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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Sep 01. 2021

언론중재법 개정에 관하여

언론사는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준비하라

"Democracy Dies in Darkness" 필자가 구독하고 있는 워싱턴포스트지의 슬로건이다. 나름대로 해석하자면, 민주주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빛(즉, 정보의 공유 혹은 표현의 자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언론중재법 개정에 대해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데, 필자는 그 법안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취지와 파장에 더 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말이 많은 징벌적 손해배상. 정확히 말하면 미국에서 성문법(statute)으로 언론사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명시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판례를 통해 도출되는 일반법(common law)인 각 주의 불법행위법(torts)에 따라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 유포는 민사상 불법행위의 한 종류이기 때문에, 언론사를 대상으로 한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있다. 다만, 상해 사건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의 상한선을 명시하는 성문법(tort reform acts)은 있다.


미국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과 그 금액은 원고의 자유다. 맥도널드에서 뜨거운 커피로 화상을 입었다고 2백만 달러를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청구하는 것은 원고의 자유지만, 실제로 그 배상액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는 전적으로 판사나 배심원에게 달려 있다. 미국에서 실무를 해보니, 일단 배상액은 크게 부르고 보는 것이 좋다. 그래야 피고가 겁을 먹고 사건을 진정성 있게 받아들이거나 혹은 합의 과정을 염두하여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를 위해 시작 금액을 높게 부르는 것뿐이다. 물론, 피고 측 변호인도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금액에 큰 의미를 두진 않는다. 어차피 미국 민사 소송의 97%는 공판(trial) 전에 합의(settlement)로 종결되기 때문에 판사나 배심원이 배상액을 결정할 일도 거의 없고, 실제로 천문학적인 금액을 1심 판사나 배심원이 결정하더라도 2심에서 금액이 대폭 삭감될 가능성이 크다.


과연, 한국은 어떨까? 필자는 한국 변호사가 아니기 때문에 한국의 소송 현실에 대해서 말하긴 어렵지만, 미국보다는 소송이 끝까지 가는 경우가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미국보다 법률 비용이 저렴하기도 하고, 일단 소송을 가면 이기든 지든 판결문을 보고 싶어 하는 분위기라고 들었다. 게다가 항소나 상고도 미국보다 훨씬 빈번하다고 하니 결국은 판사가 배상액을 결정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러면 소송을 당하는 언론사 입장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인한 두려움과 불확실성이 더 크고, 일단 소송을 당하면 그 기간도 길어지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큰 부담을 안게 되지 않을까? 즉, 이러한 법안이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 언론사의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칠링 이펙트(chilling effect)가 생길 것이고, 그것이 바로 여당이 원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고의·중과실 추정조항. 징벌적 손해배상과 더불어 언론사에게 싸늘한 칠링 이펙트를 선사하기 위한 핵심 중에 하나다. 즉, 형사법의 개념으로 비유를 하자면, "무죄추정 따위는 없고, 기소가 되면 일단 무죄 입증의 부담은 피고인에게 있다"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소를 소송으로, 피고인을 언론사로 치환하면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되는 것이다. 즉, 원고가 언론을 상대로 소위 고의·중과실에 해당하는 사실 관계를 주장했을 때, 이를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면 추정에 의해 주장이 사실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 추정의 근거는 "보복적, 충분한 검증절차, 회복하기 어려운" 등의 애매모호한 표현이기 때문에, 사실상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것이다.


이는 미국과 정반대이다. 미국의 경우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 유포의 경우 원고가 전적으로 입증 부담을 가지며, 그 입증의 기준도 피고에게 실질적 악의(actual malice)가 있었다는 점을 "분명하고 납득할만한 증거(clear and convincing evidence)"로 입증해야 한다. 참고로 이 "분명하고 납득할만한 증거"는 미국법의 입증 기준 중에서 형사법에서 쓰이는 가장 높은 기준인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beyond reasonble doubt)" 다음으로 높은 입증 기준으로, 일반 민사에 쓰이는, "증거 우위의 증명(preponderance of evidence)"보다 높은 수준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양육권을 박탈할 경우, "분명하고 납득할만한 증거"수준의 입증이 필요하다. 즉, 미국에서는 원고가 실질적 악의와 높은 입증 부담이라는 두 가지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하는데, 언론중재법 개정안에서는 이를 치워버리고 오히려 하이패스를 만들어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당이 언론중재법을 개정하려는 표면적인 이유는 가짜 뉴스, 허위 뉴스를 지양하고 이를 배포하는 언론사를 처벌할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공정한 뉴스로 언론의 신뢰도를 제고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당이 생각하는 가짜 뉴스와 허위 뉴스의 기준이 실질적으로는 "여당이나 정부에 비판적인 뉴스"나 다름없다. 민변 출신의 변호사 대통령과 자유·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진보적" 국회의원들이 대다수인 집권 여당에서 자신들의 정권 유지에 불리하다고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것을 보니 세상은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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