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공략
If you give a defense attorney an inch, s/he will take a mile.
위 말은 형사 변호사의 역할을 간단하게 나타내는 말인 것 같다. 직역하면, "형사 변호사에게 1인치를 허용하면 그(녀)는 1마일을 가져갈 것이다"라는 것이다.
즉, 우리 업무의 본질은 검사의 증거에 취약점을 찾아내서 의뢰인에게 가장 유리한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이득을 취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검사의 입장이 되어서 이 사건을 입증하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하며 그중 어느 부분이 가장 약한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가. 쇠사슬은 가장 약간 고리만큼 강하다고 했던가(A chain is only as strong as the weakest link) 검사가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범죄의 모든 구성요소를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beyond reasonable doubt)로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그중 가장 약한 고리를 찾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리고 그 취약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의뢰인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한편으로 항상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 내가 주로 대리하는 사람들은 변호사를 선임할 능력이 없는, 사회에서 버림받은 가난한 소외계층이기 때문이다. 반대 측에는 정부라는 거대한 조직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를 위해서라곤 하지만 그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보는 관점마다 다를 수 있다. 물론 우리는 당장 의뢰인이 감옥 가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철학적 문제는 항상 뒷전이다.
이 일을 하면서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좋은 방향으로도 혹은 (약간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예전에는 나는 (특히 한국에서) 순종적이고 착한 모범생이었다. 사회 관습과 권위에 복종하는 그런 전형적인 모범생 말이다. 미국 유학생활도 비슷했다. 미국이란 사회에 갓 새로 발을 들인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응당 그러했듯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존중하고, 권위에 복종했다. 그게 옳은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스쿨을 거치고 법원에서 일하며 사법 체계의 일부가 되어보기도 하며, 나중에는 피고인들을 대리하는 형사 사건 전담 변호사가 되다 보니 세상을 보는 관점과 성격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더 이상 권위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단순히 나보다 연배가 높다고, 제복을 입었다고, 유명하다고 해서 그 사람의 말을 따르는 경우가 적어졌다. 아마도 권위의 대명사인 경찰을 상대하다 보니 그런 경향도 있는 것 같다. 물론 99%의 경찰들은 매일 현장에서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목숨을 걸고 일을 한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인만큼 종종 실수를 할 수도 있고, 감정이 이성을 앞서가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찰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즉, "Policing the Police"라고 할 수 있다. (police는 동사로 쓰이면 감시하다 혹은 청소하다의 의미가 있다)
이와 더불어 예전부터 어려운 부탁을 하는데 덜 주저하게 되었다. 나는 비교적 소심한 편이라 내 부탁이 상대방에게 거절을 당할까 두려워 어떤 부탁을 주저하고 결국 기회를 놓친 적이 인생에서 많았었다. 그런데 피고인들을 대리하면서 경찰, 검사, 심지어는 판사에게도 무리한 요청을 종종하게 되는데 실제로 이러한 요청이 받아들여진 경우가 꽤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하다 보니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상당 부분 떨칠 수 있게 되었고, 요즘은 비교적 열린 마음으로 어려운 요청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실제로 거절을 당하더라도 금방 이를 떨쳐낼 수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사건을 진행하면서 항상 조금이라도 틈새가 보인다 싶으면 파고들어 최선의 결과를 얻어내기 위하여 거리낌 없이 요청을 하는 편이다. 말 그대로 Given an inch, we take a mile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