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가는대로 Nov 03. 2023

다시 가고픈 캐나다 빅토리아 시티에 대한 추억 (I)

고즈넉한 항구도시의 겨울 정취

  식사를 마치자 그릇을 치우는 승무원들의 부산한 움직임이 보이더니 기내의 이내 모든 불이 꺼진다. 조용히 잠을 잘 시간이다. 마스크 줄이 끊어져 불편하기에 편평하게 펼친 좌석의 베개 곁에 벗어두고 잠을 청했다. 얼마나 잤을까? 귓가에 “마스크 착용하세요!”라는 고주파의 목소리가 나를 깨운다. 승무원이다. 젊은 20대 아가씨에게는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지만 나와 같은 50대 중반의 아저씨에게 단잠을 깨우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깨닫지 못한 것이다.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밉다. 하지만 어쩌랴? 내가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았으니. 한 번 달아난 잠은 50대 중반에게 쉬 돌아오지 않아 상당한 시간 동안 승무원을 원망하면서 잠을 다시 부르기 위해 온몸을 뒤척여야 했다. 비즈니스석이라서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돈의 위력이자 돈이 주는 혜택이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거의 20시간이 지나 호텔에 도착했다. 빅토리아 시티 항구에 바로 붙어 있는데 가장 상징적이고 고풍스러운 호텔이란다. 붉은 벽돌, 복잡한 구조, 우아함이 특징인 에드워디안 건축 양식이라더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고풍스러운 품격이 배어난다. 오는 길에 보았던 200년은 살았을 법한 가로수가 이곳에도 제법 많다. 대만에서도 느꼈지만 우리는 1950년, 전쟁 때문에 대부분 Reset되어 다시 시작했는데 본토에서 전쟁을 치르지 않은 나라는 이렇게 가로수, 건물 등이 온전하게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부럽다.


  드디어 객실에 들어왔다. 피곤하다.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여니 물이 없다. 어? 5성급 호텔에 물도 없어? 호텔에서 제공한 안내문을 보니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 물을 비치하지 않았으니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그대로 마셔도 된단다. 오르카, 범고래로 유명한 해양 도시라서 그런지 플라스틱 사용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심지어 출입을 위한 카드 키도 플라스틱이 아닌 나무로 만들었다. 돌아갈 때는 기념품으로 가져가도 된단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이런 노력 덕분에 다들 캐나다의 자연을 만끽하기 위해 다시 찾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일기를 정리하면서 직원들이 준비한 소주와 육포를 꺼내 한국의 맛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마셨다. 맛도 맛이지만 분위기가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창밖으로 보이는 크리스마스 조명이 휘황찬란한 거리와 건물, 그리고 바람에 나부끼는 빅토리아 시티 항구에 정박한 선박의 깃발을 보면서 마시는 우리나라 소주 맛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시쳇말로 “해 봤어? 해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말아.”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순간이다. 내친김에 몇 해 전에 유행했던, 해변에서의 휴식 인증샷을 흉내 내어 두 발을 창가에 올리고 그 옆에 소주와 육포를 두고 외부 풍경과 함께 사진으로 찍어 아내에게 보냈다. 아내는 이제 비로소 여유를 찾았다면서 마음껏 즐기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이제야 비로소 여유를 갖게 되었다.


  눈을 떴는데 아직 어둡다. 외풍 때문에 어젯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가림막을 모두 내려두었더니 창문으로 들어와야 할 아침 햇살이 들어오지 못하고 모두 밖에서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가림막을 여니 창밖은 어젯밤과 다른 세상이다. 눈이 내렸다. 약하게나마 지금도 내리고 있다. 무척 이국적인 설경이다. 카메라에 저절로 손길이 간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 중에 우산을 받친 사람이 거의 없다. 하와이에서도 느꼈지만, 이곳도 우산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 물도 제공하지 않고 카드 키도 나무로 만드는 노력 덕분에 공기가 깨끗해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일 수도 있겠다. (중략)


  저녁은 한국인 모자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치킨, 짬뽕 국물, 김치를 시켜 해결했다. 김치는 4$, 약 5,000원이다. 한국인 모자가 무슨 사연으로 이국만리 이곳까지 와서 식당을 운영하는지는 모르지만 나와 같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밴쿠버라면 모를까, 이곳 빅토리아 시티까지 진출하기는 대단한 용기와 개척자 정신이 필요했을 것이다. 아니면 절박함이나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밝은 표정을 보니 후자는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더 편안해진다.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곳에 사는 한국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캐나다 사람들도 이곳을 퇴직 후 살고 싶은 도시 1위에 올릴 정도로 고즈넉하고 고풍스러운 곳이라는 사실도 거리를 걸어본 다음에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