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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가는대로 Dec 05. 2023

가장 길었던, 그래서 더 행복했던  여섯 시간의 만찬

친구 부부를 초대하여 집들이, 연어와 해산물로 홈마카세 첫 도전

  D-6일, 친구가 11월 28일에 약속한 운동 일정이 맞지 않아 다음으로 연기하자는 서글픈 소식을 전해왔다. 늘 나를 먼저 생각해 주는 친구라서 항상 고맙다. 이참에 그 고마움에 보답하고 또 집들이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참석할 수 있는지 물었다. 선약이 있으나 내 성의를 봐서 오겠다는, 장난기가 섞인 그의 답변에서 오히려 애정과 배려, 고마움을 느낀 것은 아마 3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찐한 우정 덕분일 것이다. 다른 친구들도 초대하고 싶으나 첫 도전이고 여섯 사람을 넘으면 대접이 힘들 것 같아 이번에는 두 가족만 초대하기로 했다. 첫 홈마카세! 도전해보자


  D일, 02:30 아내를 깨웠다. 덕분에 03:00가 조금 넘어 집에서 노량진수산시장으로 출발했다. 차량이 밀리지 않으니 말 그대로 고속도로이다.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아 04:00 직후에 도착했다. 먼저 연어를 사기 위해 언제나처럼 지하 1층으로 내려가니 높게 쌓여 있어야 할 연어 포장용 스티로폼이 보이지 않는다. 혹시 내가 통관 날짜를 잘못 알고 있었던가, 아니면 그새 바뀐 것일까?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아내에게 대안을 마련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하면서 늘 다니던 ㈜○○상사에 도착하니 그제야 스티로폼 상자가 많이 보인다. 마음이 놓인다. 통관 날짜는 월요일과 목요일, 바뀌지 않았다. 화요일 분위기는 금요일과는 확연히 다르다.

가격은 1kg에 15,600원, 한 달 전보다 1,000원이 싸다. 비교적 큰 7.1kg짜리 한 마리를 112,000원에 샀다. 안도감과 동시에 만족감이 꿈틀거리며 올라온다. 1층으로 올라와 도로변에 주차했다. 차량이 많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금요일과 달리 도로변도 아주 한산하다. 앞으로 노량진수산시장 방문은 금요일과 토요일을 피하고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주말은 사람이 많은 만큼 좋은 물건이 많이 들어올 것이다.

하루 전 인천국제공항으로 통관한 7.1kg짜리 연어

  도매시장에서 방어가 눈에 띄어 일본산 가격을 물으니 1kg에 20,000원, 비싸지 않다. 5kg 정도이니 100,000원이면 살 수 있겠는데 기름기가 많아 연어와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구매하지 않았다. 당초 계획대로 참돔을 사려는데 2.1kg짜리밖에 없다. 3kg은 넘어야 먹을 만한데. 조금 더 돌아보다가 마땅한 흰살생선 횟감이 없어서 결국은 조금 전에 봤던 2.1kg짜리 한 마리를 사서 피를 빼달라고 부탁했다. 가장 먼저 먹어야 할 흰살생선 초밥으로 만들기에 가장 적절하고, 또 맑은탕을 끓이면 밥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참돔은 괜히 바다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게 아니다. 12시간 정도 숙성하면 적당하게 물러지고 감칠맛이 돌아 밥알과 아주 잘 어울려 최고의 초밥이 될 것이다.


