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ign Influence 적용 기준
미국 연방정부의 일부 포지션은 국가 안보와 관련된 기밀을 다루기 때문에 Security Clearance (기밀정보 취급 인가)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이 Security Clearance에도 등급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Public Trust, Confidential, Secret, Top Secret (or TS/SCI)이 존재한다. 현재 다양한 연방 정부직에 지원서를 보내고 있는 필자는, "과연 내가 Top Secert을 받을 자격이 될까?"라는 궁금증이 생겨서 실제로 Security Clearance를 부여/거부하는 기준이 무엇인가를 조사하게 됐다.
Security Clearance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일단 잡 오퍼(job offer)를 받아야 한다. 연방정부 공무원 직이든 정부를 상대로 일하는 하청업체(contractor) 일이든 Security Clearance가 필요한 업무인 경우, 조건부 오퍼(conditional offer)를 받게 되는데, 이 조건 중에 하나가 Security Clearance를 부여받는 것이다.
이 Security Clearance 시작 절차는 보안 등급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최근 5~10년간의 과거를 조사하는 신상 조사와 필요한 경우 심층 인터뷰와 거짓말 탐지기(polygraph)까지 동원되는 자세하고 철저한 신원 조사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신원 조사를 하는 이유는 한 개인에게 Security Clearance를 인가하는 데 있어서 수반되는 모든 위험을 미리 진단하고 이를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위험은 총 13가지 항목(guidelines)으로 분류되는데 그 항목을 나열하면,
Guideline A: 미국에 대한 충성(Allegiance to the United States)
Guideline B: 외국의 영향(Foreign Influence)
Guideline C: 외국 선호도(Foreign Preference)
Guideline D: 성적 품위(Sexual Behavior)
Guideline E: 사적 행동(Personal Conduct)
Guideline F: 금융적 고려사항(Financial Considerations)
Guideline G: 음주 습관(Alcohol Consumption)
Guideline H: 약물 사용 및 남용(Drug Invovlement and Substance Abuse)
Guideline I: 심리학적 상태(Psychological Conditions)
Guideline J: 범죄적 행동(Criminal Conduct)
Guideline K: 보안정보 취급(Handling Protected Information)
Guideline L: 외부 활동(Outside Activities)
Guideline M: IT기술 활용(Use of Information Technology)
으로 나눌 수 있다.
사실 이 중에서 필자와 같은 후천적 시민권자들이 가장 우려할만한 항목은 바로 Guideline B: 외국의 영향(Foreign Influence)이다. 미 국방부에서 제공하는 가이드라인에는(요약해서), "외국과의 접촉 및 사업, 금융, 자산 등의 이해관계로 인해 미국에 대한 충성심이 분열될 경우, 이는 국가적 안보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며 "지원자의 해외 접촉 및 외국과의 이해관계는 해당 국가의 지정학적 위치, 미국 기밀 유출에 대한 관심과 적극성, 테러의 위협 등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적혀 있다.
더 나아가, 해당 항목에 따라 지원자의 Security Clearance를 거부할 수 있는 사유(disqualifying conditions)를 나열하고 있다. 이 거부 사유에는 주로(필자의 요약 및 의역),
외국국적의 가족/친척, 사업 혹은 업무상 동업자, 친구, 기타 외국인과의 잦은 접촉 및 연락
해외에 보유한 부동산, 사업, 금융 자산 등
기타 기밀 유출을 압박 혹은 강요받게 될만한 상황에 처일 가능성
등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더라도 아래와 같이 이를 경감할 수 있는 사유(mitigating conditions)가 있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마찬가지로 필자의 요약 및 의역):
외국과의 접촉 정도가 낮아, 미국의 안보와 외국의 이해관계 사이의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경우
미국에 대한 높은 충성심과 오랜 인연으로 인해 외국과의 이해관계의 갈등이 생기더라도 미국의 이익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
해외에 보유한 재산이나 사업, 금융 자산의 규모가 크지 않아, 이를 바탕으로 지원자에게 영향을 행사하거나 압박할 가능성이 낮은 경우.
물론 이러한 기준들은 일종의 가이드라인이기 때문에, 실제의 사실 관계가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행정법 판례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그래서 필자는 최근 3년 간 Security Clearance 판례 중에서 Foreign Influence가 주된 쟁점이 되었던 사건들을 살펴봤는데, 그중에 특히 한국과 관련된 사건은 전수 조사를 통해 보다 정확한 결과를 얻고자 했다. 필자가 살펴본 데이터베이스는 미 국방부 행정법원(DOHA, Defense Office of Hearings and Appeals)에서 내놓은 ISCR (Industrial Security Clearance Review) 판례들이다. 이 사건들은 민간 분야에 일하면서 Security Clearance를 얻으려는 사람들이 불허 결과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진행한 결과이다.
최근 3년 간 공개된 행정소송 판례의 숫자는 약 1,900건이 넘었는데(2020년 311건, 2020년, 447건, 2019년 1163 건). 이 중에서 주목할만한 최신 Foreign Influence 판례는 약 20건, 최근 3년간 한국의 Foreign Influence 관련된 유의미한 논의가 포함된 판례는 약 5건 정도였다. 그중 몇 가지 실제 사례를 보면,
사례 1) 선천적 미국 시민권자, 24세 미혼 여성, 유년기 한국에서 10년 생활, 이후 미국에서 대학 졸업, 부모가 모두 한국 국적이면서 한국 거주, 부모와의 매일 문자로 연락, 친구가 한국 정부에서 인턴으로 근무.
