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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가는대로 Nov 03. 2023

가장 싱싱한 연어를 찾아
노량진수산시장으로

노량진 새벽 도매시장에서 구매한 연어 손질 이야기

  02:30, 자는 아내를 깨운 후 주방 베란다에 있던 아이스박스를 꺼내 얼음을 넣고, 생선을 담아 올 시장바구니를 준비했다. 이제까지 한 번도 깨운 적이 없는 딸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별일이다. 깨워서 03:00가 되기 전에 아내와 함께 노량진수산시장으로 출발했다. 새벽이라 차량이 밀리지 않아 54km를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04:00가 되기 직전에 도착했다.


  딸에게 첫 느낌을 물으니 아무 생각이 없단다. 오빠는 “생선은 죽고 사람은 사는 곳, 새벽 05:00에도 지각하는 곳”이라고 제법 심오하게 표현했다고 하니 오빠가 이상하단다. 그게 아니라 네가 너무 무감각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싶다. 하지만 본인의 관심 외에는 철저하게 무시하는 것이 나를 닮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는 추궁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오늘 왜 따라온다고 했을까?


  연어를 사기 위해 지하 1층 주차장으로 차를 몰았다. 들어가자마자 높게 쌓인 긴 스티로폼 상자를 보니 안심이다. 어제 인천공항을 통해 통관한 싱싱한 연어가 이렇게 많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늘 다니던 가게에 도착하니 배달을 위해 다들 바쁘게 포장 중이다. 1kg에 16,600원, 2주 전보다 kg당 10,000원이 내려 오늘은 가장 큰, 7.2kg짜리 한 마리를 112,000원에 구매했다. 안주인도 어제보다 싸다면서 오늘 잘 왔다고 하신다. 덕분에 기분이 좋다.


  연어는 내장이 제거된 상태라서 살수율이 80% 이상이기 때문에 순살은 5kg 정도 얻을 것이다. 순살 1kg에 24,000원이 안 되니 코스트코보다 절반 정도 싸다고, 이전에도 여러 차례 했던 말을 반복하고, 산수가 들어간 계산식을 풀어놓았다. 그런데도 숫자를 싫어하는 아내와 딸은 짜증 내지 않고 묵묵히 들어주고 있다. 가격은 개의치 않고 본인들이 손대지 않아도 저녁에는 싱싱하고 맛있는 연어회와 초밥, 그리고 데리야끼 소스가 들어간 사케동이 식탁에 올라올 것이라는 기쁜 마음에 이 정도의 수다는 들어 줄 수 있다고 감내했을 것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외부로 나와서 다시 3층 주차장에 주차 후 1층 도매시장으로 내려갔다.


  처음 온 딸에게 도매상가 구경을 시켜주기 위해 한 바퀴를 돌았다. 아주 다양한 활어와 선어가 자신을 데려가 주기를 바라며 활어는 물속에서, 선어는 스티로폼 상자 위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동안 먹고 싶었던 병어 8마리를 30,000원에, 흰다리새우는 두 팩에 32,000원에 사기로 흥정을 마쳤다. 그런데 지갑에 잔돈이 없어서 60,000원에 달라고 했더니 주인은 겨우 2,000원이 남는 장사인데 그걸 깎는다고 눈을 흘기면서도 그 가격에 내어준다. 아내는 곁에서 “많이 늘었다.”고 나의 시장보기 기술을 추켜세운다.


  마지막으로 올해 최대의 수혜라는 전어 1kg을 10,000원에 사서 3층으로 올라왔다. 2주 전 6,000원보다는 비싸지만 30,000원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던 작년에 비하면 올해는 횡재한 셈이다. 차를 조금 옮겨 다시 주차하고 지하 1층 ○○씨푸드로 내려가 무순 두 팩, 장갑, 중형 비닐 팩, 일본 가네쿠 와사비 505 한 봉지를 샀다. 가네쿠 와사비 505 가격이 18,000원이니 인터넷 가격 15,000원과 배송료 3,000원을 고려하면 비싸지 않다. 회를 먹는 데에 필요한 재료를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곳이라고 딸에게 알려주면서 각종 장식 재료가 쌓인 모든 진열장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혼자 올 일은 없겠지만 직장에 다니거나 노량진수산시장에서 회식할 일이 있으면 알아두는 것이 나을 것이다.