  피가 빠지는 동안 한 바퀴 더 돌면서 적당한 먹거리를 찾는데 기대했던 청어가 없다. 요즘 가장 맛이 좋은 시기인데. 초절임으로 대체할 죽은 전어 가격을 물으니 횟감은 아니란다. 초절임이 가능한지 물으니 뭔지 모른다. 아는 사람만 아는 모양이다. 깐 생굴, 아내가 좋아하는 꼬막, 자연산 대하 20마리를 사고, 참돔을 찾아서 돌아오려는데 양이 너무 많아 백합을 구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중앙통로가 아닌 뒤쪽 통로에서 백합을 1kg 단위로 파는 집을 발견하여 2kg을 샀다. 일본식 미소 된장국 대신 백합탕을 내면 더 좋을 것이다. 역시 큰길보다는 뒷길이 더 유용할 때가 있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고관대작의 말을 피해 백성들이 다녔다는 피맛길, 그 길에 값싼 선술집 등이 생긴 이치가 이곳에서도 적용되는 것 같다. 중앙통로에는 대규모로 파는 곳만 모여 있다. 이 정도의 재료라면 내가 원하는 메뉴는 충분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오는 길도 막히지 않으니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05:30이 조금 넘어 집에 도착했다. 늘 하던 대로 아내가 주방을 치우는 사이에 나는 데바 칼, 사시미 칼, 비늘 제거기, 가위 등을 준비하여 손질을 시작했다. 이제는 어떤 해산물이라도 손질에 걱정이 없을 정도로 익숙해져 있다. 생선 요리를 시작한 지 불과 3년, 그것도 취미로 시작했는데 이 정도 자신감이라니 코로나19 팬데믹 시절에 시작하길 잘했다. 무엇이든지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가장 빠른 모양이다.

백합 해감, 시간이 가장 오래 걸려 먼저 시작했다. 소금을 푼 물에 백합을 담가 검은 비닐봉지로 씌운 다음 주방 베란다에 꺼내두었다. 2kg이라서 제법 양이 많다. 저녁에 씻어서 바로 백합탕을 끓이면 될 것이다. ② 꼬막은 아무래도 오늘 메뉴에 포함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내는 요리를 내기 전에 시간을 보내면서 까먹도록 준비하자는데 애피타이저로 먹기는 간이 너무 세다. 그래서 부엌 베란다로 일단 꺼냈다. ③ 생굴은 우선 김치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나중에 소금물에 두세 차례 깨끗하게 씻어서 레몬을 뿌려 신선한 회로 낼 것이다.


  다음은 생선회를 뜨는 것이다. ④ 연어 손질, 7.1kg이라서 무척 크고 두께가 빵빵해서 마음에 든다. 싱싱함은 오늘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새로 산 창칼의 사용이 익숙하지 않다. 절삭력은 무척 좋은데 손에 익지 않으니 자꾸 엉뚱한 부분에 칼날이 들어가 당혹스럽다. 게다가 물이 스며들지 않게 손잡이에 에폭시 레진 작업을 한 터라 미끄러워 제대로 잡을 수가 없다. 데바 칼로 바꿔 잡았다. 손에 익어 능숙하게 절단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이틀 전에 갈았던 가위로 두꺼운 지느러미를 자르고, 비늘 제거기로 비늘을 벗기고 대가리를 자르기까지 불과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숙달한다는 것은 살과 뼈를 제대로 분리하는 것, 그리고 시간의 단축을 의미하는 것 같다. 데바 칼을 척추 바로 아래까지 깊숙이 넣어 한두 번의 칼질로 깔끔하게 필렛을 만들어냈다. 아주 밝게 빛나는 연어의 분홍색 살빛에 눈이 부실 정도이다. 이 영롱하면서도 신선한 색깔을 보기 위해 연어를 직접 손질하곤 한다. 호네누끼로 몸통에 수직으로 들어가 있는 가느다란 뼈를 뽑아내고 갈비뼈를 제거한 후 껍질을 벗겨냈다. 모든 것이 순조롭다. 역시 경험에서 오는 숙달의 결과이다. 너무 커서 그 부피와 무게 때문에 생선을 제대로 뒤집거나 옮기지도 못했던 2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손질 중인 연어