>> 부모와의 잦은 연락과 한국인 친구의 존재가 Foreign Influence의 위험이 있지만, 선천적 시민권자이며 미국에서 고등교육을 마친 뒤 현지에 직장을 잡았기 때문에, 추후에 갈등이 생기더라도 미국의 안보를 위한 쪽으로 해결할 가능성이 높음. Security Clearance 허가.
사례 2) 선천적 복수 시민권자 남성, 15세에 한국 국적 포기, 이후 미국에서 학부 및 대학원 졸업, 한국 국적 배우자(영주권 소유), 한국에 약 3억 가치의 아파트 소유, 한국에 80세 조모 거주, 한국 국적 지인과 매일 문자로 연락.
>> 한국에 있는 부동산 자산과 한국 국적의 아내, 지인들과 매일 문자로 연락한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깊은 연관성 등 경감 사유를 제시하지 못함. Security Clearance 거부.
사례 3) 후천적 시민권자 47세 남성, 대만에서 출생 후 학부/석박사, 대만 군대 의무복무, 이후 박사 후 연구를 위해 미국으로 이민, 45세에 미국 시민권 획득, 대만에서 소유한 1억 5천 정도의 부동산은 가족에게 처분, 미국에 소유한 부동산 자산은 약 5억 정도, 부모는 모두 대만 국적에 대만 거주.
>> 대만에 있는 부모나 가족과의 관계가 Foreign Influence의 위험 요소가 될 수 있으나, 연락의 횟수가 한 달에 한 번 정도로 제한적이며, 대만을 마지막으로 방문한 지 10년이 넘었고, 대만 국적을 포기했으며, 미국에 상당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경감 사유가 충분함. Security Clearance 허가.
사례 4) 후천적 시민권자 32세 여성, 중국 출생, 한국인 출신 후천적 시민권자 배우자, 부모는 모두 중국 국적이며 중국 거주, 부모와는 2~3주에 한 번 연락, 현재 미국으로 부모 초청 이민 절차 진행 중.
>> 중국 정부는 그동안 가족 관계를 활용한 기밀 유출 시도를 한 전력이 있고, 지원자의 가족과의 잦은 접촉 및 현재 이민 비자를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감안하여 Foreign Influence의 위험이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경감 사유가 충분하지 않음. Security Clearance 거부.
이러한 예시와 다른 판례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봤을 때, 필자가 생각하기에 Foreign Influence의 실제 적용 기준에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1. Foreign Influence가 염려되는 해당 국가와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일단 중국, 이란, 러시아 등 기술/기밀 유출의 위험성이 높은 국가와 관련된 경우, 아무래도 더 많은 경감 사유가 필요하다. 재밌는 점은 한국과 미국이 동맹 관계를 맺고는 있지만, 한국은 미국과 국방산업에 있어서는 협력자이면서도 동시에 경쟁자이고 예전에 한국계 산업스파이가 미국의 기밀 유출을 시도한 전력이 있어서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이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
2. 외국 국적의 가족이나 친지와의 연락은 그 횟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결국 연락이 잦으면 잦을수록, 그 관계가 친밀하다는 뜻이며, 그만큼 가족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기밀을 누설하거나 심지어는 가족을 협박하여 기밀을 유출하도록 강요받을 경우 거기에 굴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하는 것 같다.
3. 해외의 자산은 없거나 적으면 적을수록 좋으며, 미국의 자산이 많고 거주 기간이 길면 길수록 좋다. 결국 미국을 상대로 등을 돌렸을 때 잃을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에 정착하지 오래되어 뿌리가 깊으면 그만큼 흔들릴 가능성도 적다.
4. 본인이나 가족 중에 미군 복무 경험이 있거나, 미국에서 특별한 기술이나 커리어를 쌓은 경우 유리하다. 아무래도 미국은 군 출신을 우대하다 보니 앞서 언급한 위험 요소가 있더라도, 이를 상당 부분 경감시킬 수 있는 것이 군 경험이다. 더불어 지원자가 뛰어난 박사급 인재라든지, 특별한 기술(예: 비행 조종사 경력)이 있으면 그만큼 미국의 국익에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여 허가 기준이 조금 더 관대 해지는 것 같다.
5. 마지막으로, 본인에게 유리한 사실 관계를 구체적으로 어떤 경감 사유에 적용되는지 행정 판사가 납득할 수 있도록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필자가 살펴본 판례들의 절대 대다수는 지원자가 변호인 없이 행정 소송에 참여한 경우이다. 그러나 상대방 측에서는 언제나 정부 소속 변호사가 있었다. 같은 사실 관계를 제시하더라도 그 사실 관계가 정확하게 법적 기준의 어디를 충족시키는지를 효과적으로 주장하기 위해서는 적용 법에 대한 법적 논리와 지식이 필수적인데, 나 홀로 소송의 경우에는 이를 알기가 쉽지 않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관계의 존재 여부겠지만, 서로 상반되는 사실 관계가 서로 비등할 경우에는 이런 제시하는 방법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주의: 이 포스팅은 법적 조언이 아니며, 위 내용에 따라 행동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책임은 독자에게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질문이나 답글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단, 법률 상담은 유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