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상담의 함정
개업 변호사가 된 이후에는 기존의 소속 변호사로서 일할 때보다 많은 업무방식의 차이가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영업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단순히 변호사로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업맨(혹은 세일즈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왠지 세일즈 하면 집집마다 문을 두들기면서 "이 물건/서비스 한 번 써보세요"하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어렸을 적 기억으로는 사람들이 신문, 종교, 정수기, 생활용품 등 참 다양한 물건을 팔기 위해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들겼던 것 같다. (나는 기특하게도 부모님께서 당부하신 대로 문을 열어주지 않은 채, 미리 연습한 "어른 안 계셔서 다음에 오세요"라는 대답을 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는 그 반대의 입장이 되었다. 내가 가가호호 방문을 두드리며 의뢰인을 구하는 건 아니지만 주변인들에게 적극적으로 내가 개업 변호사라는 점을 알림으로써 본인 혹은 주변에 변호사가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소개해달라는 식의 영업을 하는 셈이다. 그리고 의외로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크고 작은 법률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다 보니 종종 잠재적인 고객과 전화통화(혹은 이메일 또는 직접 상담)를 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들도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점점 익숙해지는 것 같다. 초반에는 나 스스로조차 내가 무엇을 팔아야 하는지 잘 모르고 일단 내가 가진 경험과 지식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거리낌 없이 첫 대면하는 자리에에서 무료로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정보와 내 전문 의견을 주곤 했었다. 그런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면 그 짧은 시간이라도 내가 상대방에게 제공하는 정보는 그 사람들이 직면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즉, 일단 내가 30분 혹은 1시간이라도 시간을 내서 그 사람들의 답변을 주면,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현재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대한 많은 이해와 더불어 이후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그림이 명확해진다는 것이다. 재밌는 건, 이러한 일반적인 답변을 주는 경우에 딱히 내가 치밀한 사전조사나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미 로스쿨과 실무를 통해서 아는, 당연한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서스름 없이 이러한 답변들을 잠재적 의뢰인들한테 해줬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사람들은 이미 무료 상담을 통해서 대부분 필요한 것을 다 얻은 셈이다. 그러니 딱히 나를 고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나는 산 정상에서 목마른 사람한테 생수를 파는 일을 하는데, 사람들에게 생수를 사기 전 생수 한 병을 팔기 위해 물 반 병을 그냥 공짜로 줘버린 셈이다. 이미 갈증을 해소한 사람이 나머지 생수 반 병을 사기 위해 돈을 지불할까? 사실 내가 알려줘야 하는 건 돈을 지불하면 온전한 생수 한 병을 얻을 수 있고 거기에는 어떤 사기나 속임수가 없다는 것만 알려주면 된다. 물론 가격이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고, 생수 외에 다른 음료를 파는 상인이 주변에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수는 있다.
생수 장사와 변호사의 차이점이라면 생수 장수는 생수를 팔지만, 변호사는 시간을 판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시간당 보수를 받는다) 거기에 함정이 있었던 것이다. 대개 의뢰인이 직면하고 있는 물음표의 상당 부분은 변호사의 업무 중 너무 기초적인 지식만으로도 해소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왜냐면 그러기 위해서는 수년간의 공부와 실무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변호사가 특정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 데는 10초도 안 걸릴 수 있지만, 그 10초의 답변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10년에 걸친 공부와 실무경험이 필요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이 점을 간과한다. 마치 프로 야구 선수가 타석에 서는 그 짧은 몇 분을 위해서 20년 혹은 30년 동안 매일 같이 피나는 운동을 했다는 점을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답은 자명하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법적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물론 친한 친구나 친지·가족들이 묻는다면 돈을 떠나서 친절하게 답변해줄 수 있다. 돈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 스스로의 가치를 유지하고 의뢰인을 지속적으로 수임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쉬운 질문이라도 쉬이 답변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물론 무료법률 자원봉사를 나가는 경우처럼 예외가 있긴 하다) 상인이 물건을 파려고 절박한 모습을 보이면 구매자는 물건에 하자가 있는지는 아닌지 의심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그래 왔던 것이다.
글: 김정균 미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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