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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가는대로 Feb 25. 2024

첫 출장 요리 II (첫날 ; 대방어와 참돔의 어울림)

바다의 여왕 참돔의 수수함과 기름진 겨울철 별미 대방어의 환상적인 조화

D일, 설레는 마음 때문일까? 잠에서 일찍 깼다. 두 시간 이상 더 자도 되는데 자정이 조금 넘어 눈을 뜬 것이다. 잠이 오지 않아 컴퓨터를 켜고 그동안 기록한 요리 메모지에서 빠진 것은 없는지, 그리고 추가로 준비할 것은 없는지 점검했다. 준비를 마친 것 같은데 문제는 잠시 후에 들를 노량진수산시장 상황이다. 이틀 동안 기상이 좋지 않아 조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렇다면 메뉴 중에서 일부는 빼야 할 수도 있겠다. 일단 가 보자.


03:00, 노량진수산시장으로 출발했다. 밤새 눈이 내렸다기에 안전한 고속도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다행스럽게 고속도로 위에는 눈이나 얼음이 없다. 전광판에 도로 위 결빙 때문에 속도를 줄이라는 경고 문구가 떠 끝까지 긴장을 풀지 않았다. 차량 숫자가 줄어 교통 상황은 더 좋다. 04:00에 도착하니 평일이라서 도로에 주차해도 될 정도로 한가하다. 올 때마다 도로에 빈자리가 있는지 눈을 부라렸으나 이곳에 주차할 행운은 거의 잡지 못했다. 도매시장에 들어서니 전복 경매가 막 시작되었고, 활어는 한창 진행 중이다. 들어가다가 ○○꼬막에 들러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몇 가지 물었다. 국산 백합은 나오지 않아 구할 수가 없단다. 중국산이라도 사야 하나? 피조개나 가리비, 굴 가격은 만족할만한 수준이다.


활어는 피를 빼는 것이 중요해서 가장 먼저 구매해야 한다. 여기저기 돌아보다가 ○○수산에서 사기로 했다. 일본산 양식 방어는 1kg에 20,000원, 나쁘지 않은 가격이다. 가장 큰 놈으로 달라고 했더니 6.5kg짜리를 보여주는데 몸에 상처가 있어 바꿔 달라고 했다. 다른 방어를 고르는 사이에 다른 점원이 옆 수조에서 제대로 된 방어를 가져온다. 7.1kg, 142,000원에 샀다. 이어서 감성돔을 달라고 하니 없단다. 오늘은 노량진수산시장 내에 없다는 것이다. 어제와 이틀 전 바람이 많이 불어 조업이 제대로 되지 않아 그렇단다.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하는 수 없이 일본산 참돔, 3.2kg짜리 한 마리를 kg당 22,000원, 72,000원을 주고 샀다. 두 마리를 함께 계산해서 210,000원을 계좌이체로 보냈다. 212,000원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더니 오늘만 이대로 받겠단다. 덕분에 2,000원을 아꼈다. ㅋㅋ


이어서 다른 생선을 사기 위해 이리저리 눈을 굴려 가면서 시장을 돌아봤다. 아내에게는 한가로운 구경이지만 나에게는 목표를 찾기 위한 광범위한 수색, 그리고 찾으면 상태를 면밀하게 점검, 이어지는 주인과의 기 싸움을 겸한 가격 흥정을 감수해야 하는 삶의 현장이다. 주도면밀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늘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전쟁터가 이곳이다. 특히 새벽 도매시장은 혼이 쏙 빠질 정도로 정신이 없다. 나는 가만히 있고 싶으나 아주 빠르게 흐르는 거대한 강물처럼 누구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정신을 바짝 차리자.