  ⑤ 참돔 손질, 이제는 눈 감고도 손질할 수 있을 정도로 숙달되었다. 하지만 늘 자만이 일을 그르치는 법이다. 데바 칼을 깊게 넣는 바람에 쓸개에 칼끝이 닿아 쓸개즙의 진한 녹색이 살에 약간 묻어 나온다. 바로 물로 씻어 쓴맛이 살에 번지는 것을 막았다. 순식간에 필렛까지 완성했다. 싱싱함이야 말할 게 없으나 크기가 작고 살밥이 없어 아쉽다. 3kg은 되어야 했는데. 사선으로 길게 썰어서 초밥으로 내기로 했다. 언제나처럼 가맛살과 뱃살 일부를 잘라 안주를 만든 후 자는 아내를 식탁으로 불러냈다. 아내와 함께 청주 한 잔으로 새벽의 노고를 녹였다. 싱싱하고 탱글탱글한 회의 식감과 시원한 청주의 술맛이 가장 잘 어울리는 순간이다. 바다낚시를 가야 이런 느낌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깊은 바닷속에서 바로 올라오는 생선을 손질해서 선상에서 먹는 그 맛, 물론 질기긴 하겠지만 그 신선함을 느껴보고 싶다.


  ⑥ 대하 손질도 서너 차례의 경험 덕분에 아주 쉽다. 게다가 10마리밖에 안 되어 금방 끝냈다. 가을에 샀던 흰다리새우보다 싱싱함은 덜하지만 튀김으로 먹을 것이라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흰다리새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에서 차이가 난다. 능숙하게 머리 투구 부분을 떼어내고 뇌와 위 등 내장을 씻은 다음 껍질은 꼬리 쪽 한마디만 남기고 모두 벗겨냈다. 꼬리에 붙어 있는 침을 떼어낸 다음 양쪽에 두 개씩 붙어 있는 지느러미 끝을 칼로 긁어 물을 제거했다. 대나무 꼬챙이를 허리 중간에 가로질러 넣어 긴 창자도 제거했다. 크기만큼이나 내장도 굵다. 마지막 단계, 튀기면서 오그라들지 않도록 데바 칼로 배 쪽에 중간 정도 칼을 넣어 근육을 끊어 길게 폈다. 흔히 ‘노바시’라고 불리는 새우가 바로 이렇게 근육까지 끊어서 길게 만든 상태이다. 09:00가 조금 넘어 재료 손질이 끝났다. 세 시간 반 정도 투자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여섯 시간이 넘게 걸렸던 작업이다.


  재료 준비를 마쳤으니 조금 쉬어도 된다. 어젯밤 잠을 설친 터라서 10:30부터 한 시간 정도 눈을 붙였다. 아내는 청소하느라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주방에서 설거지를 포함하여 오늘 사용할 그릇을 꺼내고 있다. 거실에 카펫도 다시 깔고 정리 중이다. 집에 손님을 초대하는 것은 안사람들에게는 무척 신경이 쓰이는 일임은 틀림이 없다. 내가 직장에 다닐 때는 오롯이 아내 혼자만의 몫이었는데 요즘은 내가 도와주어 그나마 낫단다. 다행이다.


  저녁 메뉴를 종이에 순서대로 적었다. ① 자완무시 ② 백합탕 ③ 굴회 ④ 참돔회, 참돔 초밥 ⑤ 연어회, 연어 초밥 ⑥ 소고기 초밥 ⑦ 사케동 ⑧ 새우튀김 ⑨ 참돔 맑은탕까지 9가지이다. 백합탕과 참돔 맑은탕은 Youtube 동영상을 다시 보면서 레시피를 가다듬어 각각 냉장고와 인덕션 앞에 붙여두었다. 아내는 채소 손질을 거의 마쳤다. 양파를 다듬고 홍고추와 청양고추 썰기, 마늘 다지기, 대파 손질, 무순 세척, 콩나물 손질 등 제법 일손이 많이 가면서도 주부의 섬세한 손길이 필요해 아직은 내가 범접하지 못하는 작업이다.

대접하려고 냉장고에 붙인 메뉴판

14:30, 아내에게 초밥을 만들 쌀을 씻고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다. 불에 쌀을 올리기까지 최소 50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쌀 1kg을 전분이 완전히 제거될 때까지 대여섯 차례 충분하게 씻어서 20분 동안 물기를 빼서 건조한 후 30분 동안 물에 담가 15:30부터 밥을 짓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내가 초밥에 들어갈 밥을 짓는 것도 일류 셰프 수준이다.