  아내는 딸에게 노량진수산시장 전체를 보여주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지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에스컬레이터가 끝나는 2층으로 가자고 한다. 3층 주차장으로 바로 올라오지 않고 2층에서 내려 딸에게 구경시켜주었다. 딸은 Smart Phone 카메라로 몇 컷의 사진을 찍는다. 오늘 우리 부부를 따라온 딸의 꿍꿍이가 무엇인지 아내도, 나도 아직 모른다. 성향을 고려할 때 우리 부부를 위해 그냥 따라나설 녀석은 절대 아니다.


  갈 때와 마찬가지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복귀했다. 나들목을 빠져나와 승용차 Navigation이 알려주는 대로 길을 선택했더니 좌회전을 세 번 더 해야 하고,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이 많을 뿐만 아니라 시속 30km 이하 속도로 운행해야 하는 어린이 보호구역을 세 번 통과해야 해서 번거롭기 짝이 없다. 다시는 이 도로를 타지 않고 싶다. 그런데 실제로 운전대만 잡으면 이 생각을 하지 못하고 왜 이 길을 다시 이용하는지 모를 일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내가 정리한 주방에서 연어부터 손질했다. 데바 칼, 사시미 칼, 껍질을 분리하는 오로시용 칼까지 세 자루의 칼을 꺼내 칼집을 벗겨 아일랜드 식탁 위에 나란히 펼쳤다. 며칠 전 두 시간 동안 정성을 다해 갈아둔 덕분에 칼날이 형광등 불빛을 받아 서슬이 퍼렇게 기를 뿜고 있다. 물을 틀어 튀지 않게 비늘부터 쳐냈다. 비늘 긁히는 소리가 연어의 싱싱함을 말해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싱싱한 연어는 바로 이 녀석, 이틀 전 노르웨이 양어장에서 손질되어 어제 인천공항을 통해 들어와 오늘 새벽에 노량진수산시장에서 나에게 온 녀석이다. 7.2kg, 거구의 생선을 서너 차례 뒤집어도 살이 터지거나 물러지지 않을 정도로 싱싱하다. 이 싱싱함과 쫀득한 식감을 위해 이른 새벽에 노량진수산시장을 늘 찾곤 한다.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고이다.


  7.2kg이라서 2주 전에 샀던 것보다 훨씬 크다. 3등분이 아니라 4등분을 해야 할 판이다. 꼬리살, 등살과 뱃살 등으로 구분하여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척추뼈에 붙은 살은 아내에게 긁어서 다른 그릇에 담게 하고, 가마살과 지느러미살은 별도로 떼어 보관했다. 긁은 살은 회덮밥으로, 가마살과 지느러미살은 연어구이로 다시 태어나 우리 가족에게 맛있는 한 끼를 선물할 것이다. 자투리는 깍둑깍둑 썰어 연어장에 넣을 준비를 마쳤다.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아 손질을 모두 마쳤다. 처음 시작할 때는 두 시간 반이 걸렸던 것을 고려하면 눈부신 발전이다. 요리의 숙달 여부는 걸리는 시간이 말해주는 것 같다.


  아내와 딸에게 지금 먹을 것인지 물었더니 아침이라서 부담된다면서 거절한다. 일단 해동지와 랩에 싸서 김치냉장고 안에 넣어두었다. 김치냉장고 한구석에 차곡히 쌓아둔 연어를 보니 뿌듯하다. 주부들이 김장을 끝내고 냉장고 안에 김치를 넣었을 때의 기분이 이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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