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지 이제 거의 20년이 되었다. 중간에 학업으로 쉰 기간을 감안하면 구력이 20년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15년은 되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전국 동호인 대회 우승도 했었는데, 미국에 오니 세상을 넓고 고수는 많다는 것을 느꼈다. 전미 테니스 협회(USTA) 대회에 참가해본 결과 나는 NTRP 4.5 정도의 실력을 가진 것 같다. 그런데 같은 4.5라도 실력이 차이가 너무 커서 어떤 사람은 서브 앤 발리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준 선수급의 실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데 미국에서 5.0이라고 하면 웬만한 경우 주니어 시절 선수 경험이 있던 사람들이라, 한국에서는 지도자급이나 슈퍼급이라고 하면 맞을 것 같다.
한국과 미국 동호인 테니스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한국은 복식 위주의 클레이코트 시합이면, 미국은 단식 위주의 하드코트 시합이라는 점이다. 한국의 경우는 대개 우승자/비우승자/지도자 부 혹은 청년부/장년부/베테랑부 등으로 나뉘는데, 미국은 대부분 그냥 NTRP 점수로만 나눠진다. 물론 나이나 기존 우승 여부가 NTRP 점수에 반영이 되긴 한다.
또 한 가지 차이점은 한국의 경우 비교적 선수 출신과 비 선수 출신의 경계가 뚜렷한 편이다. 아무래도 한국 엘리트 스포츠 육성방식 때문인 것 같은데, 한국은 어린 나이에 프로 선수가 되기로 마음먹으면 학업을 거의 포기한 채 하루 종일 훈련에만 매진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선출의 경계가 명확한다. 반면 미국은 그 경계가 좀 모호한 편이다. 미국은 대부분 어렸을 때 다양한 스포츠를 접하게 되고, 흥미 혹은 관심이 있는 스포츠로 점차 집중하게 되는 시스템이다. 그 과정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프로로 전향할 수도 있다. 물론 절대다수는 취미 수준에서 그치지만, 주변에서 정상적으로 직장 다니고 전문직으로 일하는 사람들 보면 의외로 어렸을 적에 특정 스포츠의 준 선수급의 훈련을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선출이라고 하기도 뭐하고 일반 동호인이라고도 하기 뭐한 사람들이다. 그럼 대회에서 이 사람들을 어떻게 분류하느냐? 순전히 경기 결과에 따른 NTRP 점수로만 분류한다. 만약 대회를 참가해본 경험이 없다면 간략한 설문지나 표를 통해 대략적인 본인의 점수를 설정한다. 이후 대회 경기 결과에 따라 컴퓨터 산출을 통해 자동으로 해당 점수가 상승하거나 내려가는 식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고등학교 때까지 선수 생활을 했는데, 테니스를 쉰 지 너무 오래돼서 자기는 4.0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4.0만 참가하는 대회를 갔는데, 만나는 상대마다 6-0, 6-1 등으로 너무 쉽게 이겼다. 그러면 나중에 컴퓨터로 자동으로 이 선수를 4.5로 올리게 된다. 반대로 본인이 4.5라고 생각해서 4.5 대회를 참고했는데, 경기마다 너무 쉽게 진다면 컴퓨터는 이 사람의 점수를 4.0으로 하향 조정할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 웬만한 사람들은 자기 실력이 대략 어느 정도 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4.5라도 20대 젊은 비선수 출신 동호인이 있을 수도 있고, 60대 세계 랭커 출신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순전히 경기 기록만으로 산출되는 점수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선수가 어떻게 플레이하는지도 전혀 상관이 없다. (의외로 정석 스윙이 아닌데도 잘 치는 사람이 꽤 많다)
한국 시합은 코트 사정상 대부분 1세트 경기이고, 그 마저도 노애드 혹은 원 듀스 노애드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타이브레이크도 대부분 5:5 상황에서 한다. 반면 미국은 거의 모든 경기가 3세트 경기(두세를 따내야 승리)를 하고, 모든 경기는 듀스 게임이며 타이브레이크는 6:6에서만 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대부분의 경기가 단식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체력 소모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지 미국 사람들은 서브와 스트로크가 좋은 사람들이 많다. 서브 폼은 제각각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기 중에 종종 플랫서브로 에이스를 따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심지어 아직 백핸드 스윙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수준급의 서비스와 포핸드를 칠 수 있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반면, 복식에 특화된 한국 사람들처럼 발리라든지 로브 같은 기술이 서툰 경우를 많이 보았다. 어떤 경우에는 대학교 선수 출신을 했는데, 발리를 제대로 못하는 경우도 봤다. (물론 서브와 스트로크는 웬만한 한국 현역 선수 못지않았다)
양국의 동호인 체계 모두 장단점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한국 동호인 대회가 더 재밌다고 생각한다. 워낙 참가자들도 많고 다들 열성적이라 그런지 말다툼도 하고 시비도 자주 생기는데, 미국은 오히려 묵묵하게 공만 치는 경우가 많아서 가끔은 좀 답답한 느낌도 있다. 한국 야구장과 미국 야구장의 차이점과 비슷한 것 같다. 한국 야구장은 단체 응원, 치어리더, 상대 선수 조롱(?) 등 다양한 구경거리와 재미가 있는데, 미국은 그냥 아는 사람들 하고만 삼삼오오 모여서 맥주 한잔하며 그냥 조용히 구경하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