가져간 Post-it을 보면서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① 초절임을 만들기 위한 고등어와 청어는 눈에 띄지 않는다. 어느 사장님이 어제와 그제, 이틀간의 기상 난조 때문에 조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오늘 시장에 시메, 초절임이 가능한 고등어는 한 마리도 없고, 청어는 한 상자에 40,000원이 넘을 것이란다. 호오! 우째 이런 일이. 청어는 아무리 상품이라도 평상시에는 25,000원에 샀는데. 결국은 모두 포기할 수밖에 없다. ② 매운탕에 넣을 우럭, 조피볼락 1kg만 달라고 했더니 1kg은 팔지 않는단다. 긴 시간 대화에도 불구하고 한 건의 거래도 없어 사장님과 궁합이 맞지 않은 모양이라고 했더니 못이기는 척 1kg을 팔겠단다. 네 마리를 11,000원에 샀다. 사실 1kg이 조금 넘는데 1kg 가격으로 주겠단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더 넣어서 팔면 나중에는 덤 때문에 손해 볼 수밖에 없어서 1kg 단위로는 팔지 않는다는 사장님의 말이 이해가 간다. 손님은 10g이라도 부족하면 더 채우라고 강요할 것이 뻔하다. 횟집에서 먹는 매운탕은 대부분 회를 뜨고 난 뼈와 대가리만을 넣고 끓인 서더리탕이었으나, 오늘은 제대로 된 생선을 넣어 정통 매운탕을 먹게 해주고 싶다. ③ 바다 장어도 전혀 없다. 하루도 아니고 이틀 조업을 못 하니 이런 상황이 되고 말았다. 아쉽다. 데리야끼 소스를 바른 장어구이, 오마카세에서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장어구이 초밥은 다음 모임에서 선보이거나 주문진 시장에서 구해서 시도해보자.


다음은 조개를 사자. ④ 백합은 국내산이 전혀 없다고 들어서 걱정했는데 지난번에 구매했던 가게에서 1kg에 15,000원씩, 2kg을 30,000원에 샀다. ⑤ 초밥과 호소마끼에 사용할 대형 피조개 역시 1.2kg을 16,000원에 구매 ⑥ 스티로폼 상자에 든 10kg짜리 각굴은 20,000원에 구매했다. 각굴을 조금 까면 되니까 깐 굴은 사지 않아도 되겠다. 생굴은 어떻게 먹어도 맛이 좋고 또 유난히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 뺄 수 없는 메뉴이다. ⑦ 가리비도 1kg을 10,000원에 구매했다. 조개를 살 때는 이 집을 이용하면 종류와 양을 모두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번에도 아주 적은 양의 국산 백합을 사면서 ‘피맛골’의 정취를 느끼게 했던 가게인데 오늘도 만족스럽다.


당초 계획에서 바다 장어와 깐굴, 초절임용 생선이 빠졌으나 이 정도로도 충분한 양이라 더는 구매하지 않기로 했다. 피를 빼둔 방어와 참돔을 찾고, 조개를 산 가게로 와서 물건을 옮기려는데 양이 많아 쉽지 않다. 남자 주인이 와서 카트에 물건을 싣고 주차한 도로까지 갖다준다. 바람이 불고 추워서 짐을 싣자마자 바로 차에 탔다. 뒤에서 주차를 기다리는 차가 보여 미안한 마음에, 그리고 만족할 수준으로 샀다는 생각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재빨리 시동을 걸어 집으로 출발했다.


하! 이렇게 홀가분하고 빠른 출발이 2층, 새로운 가게, ○○ 유통에서 사기로 했던 와사비와 성게소, 우니를 사지 못하게 만들었다.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내와 함께 원인을 나이 탓으로 돌렸다. 이미 고속버스터미널을 지나고 있어 돌아갈 수도 없다. 이럴 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방법은 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후회하기 전에 재빨리 찾는 것이다. 와사비는 냉동실에 얼린 것이 있으니 그것을 사용하면 되고, 우니는 주문진 어민시장에서 사면 더 싱싱할 것이라는, 제법 그럴듯한 이유를 찾았다. 역시 마음이 편안하다. 설령 현지 시장에서 우니를 구하지 못해도 다음 모임에서 선을 보여도 될 것이다. 고기에 우니와 와사비를 함께 올려서 먹는 게 최근에 젊은 친구들 중심으로 널리 퍼지고 있다니 구할 수 있으면 시도해보자.


돌아오는 길 역시 막히지 않는다. 도로 상태도 염화칼슘을 많이 뿌려 언 곳은 전혀 없어서 미끄러짐을 걱정할 이유가 없다. 집에 돌아오면서 상가 GS25 편의점에서 담배 한 갑을 샀다. 새벽이라서 계산대에서 졸고 있는 점원을 깨워 계산했다. 신년부터 10일 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았기에 올해 처음으로 담배 구매에 4,500원을 투자했다. 앞으로 사흘 동안 몸을 움직이려니 담배의 유혹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아 10일간의 금연 기록을 깨기로 한 것이다. 참느라고 스트레스를 받느니 오늘과 내일은 피우면서 마음 편하게 요리하기로 했다. 대신 요리할 때는 반드시 쉐프 장갑을 착용하자. 짐을 집으로 올리려는데 Stanley Cart가 없어 불편하기 짝이 없다.