나는 참돔 맑은탕을 끓일 육수를 내기 시작했다. 멸치의 머리와 내장을 제거한 다음 프라이팬에 볶아 수분과 비린내를 날리고 다시마, 무, 표고버섯을 함께 넣어 끓였다. 동시에 자완무시, 일본식 계란찜을 만들 육수도 함께 만들기 위해 다시마와 가쓰오부시를 넣어 약하게 끓이기 시작했다. 맑은탕 육수는 팔팔 끓여 건더기를 건지고, 자완무시 육수는 가볍게 끓여 면포로 짰다. 두 가지만 마쳐도 요리가 한결 쉬워질 것이다. 요리의 시작은 뭐니 뭐니 해도 육수를 내는 과정이 가장 번잡하고 또 그 산물이 가장 중요하다. 시간이 벌써 15:30, 집으로 오기로 했던 16:00가 멀지 않았다.  


요리는 ① 자완무시부터 시작했다. 계란 네 개를 풀어 미세한 체로 거르니 걸러진 양은 얼마 되지 않고 제법 많은 양을 버려야 했다. 극강의 부드러움을 얻기 위해 과감하게 버렸다. 소금과 미림, 간장을 넣어 거품이 일어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섞어 그릇에 부었더니 여섯 그릇이 겨우 채워진다. 그런데 그릇을 덮어야 할 알루미늄 포일이 없다. 헉! 그러면 뭘로 밀봉하나? 밀봉 여부가 부드러운 맛을 내는 비결이라고 했는데. 그릇장을 모두 뒤져 실리콘 덮개를 찾아 씌웠다. 작은 것은 억지로 힘을 가해 늘려서 뚜껑을 겨우 덮었다. 하지만 작은 것은 삶는 도중에 모두 벗겨져 버렸다. 게다가 제대로 익지도 않았다. 좌측 인덕션의 화력이 너무 약해 불 조절에 실패한 탓이다. 결국은 맨 처음 나가야 할 음식이 중간에 나가야 했다. 맛과 식감이 나쁘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두 번째 시도에서 이 정도의 성과라면 나름 성공했다고 자평한다.


16:00가 조금 안 되어 친구들 부부가 도착했다. 언제 봐도 반가운 얼굴들이다. 다들 나이가 거꾸로 먹어가는지 날이 갈수록 젊어지는 것 같고 아내들은 더 예뻐졌다. 내가 주방에서 칼을 들고 요리하는 모습이 무척 생경한 모양이다. 심지어 계량 저울이 있는 것을 보고 놀라기까지 한다. 초보 요리사에게는 계량과 계측이 요리 성공 여부를 판가름 짓는 결정적인 요소이다. 나에게는 요리의 기본 상식이 없으니 오로지 레시피에 나온 대로 정확한 양과 정확한 시간 동안 끓이는 것이 요리의 첫 단계라는 사실을 몸소 깨닫고 있다. 모두들 거실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면서 전망이 좋다고 한다. 지금은 공사 중이라서 비교적 멀리까지 보이지만 3년만 지나면 새로 생긴 아파트가 멀리 산이 보이는 우리 집 경관을 가로막을 것이다. 그나마 우리는 도로에 인접해 있어 앞집 부엌에서 요리하는 아주머니와 마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위안이다.


손님들이 구경하는 동안 나는 밥에 초데리를 부어 밥알이 으깨지지 않도록 주걱으로 조심스럽게 자르듯이 섞은 다음 소형 선풍기로 식초의 향을 날렸다. 동시에 ② 백합탕도 끓이기 시작했다. 백합탕은 부재료를 가급적 적게 사용하고, 10분 이내로 끓여야 백합 특유의 맛과 조갯살이 질겨지지 않는다는 조언을 성경처럼 믿고 레시피대로 가볍게 끓였다. 간을 봤더니 만족스럽다. 역시 전문가들의 기술 집약판, 레시피의 승리이다. 자랑스럽게 첫 메뉴를 손님들에게 냈다. 드디어 시작이다. 음식의 맛은 장담할 수 없으나 들어간 재료는 하이 엔드급 오마카세에서 사용하는 수준이라고 둘러댔다. 초데리에 들어간 식초는 ○○식초가 아닌 고급 코하쿠 식초, 와사비 역시 분말이 아닌 가네쿠 505, 회간장은 가쓰오부시를 잔뜩 넣어 직접 만든 수제 등 나만 아는 용어로 열심히 설명했다. 맛에 대한 기대치를 낮춤과 동시에 맛이 없더라도 나의 노고를 참작하여 잘 먹어 달라는 애처로운 부탁의 몸짓이다.


