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의 테니스 동호인 문화의 차이에 관하여
한국에서 테니스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테니스 코리아"라는 잡지를 접해봤을 것이다. 필자는 중학교 시절부터 부모님의 권유로 테니스를 시작했는데, 열성적으로 테니스를 즐기셨던 부모님 덕분에 집에는 항상 테니스 코리아가 매달 배달됐고 테니스 코리아에서 제공하는 스트로크 별 단행본이 언제나 거실 소파에 놓여 있었다. 지금에야 유튜브로 언제 어디에서나 테니스 동영상과 강의를 볼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테니스 코리아와 단행본에 실린 프로 선수들의 스냅사진과 일러스트가 나의 유튜브였다.
세월이 지나 미국으로 이민 온 뒤 9년이 지나고, 테니스 코리아는 어느새 내 기억 저편 어딘가로 사라졌었다. 그러던 어느 날 테니스 코리아의 안진영 기자님께서 내가 몇 년 전에 네이버 블로그에 적었던 한국과 미국의 동호인 문화에 대한 글과 미국의 동호인 테니스 레벨인 NTRP에 관한 글 보시고 인터뷰 요청을 해주셔서 흔쾌히 허락했다. 한국과 미국 양국에서 각각 거의 10년씩 테니스 동호인으로 활용했으니, 두 나라의 동호인 문화에 대해서 할 말이 많았다.
결국 여러 번의 질문과 답변, 최종 수정 등을 거쳐서 이번 2021년 9월 호 테니스 코리아에 관련 기사(가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아래는 테니스 코리아에 게재된 내용을 독자의 편의를 위해서 타이핑한 것이다. 잡지에 소개된 내용의 원본을 보려면 링크(1쪽, 2쪽)를 클릭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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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균 변호사는 테니스의 매력에 대해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으며 몰입도가 높다. 경기 후에는 항상 부족한 부분을 생각하게 되는데 어떤 점을 더 연습하고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나아질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더 나은 실력을 위해 노력하고 이를 달성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이 매우 크다. 무엇보다 게임에 들어가면 모든 것을 잊고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스트레스 해소와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라고 말한다.
미국은 일반적으로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많고 동호인이 아니더라도 팬으로서 열성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더불어 테니스의 인기도 높은 편인데 코트와 교육 환경이 좋아 누구나 어릴 때부터 한 번쯤은 접하는 운동이다. 미국의 학교와 공원 그리고 체육 시설에는 야구장이나 미국 축구장과 함께 테니스 코트가 있어 접근성이 좋다. 미국은 무료인 공공 테니스장이 잘 갖춰져 있어서 테니스를 즐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대학마다 스포츠팀이 있으며 팀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과 열정이 대단하다. 미식축구, 야구, 농구가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이지만 테니스도 그에 못지않은 편이다. 그렇기 어린이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자연스럽게 테니스를 관람하고 선수를 응원하는 문화가 퍼져있어 대학 선수들이 프로로 전향하면 그에 따라 대중의 관심도 프로 테니스까지 확장된다.
미국 스포츠는 엘리트 선수라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 한국은 특정 스포츠 선수가 되려면 학교 수업을 병행하기 힘들 정도로 연습량이 많지만 미국은 수업 일정 자체가 방과 후 활동이나 스포츠를 즐길 수 있을 만큼 여유롭다. 따라서 학업을 병행하며 선수 활동을 하는데 별다른 제약이 없다. 그러다가 특정 스포츠에 재능이 있거나 두각을 나타내면 자연스럽게 실력에 맞는 스포츠 명문 중고등학교나 지역으로 진학이 가능하다. 실력이 뛰어날 경우 테니스 특기생으로 대학에 입학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다면 공부로 대학에 진학 후 선수팀 선발을 통해 합류할 수도 있다. 즉, 한국은 엘리트 선수와 그렇지 않은 일반 학생의 실력 차가 매우 크지만, 미국은 프로 선수와 동호인 사이에 두터운 중간 선수층이 있어서 자신의 노력 여하와 상황에 따라 프로 선수가 될 수 있는 길이 다양하게 열려 있다. 또한 선수가 아니더라도 학업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다.