집에 오자마자 ① 백합 조개 해감부터 시작했다. 물에 소금을 풀어 백합을 넣은 다음 까만 비닐봉지로 싸서 베란다에 내어두면 되는 간단한 작업이다. ② 가리비는 해동할 필요가 없어 흐르는 물에 씻어서 별도 그릇에 담았다.


이어서 ③ 방어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대방어는 처음이라 낯설지만, 훨씬 더 큰 연어를 손질한 경험 덕분에 두려움은 없다. 게다가 오늘은 필렛을 만드는 오로시 작업을 하지 않고, 비늘과 내장만 제거한 다음 물기를 잘 닦아서 해동지로 싸고 랩으로 꽁꽁 싸매면 되니 한결 더 쉽다. 조심스럽게 비늘을 벗기고 대가리를 분리한 다음 내장과 아가미를 제거했다. 손질을 마친 방어의 꼬리를 잘라 크기를 최소로 만든 다음 해동지로 뱃속과 외부를 감싸서 랩으로 꽁꽁 싸매 김치냉장고에 넣었다. 여기서 회를 떠 가면 오로시 작업 중에 속살에서 스멀거리는 방어사상충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일 우려가 없어 좋지만, 싱싱한 방어회 맛을 위해서는 이 상태로 가져가는 것이 좋다. 일본의 선진 양식 기술을 믿고 이대로 가져가기로 했다. 방어 대가리도 가져가 아주 작게 나오는 고급 회 부위를 뜨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고 싶으나 가져가는 수고에 비해 보여줄 게 적어 이번에는 살을 발라 포장해가기로 했다. 대가리에서 머릿살 두 점, 뽈살 두 점 그리고 가마살 두 점을 분리해냈다. 회는 셰프가 직접 뜨는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혀로 맛을 봐야 감동과 울림이 더 큰데! 특히 희소 부위는 더 그런데. 나머지 부위는 매운탕을 끓여도 맛이 없어 바로 음식물 쓰레기로 버렸다.


이어서 ④ 참돔을 손질했다. 참돔 손질의 최대의 적은 튀는 비늘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플라스틱 병을 이용하여 튀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보호망을 만들 생각이었는데 다른 데에 정신이 팔려 만들지 못했다. 지금 만들기에는 너무 늦었다. 우려했던 대로 굵고 넓적한 비늘이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그래도 커서 눈에 잘 띄니 치우기에는 낫다. 역시 가마살 두 개만 떼어내 해동지에 싸서 랩으로 포장하고 참돔 몸통은 해동지로 안팎을 잘 감싼 다음에 랩으로 감싸서 김치 냉장고 안에 넣었다. 머리는 매운탕에 넣어야 해서 별도의 그릇에 담아 양양으로 가져가게 준비했다.


이어진 작업은 매운탕에 넣을 ⑤ 우럭 손질이다. 회로 뜰 것이 아니라서 손질이 가장 쉽다. 작고 부드러운 비늘을 치고 내장과 아가미만 제거해서 깨끗하게 씻은 다음 매운탕에 넣을 참돔 대가리와 함께 같은 그릇에 넣었다. 싱싱해서 육질이 제법 단단하다. 매운탕으로 손꼽히는 어종이니 그 맛을 믿어보자. 게다가 싱싱하고 큼직한 참돔 대가리와 회를 뜨고 남은 뼈가 함께 들어갈 것이니 맛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이제 ⑥ 피조개만 손질하면 끝이다. 피조개 개수가 생각보다 많다. 한 사람이 한 마리씩 초밥을 먹도록 여덟 마리를 손질했다. 피조개 손질에는 단단한 스테이크 나이프가 제격이다. 껍질 사이에 조심스럽게 칼을 넣어 관자를 잘라냈다. 입을 벌리면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지 굳게 다문 입을 벌리지 않으려는 굵직한 피조개와 제법 질긴 싸움을 오래 해야 했다. 피조개 날개살은 별도로 분리하여 소금물에 씻어 호소마끼를 만들도록 준비하고 본살은 가운데에 칼을 넣어 얇게 저몄다. 도마 위에 던지니 근육이 수축하는 모습이 눈으로 보인다. 싱싱함의 증거이자 사각거리는 식감의 보증 수표이다.