믿었던 자완무시가 완성되지 않아 ③ 참돔 회와 초밥을 먼저 내기로 했다. 아내는 연어 샐러드를 내고 싶어 한다. 기름기가 많아 애피타이저로 먹기는 적절한 메뉴가 아닌데 당장 먹을 음식이 없다면서 자꾸 보채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함께 내기로 했다. 첫 손님 초대라 삐걱거림은 여러 군데에서 불쑥불쑥 나타난다. 냉장고와 인덕션에 메뉴와 레시피를 붙여두었는데도 일의 순서를 정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 아내도 겨를이 없어 초생강과 락교를 내지 않아 한참 후에야 냈다. 참돔회를 자를 때 사선으로 길게 잘라야 하는데 수직으로 잘라 크기가 작다. 그런데도 흰살생선의 대표, 바다의 여왕이라는 참돔은 회와 초밥으로 믿고 낼 수 있는 메뉴이다.

참돔 초밥

④ 연어회와 연어 초밥을 만들어 계속 식탁으로 냈다. 냉장고 안에서 잠자고 있던 케이퍼, 락교, 초생강도 함께 냈다. 케이퍼가 열매가 아닌 꽃봉오리라는 사실도 아는 척하는 데에는 최고라는 생각에 제법 거만하게 말했더니 다들 알고 있다. 연어는 대부분 좋아한다. 특히 한 친구는 결혼식 뷔페에 가면 혼자 연어를 너무 많이 가져와 눈치를 볼 정도라니 아주 좋아하는 모양이다. 다른 친구는 그리 좋아하지 않은데 맛이 좋다면서 잘 먹어준다. 내가 더 고맙다. 네 사람이 식사하는 도중에 나와 아내는 수시로 주방을 오가면서 음식을 냈다. 이런 모습이 불편한지 자꾸 함께 먹자고 권유하는데 이제는 익숙해져야 주인과 손님의 모습이다. 그런데 초밥의 밥, 샤리가 너무 크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통상 12g인데 배가 고플 것 같아 16g이 넘게 쥐었던 것이다. 이것도 실수이다.

연어회

다른 게 더 없냐는 친구의 농담 섞인 질책을 듣고서야 ⑤ 굴회가 생각나 뒤늦게 냈다. 주방 팬트리장에 넣어 둔 터라 눈에 보이지 않아 잊어버린 것이다. 메뉴 순서를 냉장고에 붙여 두었으나 볼 여력이 없다. 변할 수 없는 최고의 어울림, 초고추장과 함께 식탁으로 올렸다. 그런데 실수는 여기서도 빠지지 않고 불쑥 튄다. 레몬즙을 뿌리지 않은 것이다. 훨씬 더 새큼하면서도 굴의 향과 맛을 더해주었을 것인데. 연어회로 배가 부를 즈음에 육사시미로 자주 먹는 우둔을 이용하여 ⑥ 소고기 초밥을 만들었다. 토치로 샤리를 덮은 소고기를 가열하는 모습을 보더니 무척 신기해한다. 약간의 비린 맛과 향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다 내 입맛과 같지 않다. 술은 친구가 가져온 고급 샤도네이 화이트 와인 한 병을 모두 마신 후 우리가 산 저가의 하우스 와인, 1.5리터짜리 샤르도네 화이트 와인을 냈다. 양이 많아서 좋다. 때로는 질보다 양이 우선일 때가 있다. 특히 취한 남자들에게는.