한국의 테니스 동호회 활동은 코트를 임대하고 정해진 요일과 시간에 맞춰 주기적으로 만나고 친선 경기를 치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동호회는 회비 납부, 가입 절차, 운영진 선발, 분쟁 해결 방법, 정기 월례회 규칙 등이 잘 갖추어진 경우가 대다수이며 체계적으로 운영된다. 미국은 동호회라는 개념보다는 주로 팀 단위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즉, 특정 대회나 리그에 참가할 목적으로 주장이 선수를 모아 팀을 꾸리고 해당 대회나 리그가 끝나면 다시 해산하는 임시적인 단체의 성격을 띤다.
예를 들어, 버지니아 알링턴 카운티(한국의 '군' 단위와 유사)에서는 봄, 여름, 가을 각각의 시즌에 지역 리그를 개최하는데 봄 시즌 전에 선수를 모집하고 주장이 시즌 전체의 일정을 고려해 경기에 출전한다. 같은 팀 멤버끼리는 친목보다는 대회에서 이기기 위한 목적으로 관계가 형성되며 연습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만나서 친목을 쌓는 경우는 드물다. 다만, 미국에서 운영되는 한인 동호회의 경우에는 한국식과 미국식을 절충한 형태의 모임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한국처럼 엄격한 규칙이나 정식 회원가입 절차는 없고 대신 SNS나 게시판 등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며 자유롭게 지인을 초대하여 테니스를 즐긴다. 한국 동호회 활동과 크게 다른 점은 테니스가 주목적이며 경기 전후의 회식이나 모임 및 기타 친목 활동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동호인 대회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한국은 주말을 이용해 온종일 예선부터 결승까지 모든 경기를 치르며 1세트 노애드 경기가 주를 이루는 반면 미국은 몇 달에 걸쳐 팀 또는 개인으로 리그전이 펼쳐지며 리그 기록을 정산해 시즌 말 플레이오프가 진행되는 형태인데 매 경기 3세트 듀스 게임으로 구성된다. 물론 미국도 한국처럼 단기로 치러지는 토너먼트가 있지만, 리그전이 보편적이다. 대회 참가 자격이나 파트너의 실력에 대한 객관성 여부는 미국이 더 체계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은 신인부, 청년부, 장년부, 왕중왕부 등으로 구별되는데 이는 주로 입상 경력이나 선수 경력 또는 나이가 기준이 되어 객관적인 검증이 쉽지 않다. 미국은 나이나 선수 생활 여부와는 무관하게 오로지 NTRP 등급만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지표가 명확하다.
한국의 동호인 경기가 복식 위주인 것은 제한된 코트에 선수는 많기 때문이다. 미국은 코트에 대한 제약에 없으며, 팬으로서도 단식을 많이 접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단식경기를 많이 한다. 또한 개인적인 미국 문화의 영향도 한몫한다. 따라서 한국 동호인들은 발리와 복식 전략에 능하고 미국 동호인들은 강한 서브와 스트로크를 바탕으로 게임을 풀어간다. 한국은 아기자기하고 수 싸움이 잦다면 미국은 시원시원하고 거침없다고 볼 수 있다. 실력 향상만을 생각한다면 초, 중급자에게는 미국식의 스트로크와 서브로 기본기를 다지는 것이 좋고 실력이 올라가면서 한국식의 복식 기술인 발리나 다양한 전략을 배우는 것이 이상적이다.
NTPR(National Tennis Rating Program)는 미국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테니스 실력 평가 기준이다. 가장 초보자는 1.0부터 시작하며 세계적인 선수는 7.0으로 보면 된다. 일반적인 동호인들은 대다수 2.0~5.5다. NTRP의 핵심은 누가 선수 같은 자세로 서브나 스트로크를 구사하느냐가 아니라 온전히 경기에 대한 성적만으로 등급이 결정된다. 처음에는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게 어렵지만 계속해서 경기를 치르다 보면 승패에 따라 컴퓨터 알고리즘이 점수를 조정하게 된다.
대학생 시절 전국대회(KATO 1그룹) 신인부에서 우승했던 김 변호사는 미국에서 4.0 리그로 시작했는데 이후 기록에 따라 연말에 4.5로 승격되었다. 이후 4.5를 유지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전국 대회에 지속해서 출전하여 본선에 합류하거나 입상 가능성이 있다면 4.0~4.5 정도, 전국 대회에서 자주 입상하거나 우승 경험이 있다면 4.5 이상, 왕중왕부나 슈퍼급은 5.0 이상이라고 보면 된다. 미국에서의 5.0은 대부분 대학생 선수 출신들이며, 5.5는 그중에서도 상위권 실력자들이다. 미국은 대학 테니스 선수라고 해도 학업을 병행하며 일반 대학생과 비슷한 생활을 하는 선수가 있는 반면 두각을 나타내 스폰서를 받으며 프로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선수까지 분포가 다양하다. 한국의 현역 대학 선수는 5.5~6.0 정도로 보면 된다.