⑦ 각굴은 양이 많아 스티로폼 상자에 들어가지도 않거니와 스끼다시, 곁반찬으로 미리 내어도 손색이 없어 일부를 까기로 했다. 피조개보다 틈이 더 좁아서 두꺼운 스테이크 나이프로는 손질이 쉽지 않아 얇은 과도를 사용했다. 30여 마리를 까니 이제야 스티로폼 상자에 들어갈 양으로 줄었다. 깐굴은 소금물에 두세 차례 씻어서 바로 먹을 수 있게 준비했다. 해감 중인 백합도 씻어서 그릇에 담고 각굴과 가리비는 스티로폼 상자 안에 아이스 팩을 넣은 다음 테이프로 밀봉했다. 드디어 생선과 조개 손질을 모두 마쳤다. 여섯 시부터 시작했으니 네 시간 정도 걸린 셈인데 날이 갈수록 손질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기쁘고 행복하다. 여덟 명의 맛있고 행복한 만찬을 위해 투자한 시간치고 그리 길지도 않다.


잠시 쉬었다가 11:00, 출발하기 전에 숙성 중인 방어와 참돔을 꺼내 젖은 해동지를 깨끗한 것으로 갈고 다시 랩으로 꼼꼼하게 포장했다. 진공 포장에 맞먹는 포장만이 오늘 밤 행복한 맛을 제공할 것이다. 짐을 모두 꾸리니 대형 아이스 박스 한 개, 대형 아이스 가방 한 개, Co○○ 쇼핑 백 세 개, 여행용 가방 한 개, 작은 가방과 서류 가방까지 제법 많다. 첫 출장 요리라서 어떻게 짐을 꾸려야 할지 조금 난감하긴 하다. 마음도 두근거리면서 설렌다. 맛이 없어도 좋은 척 잘 먹어줄 친구들이기에 걱정은 없으나 그래도 맛이 좋으면 더 좋겠다.


양양까지 가는 길은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동해안 여행은 무척 오랜만이다. 용인휴게소에서 기름을 넣은 후 다시 출발했다. 13:00가 넘어가니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진다. 어젯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이다.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는 게 좋겠다. 남은 시간이 한 시간 반 정도라니 더 가지 말고 횡성 휴게소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아내가 입맛 다실 것을 사 오는 동안 나는 Alarm을 맞추고 잠을 청했다. 선잠을 자다가 아내가 들어오는 소리에 눈을 떴다. 조금 더 자도 되겠다는 생각에 눈을 붙였다가 Alarm 소리를 듣고 다시 눈을 떴다. 개운하다. 이래서 순간 낮잠의 만족도가 높다고 한 모양이다.


영동고속도로는 언제 달려도 낭만을 부르는 곳이다. 태백산맥을 넘으려니 신사임당이 친정, 강릉에서 서울로 가면서 어머님을 위해 지은 애틋한 사모곡, 강릉에서 이이를 키우면서 보라색으로 얼룩진 치마에 포도송이를 그려 주었다는 이야기 등 내가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조선의 역사를 아내가 풀어낸다. 그동안 아내가 tvN의 ‘벌거벗은 한국사’를 열심히 시청한 덕분이다. 아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에 관심이 많다. 나는 별로인데.

횡성 휴게소를 출발하여 둔내, 면온, 평창, 속사, 진부, 대관령, 강릉을 거쳐 남양양 IC로 빠져나와 7번 국도를 따라 시변리, 동산리, 38선 휴게소, 기사문리를 거쳐 현북면 사무소 인근에서 우회전하여 14:45에 하조대 숙소에 도착했다. 아내와 둘이서 이렇게 장시간 새로운 길을 운전하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먼저 온 다정 아빠의 도움으로 짐을 2층까지 무사히 올렸다. 도마까지 가져온 우리를 보더니 다정 엄마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출장 요리는 이게 기본 아닌가? 나도 처음이라 잘 모르겠다. 차가 있으니 최대한 챙겨온 것이다. 짐을 올린 후 17:00부터 밥을 먹는 게 어떠냐고 물었더니 너무 이르단다. 아! 우리처럼 하루에 두 끼만 먹는 집이 아니구나. 나는 벌써 배가 고파오기 시작하는데. 15:00가 조금 넘어 구피네 부부가 도착했다. 대전에서 다섯 시간 정도 걸렸단다. 오는 길에 원주에 들러 막국수를 먹고 오긴 했다지만 대전에서 오기에는 아주 먼 거리이다.


