거의 성과를 근거로 계속 문제를 삼는 것은 문제다. 우선 그때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달라 직접적인 비교는 힘들다. 그때와 지금의 페이스북 알고리즘도 달라졌고, 시장 환경도, 조직이 마케팅해야 하는 것도, 모든 것이 달라졌다.
특히 웹 기반 서비스에서 앱 기반 서비스로 넘어가는 경우에는 광고 성과 차이가 더욱 크게 날 수밖에 없다. 왜냐면 전혀 다른 프로덕트라서 전혀 다른 목표 설정이 필요하고, 그래서 광고 알고리즘도 바뀔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웹사이트 때는 CPA가 500원 나왔는데, 앱으로 넘어간 뒤 1,000원이 나온다. 무려 고객 획득 비용이 2배나 상승했다. 이 문제 어떻게 해결하냐" 혹은 "그때는 CPC가 100원이었는데, 지금은 왜 CPA가 1,000원이에요. 왜 그때보다 성과가 안 나와요?" 이런 말은 제대로 된 질문 혹은 의문 제기가 아니다.
웹에서의 회원가입과, 앱 설치 후의 회원가입은 똑같은 회원가입이 아니다. 이렇게 동일하지 않은 비교군에 대해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또한 CPC(Cost Per Click)와 같은 허상 지표에 집착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CPC는 광고 이미지, 카피 등의 효율에 관해 참고할 만한 지표이지만 조직의 궁극적인 지표는 될 수 없다. 조직의 궁극적인 목표는 CPA, CPC(Cost Per Conversion, 전환 당 비용)을 비교해야 한다.
대표 입장에서는 마케터의 성과를 자신이 만들어낸 최고의 성과와 비교하게 된다. 사람이라 당연한 일이다. 어떤 사람이 나쁜 성과를 보여주고 싶을까. 최고의 성과만 보여주고 싶지. 그렇지만 조금 더 객관적으로 최고의 성과가 아닌 경향성, 평균, 최고 및 최악의 성과 지표를 보며 다각도로 비교해야 한다.
이 외에도 한정된 예산으로 성과를 만들어야 하는 스트레스, J커브 같은 극적인 성장을 만들어 내라며 받는 스트레스 등 정말 많은 스트레스가 있다. 마케터 입장에서, 아니 사실 모든 직군 입장에서 스트레스 안 받는 방법은 없다. 또 이 스트레스를 현명하게 관리하고, 스트레스 요인을 넘어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게 일 잘하는 사람의 여러 요건 중 하나다.
아무튼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아무리 마케팅을 조져봤자 극적인 성장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광고 이미지가 예쁘고, 엄청난 카피를 썼어도, 마케팅의 근간인 프로덕트가 좋지 않으면 극적인 성장은 힘들다.
애플의 예시를 생각하면 쉽다. 애플은 마케팅을 정말 정말 잘한다. 그러나 아이폰, 아이패드와 같은 프로덕트가 좋지 않았다면 애플이라는 기업과 브랜드가 이렇게까지 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케팅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 결국 극적인 성장의 핵심은 프로덕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