0.5 단위로 나누어진 NTRP 등급은 실제로 그 안에 수많은 실시간(dynamic) 등급이 계산되어 있다. 같은 4.5등급이라 하더라도 실제로는 4.501부터 4.999까지 세부적으로 실력이 구분되어 있다. 예를 들어, 4.5등급의 동호인이 출전하는 경기에서 4.53인 동호인과 4.76인 동호인이 상대할 경우, 대등한 경기 끝에 4.76인 동호인이 이겼다면, 4.53인 동호인은 패했더라도 실시간 등급이 4.53에서 소폭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4.76인 동호인은 이겼음에도 실시간 등급이 소폭 하락할 수도 있다. 경기 득실에 따라 실시간 등급이 정확하게 어떻게 반영이 되는지는 USTA(미국테니스협회)의 영업비밀이라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알고리즘상에 오류가 있다고 생각되면 USTA에 이의를 제기하여 재검토를 요청할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의 문화 차이는 그대로 테니스 환경에도 드러난다. 미국의 테니스 문화는 개인적이고 한국의 문화는 단체적인 성격을 띤다. 미국은 친한 지인이나 온라인을 통해 파트너를 만나 일대일로 랠리를 하거나 단식 3세트 경기 후 헤어지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형태이다. 사교나 친목 도모보다는 순수하게 테니스를 즐기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한국은 일단 코트가 부족하다 보니 코트를 확보한 동호회에 가입하고 회원들과 친목을 쌓아가면서 테니스를 즐기게 된다. 미국은 그런 경우가 없다고 보면 된다.
레슨 문화도 다르다. 한국의 레슨은 일대일이 기본이며 1회에 20~30분, 주 3~5회, 결제는 한 달 단위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미국의 개인 레슨은 1시간, 주 1~2회, 또는 단발성이다. 미국은 그룹 레슨과 소위 '클리닉'이란 개념으로 레슨과 미니 게임이 혼합된 형태가 보편적이다. '클리닉'에서는 보통 4~6명의 레슨 생과 1~2명의 코치가 코트 한 면이나 두 면을 활용해서 1시간 30분가량 미니 게임을 진행한다. 예를 들어, 4명이 한 코트에서 복식경기 상황을 가정하고 코치가 던져주는 공으로 포인트가 시작된다. 한 복식 조가 5포인트를 취득하며 이긴 조는 남고 진 팀은 다른 팀과 교체되어 클리닉이 진행된다. 이렇게 되면 일반 복식보다 경기 진행에 훨씬 속도감이 있으며 코치는 중간에 레슨 생에게 원포인트 조언을 해줄 수 있다. 이러한 클리닉도 동호인들의 NTRP 등급별로 모집하므로 실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재미와 실력 향상을 동시에 꾀할 수 있다.
이상적인 동호회 문화는 누구나 쉽게 테니스를 접할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가 조성되고 실력에 맞춰 경기를 즐길 수 있는 동호회를 손쉽게 찾을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 테니스는 배우기 어렵고 어느 정도 실력이 되지 않으면 경기를 즐길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 있어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다. 따라서 초보자들이 게임을 하기까지는 오랜 기간 레슨을 받아야 하며 어느 정도 실력이 오르더라도 기존 동호회의 불친절한 대우로 좌절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많은 동호회들이 젊은 회원들을 모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데 상황이 반복된다면 동호인 수는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은 기본적으로 서로 평등하다는 의식이 강해서 초보자라고 코트에서 주눅 들거나 상급자라고 우쭐해하는 경우가 드물다. 게다가 코트는 많고 비슷한 실력의 사람들이 친목보단 테니스 자체를 즐기는 것이 초점이 맞춰져 있어 우리나라와 같은 상황에 발생하지 않는 편이다. 미국은 실력을 떠나서 결국 '다 같이 테니스를 즐기는 동호인'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글_안진영 기자 도움말_김정균(Ballston Legal PLLC 대표 변호사)
사진_김정균,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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