16:00 직전에 미야 부부가 마지막으로 도착했다. 방은 우리 부부가 가장 좋은 곳에 잡았다. 바다가 보이는 곳이고 방도 가장 넓은 것 같다. 다정네 부부는 여러 차례 왔다면서 입구 방을 선택했다. 구피네 부부는 우리 방 맞은편, 가장 늦게 도착한 미야 부부는 바다가 보이는 방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단다. 전망과 난방을 맞바꿨다. 나도 그랬지만 다들 방 안에 화장실이 별도로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이게 내가 나중에 시골에 짓고 싶은 집의 모습이다.


내부 인테리어도 제법 신경을 많이 썼다. 중앙 주방과 거실 가구도 최고급이다. 특히 바닷가 쪽 소파는 회전식으로 만들어 돌아서 바로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구조이다. 주방의 탁자는 대리석 상판이라 고급스럽게 보이고 바닥 역시 모두 대리석으로 마무리하여 고급스럽다. 다들 각자의 방에 짐을 풀고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아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를 감상하면서 연신 좋다는 말을 꺼낸다. 내가 봐도 자연스럽게 좋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곳이다. 좋아하는 음식과 친구들이 함께 있다는 것이 더 기쁘다. 다정네 부부가 내려온 원두커피, 그리고 구피네 부부가 준비한 과일을 마시고 먹으면서 그동안의 근황에 관해 얘기하는데 단 한 순간도 끊김이 없이 대화가 이어진다. 아내들이야 원래 그렇다고 치지만 남자들도 다들 동조하고 있다. 남자들도 점점 여성 호르몬이 지배하는 나이로 접어들고 있다는 증거이다. 젊은 시절에는 신기하고 어색했던 것이 조만간 환갑을 맞이할 우리에게는 점점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삶의 일부로 녹아들고 있다.


17:00가 조금 넘어 요리를 시작하려니 미야 아내가 주방 안의 모든 그릇을 한 번 씻어야 한다면서 팔을 걷어붙이고 설거지에 나섰다. 아내들이 모두 나선 덕분에 모든 그릇을 순식간에 아주 깔끔하게 씻었다. 그사이에 나는 아내에게 초밥 만들 밥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모든 요리를 내가 다 할 줄 알았는데 아내에게 부탁하는 것을 보니 의외인 모양이다. 냄비 밥은 아내가 가장 잘 짓는다고 둘러댔다. 사실 초밥 만들 때 압력밥솥이 아닌 냄비 밥을 해야 하는데 나는 아직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나도 자리를 잡고 백합탕을 먼저 끓이기 시작했다. 청양고추를 넣어 칼칼하면서도 시원한 국물이 식욕을 돋울 것이다. 다 끓여 식탁으로 내면서 백 가지 무늬가 있어서 백합이라고 부른다며 아는 체했다. 내가 봐도 정말 신기할 정도로 무늬가 다양하면서도 맛이 좋다.

바로 흰살생선, 참돔 회 손질을 시작했다. 해동지와 랩으로 감싼 통을 모두에게 보여주면서 생선은 이 정도로 감싸야 숙성이라고 말할 수 있고, 공기와 접촉하는 순간부터 부패의 시작이라고 제법 잘난 체했다. 새벽에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사서 직접 내가 손질했다고 했더니 다들 놀란다. 전문가가 아닌 보통 사람이 이렇게 손질하는 것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회를 뜨면서 미리 손질한 참돔 가마살과 방어 머리에서 떼어낸 뽈살, 가마살, 머릿살을 내었더니 회는 이럴 때 먹어야 한다면서 젓가락을 들고 요리하는 식탁 주변으로 모여든다. 맞다. 예쁘게 장식한 회보다 이게 훨씬 더 맛이 좋을 수도 있다. 아내에게 회간장, 와사비를 꺼내라고 부탁해서 뱃살 부위까지 몇 점 썰어주었더니 셰프가 먼저 먹어야 한다고 권하는 친구가 있다. 고맙다. 맛이 아주 좋다. 3.2kg짜리라서 기름도 아주 풍부하고 10시간 정도 숙성된 상태라서 감칠맛도 제법 올라와 고소한 맛이 아주 많이 느껴진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물러지기 쉬운 생선인데 쫄깃한 식감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꼼꼼한 포장 덕분일 것이다.


