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1일부터 시행
아래 내용은 미주 한국일보 12월 27일자 "오피니언" 섹션에 필자가 투고한 내용입니다. 원본 링크
2021년에 새로 바뀌는 것 중에 하나가 버지니아에서는 이제 서류 미비자(소위 "불법체류자" 혹은 "불체자")도 운전면허를 발급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합법적인 체류 신분을 증명해야만 운전면허를 받을 수 있었는데, 이번에 새로 도입된 운전면허 카드(Driver’s Privilege Card)는 체류 신분이 없더라도 일정한 자격 요건을 갖추면, 운전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미국에서는 운전을 하지 못하면 생활에 큰 지장이 있거나 직장을 구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그동안 버지니아에 거주하는 서류 미비자들은 편법으로 타 주에서 면허를 취득하거나 심지어 단속의 위험을 무릅쓰고 무면허 운전을 강행해 오기도 했다. 그러나 타 주에서도 면허를 취득했더라도 버지니아에서 거주하는 경우 60일 내에 버지니아 면허증으로 교체하지 않으면 무면허 운전으로 기소될 수 있었기에 완전한 해결 방법은 아니었다.
주 경찰관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단속 시 운전자가 타 주의 면허증을 제시하는 경우, 해당 운전자가 실제로 버지니아 거주민인지를 확인하여 60일 이상 거주 사실이 있다면 무면허 운전으로 기소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특히 차량 소유주/운전자가 버지니아 주소로 차량을 등록했다면, 해당 운전자는 버지니아 거주민으로 간주된다. 이는 심지어 한국에서 발급받은 1년짜리 임시 국제 운전 면허증을 소지한 방문객도 마찬가지다. 미국 체류기간이 1년 미만이라고 하더라도, 본인 명의의 차량을 운전한다면 유효한 국제 운전면허증을 소지했더라도 무면허 운전으로 기소될 수 있다.
참고로 버지니아에서 무면허 운전은 2급 경범죄로 처벌된다. 이는 가장 심각한 경범죄인 음주운전 및 난폭운전 등의 1급 경범죄의 바로 다음 단계로, 최대 6개월 이하의 징역 및 1천 불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으며, 이러한 범죄 기록은 추후 체류 신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기소 자체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이번에 새로 도입되는 운전면허 카드 발급 기준은 (1) 최근 12개월 동안 버지니아에서 경제 활동을 통해 소득을 창출했거나 공제를 받은 자, 혹은 버지니아 세금 보고 시에 피 부양자로 등록된 자이며 동시에 (2) 버지니아 차량 보험 요건을 충족시켰거나, 무보험 차량 수수료를 지불한 자에게 허가된다. 물론 그 외 일반적인 면허 취득 요건도 갖춰야 한다. 쉽게 말하면 합법 체류 증명 요건만 버지니아 세금 보고 요건으로 대체된 것이고, 나머지는 일반 운전면허 취득 기준과 동일하다. 버지니아의 경우에는 대한민국 정부와 상호 운전면허 인정 조약이 체결되어 있어서, 유효한 한국 운전면허증이 있으면 필기 및 실기 시험 요건이 면제되고 있다.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한국 운전면허증이 있는 서류 미비자들도 체류 신분 외에 기타 조건만 맞는다면 한국 운전면허증을 운전면허 카드로 교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필자를 버지니아에서 형사/교통범죄 사건을 담당하면서 무면허 운전 및 면허정지 위반 사건에 휘말리는 수많은 서류 미비자 의뢰인들을 대리했었다. 이들은 대부분 모국에서 보다 더 나은 인생을 위해 미국을 왔고, 체류 신분이 없어서 면허를 발급받을 수 없었지만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무면허로 운전을 해야만 했던 사람들이다. 무면허 운전으로 유죄가 확정되면 최대 90일까지 면허가 정지되는데, 만약 면허 정지 기간에 다시 운전을 하다가 적발되면 면허 정지 위반죄라는 1급 경범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면허 취득 사실이 없어도 면허가 정지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다행히도 2021년 1월 1일부터 효력이 발생되는 새로운 법안 덕분에 서류 미비자들도 버지니아 내에서 합법적으로 운전면허를 취득하여 생활 및 경제 활동이 가능 해졌다. 코로나로 특히 어려운 시기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운전면허 카드의 혜택을 받아 경제가 살아나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