이어진 메뉴는 새우튀김이다. 다들 배가 부르다는데 친구 아내가 좋아한단다. 직접 손질한 새우를 보여주니 크기에 모두 놀란다. 새우의 맛과 식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튀김옷을 최대한 얇게 입히고, 기름 온도를 180℃까지 올려 두 번 튀겨냈더니 맛과 식감이 뛰어나다. 아내는 몇 년 전 소래포구에서 먹음직스럽게 보여 두툼한 새우튀김을 사서 베어 문 순간 나무젓가락보다 가는 새우가 뽑혀 나왔던 황당한 경험을 오늘도 이야기한다. 돌아오는 길만 아니었으면 가서 항의할 참이었다니 생각할수록 억울한 모양이다. 다들 배가 부르다지만 ⑧ 사케동은 맛을 봐야 한다면서 남은 연어회와 야채, 양파를 올려 데리야끼 소스를 더해서 냈다. 밥의 양은 아주 조금만 했다. 내가 만든 연어 요리 중에서 선호도가 가장 높은 메뉴였기에 자신 있게 만들었는데 다들 배가 불러서 그런지 조금씩만 먹는다. 동시에 ⑨ 참돔 맑은탕을 끓였다. 그런데 이 즈음에서 술에 취해 소금을 찾다가 잊어버려 못 넣는 바람에 싱건탕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맛있다고 먹어주는 친구를 보니 다 함께 취한 모양이다. 하기야 처음에 750ml 화이트 와인 한 병, 그리고 집에 있던 1.5리터짜리 화이트 와인 한 병, 청주 한 병 반, 그리고 소주 한 병 반을 마셨으니 취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자연산 대하 튀김, 튀김옷을 얇게 묻혀 튀기면 새우의 참맛을 느낄 수 있어요.

만찬 내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즐겁고 행복하게 보냈다. 우리 집에서 아주 오랜만에 이렇게 호탕한 웃음소리가 난다. 다들 아이들 근황이 가장 궁금한지 물어서, 혹은 묻지 않더라도 자녀 이야기가 스스럼없이 먼저 꺼낸다. 더불어 다들 퇴직 전후라서 앞으로 평생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찾는 중이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당장 눈앞의 직장보다는 평생직장을 마음에 두고 있다. 나는 마음 가는 대로 살기 위해 요리와 다양한 취미활동을 배우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설명했다.


22:30, 여섯 시간의 만찬이 끝나고 남은 연어회 두 덩이, 그리고 어니언 소스를 그릇에 조금씩 담아 싸서 보냈다. 아내들은 설거지라도 도와야 한다며 그냥 가지 않으려고 주방으로 밀고 들어온다. 우리에게는 막강한 도우미, 식기 세척기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내가 내보냈다. 지하 1층에서 모두 떠나보내고 아내와 함께 올라와 마무리했다. 걱정을 안고 시작했으나 끝나고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미숙했으나 그런 부족함을 모두 이해해 줄 친구들이기에, 그리고 요리사로서는 형편없는 솜씨였으나 불평하지 않고 맛있게 먹어준 친구들 덕분에 내가 가장 즐거웠다. 가장 긴 여섯 시간의 만찬이었는데 이런 친구들 부부 덕분에 가장 즐겁고 행복하게 보낸 것이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애정과 웃음으로 가득 찬, 그리고 나에게 큰 기쁨과 만족감을 안겨준 여섯 시간이었다.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겠다는 나만의 착각에 빠지니 혼자만의 미소가 저절로, 아주 자연스럽게 지어진다. 그때는 또 다른 아쉬운 부분이 생기겠지?


이렇게 나의 홈마카세, 친구들을 불러 내가 준비한 메뉴로 접대한 집들이는 첫 시도였음에도 제법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다음에는 대방어로 2차 시도를 해볼까나? 아직 보여주지 못한 고등어 초절임, 시메사바 등 내가 먼저 먹고 싶은 생선 요리가 아주 많이 떠오른다.



* 당일 사진 찍을 겨를이 없어 과거 사진을 몇 장 올렸습니다.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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