음식이 제대로 차려지지도 않은 상태에서도 다들 맛이 좋다면서 즐겁게 먹는다. 그런데 다들 자기가 먹기 전에 아내에게 먼저 권하는 모습을 보니 다들 애처가임이 분명하다. 직접 만든 회 간장도 다들 좋아해서 다행이다. 많이 찍어도 짜지 않으니 푹 절여서 먹으라고 했다. 가쓰오부시의 훈연향은 생선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맛과 향의 일부이다. 생굴도 꺼내 함께 먹게 했다. 다정 아빠는 여전히 좋아한다.


샤리가 완성되어 참돔으로 초밥을 쥐기 시작했다. 여덟 피스를 쥐어야 한 개씩 먹을 수 있기에 급하게 쥐었다. 지난번에는 밥이 많다는 의견이 있어 이번에는 양을 12g 수준으로 맞췄다. 오른손으로 12g의 샤리를 쥐고, 왼손에 참돔 네타를 올려 오른손 검지로 와사비를 묻혀 네타에 바른 후 샤리를 그 위에 얹어 사각 모양을 만들면 완성이다. 이제는 눈을 감고도 할 수 있는 작업이다. 그 위에 붓으로 회 간장을 발라주니 더 좋아한다. 바로 먹으면 되기 때문에 편안해서 그런 모양이다. 회 간장의 감칠맛은 여기에서도 빛을 발한다. 대규모로 생산해서 판매하는 회 간장에 비할 수 없는 맛이다.


초밥에 들어간 초데리에는 대부분 환만식초를 사용하는데 나는 고급 코하쿠 식초를 넣었고, 와사비 또한 유럽에서 나는 호스래디쉬 성분보다 일본의 전통 와사비가 더 많이 함유된 고급 와사비라고 강조했다. 맛은 보장할 수 없으나 들어간 식재료는 최고급임을 강조했다. 나의 부족한 요리 실력을 고급 재료로 덮으려는 속셈이다. 그런데 속셈은 나만 알고 다들 몰라야 하는데 지금 상황은 그게 중요하지 않다. 이래도 저래도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다.


드디어 다들 기다리던 대방어 해체다. 유선형 생선의 회뜨기는 기본이라서 아무리 커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특히 단단한 육질 덕분에 오로시 작업을 쉽게 마쳤다. 우려했던 방어사상충은 나오지 않았다. 일본의 선진 양식 기술을 믿기를 잘했다. 가장 맛이 좋으나 금방 질릴 뱃살, 담백한 등살을 적절한 비율로 잘라서 접시에 담아냈다. 먹어보니 숙성이 적당하여 감칠맛도 좋고, 식감도 아주 만족스럽다. 무엇보다 기름짐이 대단하다. 함께 곁들인 감태의 쌉싸름한 맛, 묵은지의 시큼한 맛, 와사비가 들어간 고추장과 쌈장의 결합체인 막장의 고소한 맛이 대방어의 기름진 맛과 사각거리는 식감을 각각 다르게 받쳐주고, 거기에 짭조름하면서도 가쓰오부시의 훈연향이 더해진 회 간장이 기름진 대방어의 맛을 극강으로 끌어올린다. 이전에 대방어라고 주문해서 내가 먹었던 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맛이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모양이다. 이래서 일본산 양식 방어가 가장 비싸게 팔리는 모양이다. 통상 10kg이 넘어야 대방어라고 하는데 그것은 자연산의 경우이고 일본산의 경우 5kg만 넘어도 기름진 맛이 일품이라고들 하던데 허언이 아니었다.


잠시 후 사잇살, 혈합육을 썰어냈다. 나는 비린 것에 익숙하지만 비린내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걱정했는데 싱싱한 맛과 식감이 모든 걱정을 덮어주었다. 비린 맛이 전혀 없고 고소한 맛 덕분에 한우 육사시미 맛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철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조금만 오래 공기에 노출하면 바로 산패가 시작되어 비린 맛이 나기 쉬워 싱싱한 방어가 아니면 회로 먹기 꺼려하는 부위인데 오늘은 거부감을 느낄 만한 요소가 전혀 없다. 


방어의 기름기에 거부감이 들 즈음에 피조개로 초밥을 만들었다. 아내가 곁에서 도와주니 요리가 한결 편하다. 낯선 식감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지만 하이 엔드급 오마카세에서 반드시 나온다는 말로 강제로 맛있게 먹도록 분위기를 다시 만들었다. 나는 꼬들꼬들하면서도 사각거리는 식감이 최고이다. 더구나 기름진 방어의 맛을 가시게 하는 새로운 맛이다.


그 사이에 매운탕을 끓였다. 기대했던 김○○ 셰프의 시원하면서도 칼칼한 맛을 기대하면서 맛을 보는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작년 11월 28일, 집들이에서는 술에 취해 소금을 넣지 않아 심심하게 먹어야 했던, 그러면서 원래 이런 맛이라고 우겼던 실패담을 이제는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어서 좋다. 매운탕 역시 성공이다. 마지막 메뉴는 호소마끼인데 다들 배가 부르다는 이유로, 그리고 내가 잊고 억지로 권하지 않는 바람에 매운탕을 끝으로 식사를 마무리했다.


이렇게 좋은 음식에 더해진 정겨운 이야기는 만찬의 즐거움을 배가시키기 마련이다. 다들 서로를 위하고 배려하는 마음, 더 즐겁고 행복하게 살 방법 등을 논의하면서 행복한 만찬을 이어 나갔다. 근데 나는 무슨 말을 했지?


1차 식사를 마쳤다. 다들 배가 불러 바닷가 모래밭 산책이라도 하자는 의견이 있어 옷을 두껍게 챙겨 입고 다들 밖으로 나왔다. 구피 아빠가 ‘스카이 맵’이라는 Smart Phone App으로 별자리 확인이 가능하다면서 보여준다. 어? 그런데 내가 보기에 말도 안 되는 곳에 있는 별을 북극성이라고 한다. 전갈 사냥꾼, 오리온이 반대편에 있는 것으로 봐서 저게 북극성이 될 수가 없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했으나 나의 감각이 지식의 축적체, 기계를 따라갈 수는 없다. 북극성이 맞다. 북극성은 한 개가 아니라 세 개의 별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북두칠성의 모습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국자 손잡이에서 두 번째 별이 로마시대 병사를 선발하는 데에 시력 검사에 사용했던 별이라고 뻐기면서 잘난 체하려고 했는데. 북극성 때문에 추락한 천문학 지식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방법을 모색하려는데 기회가 없다. 구피 아빠가 거대 초신성, 태양에서 지구까지의 거리만큼 큰 별의 존재를 언급하고, 남쪽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별을 명왕성이라고 하는 것을 보니 내가 어쭙잖은 천문학 지식을 꺼내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 밖에 나오기를 극도로 꺼리는 다정 엄마만 빼고 다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들려오는 겨울 동해안 바닷가 파도 소리를 얼마 만에 듣는지 모를 정도로 오랜만이다. 이게 진정한 휴식이다.


숙소로 돌아와 노래방을 켜 이런저런 노래를 불렀다. 아내는 ‘오라버니’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처음이다. 밖에 나오니 없던 부부애가 생긴다고 농담했다. 아내도 노래 부르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는구나. 분위기가 고조되어 다들 춤까지 추는 등 모두 유흥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우리 친구들이 이렇게 흥이 많았는지 궁금할 정도이다. 나는 중간에 몇 장의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 22:00 이후에는 노래방 기기를 사용하지 말라는 직원의 당부를 무시하고 아래층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조금 더 사용하기로 했다. 다들 분위기에 빠져 23:30이 되어서야 마쳤다. 마치자고 하는데도 다들 흥에 겨워 아직도 더 놀고 싶은 눈치이다. 이렇게 첫날은 아주 맛있고 행복하게 막을 내렸다.


내일은 또 어떤 행복이 우리를 기다릴까? “행복이 오지 않으면 만나러 가야지”라고 말한 시인도 있다지만 내일은 그냥 기다리기만 해도 행복이 저절로 찾아올 것 같다. 그래서 더 행복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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