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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Apr 10. 2022

윌 스미스 폭행 사건으로 보는 미국인의 사고방식

농담, 폭행, 평정심

https://youtu.be/myjEoDypUD8


나는 미국에서 거주한 지 이제 거의 10년이 다 됐고, 나름 직업적으로 현지인들과 부대끼는(?) 일이 많다 보니까 미국적 사고방식에 익숙해졌다고 느끼곤 했었다. 그러나 최근에 윌 스미스가 오스카 시상식에서 코미디언 크리스 락의 뺨을 가격한 사건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응은 내 기대와는 너무 달라서,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혹시 해당 사건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을 하자면, 얼마 전에 있었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크리스 락이라는 코미디언이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 참석한 유명인들을 조롱하는(?) 개그를 하고 있었다 (이는 아카데미뿐만 아니라 유명 시상식의 전통이며,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이를 농담으로 웃어넘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영화배우 윌 스미스와 그의 아내도 시상식에 참석했는데, 문제는 크리스 락이 윌 스미스의 아내를 소재로 한 개그를 했다는 것이다. 윌 스미스의 아내인 제이다는 얼마 전에 원형 탈모로 고생하다가 딸의 권유로 삭발을 하고 이를 대중에 공개한 일이 있었는데, 이를 두고 크리스 락은 제이다를 보면서 "G.I. Jane 2에서 얼른 보고 싶어요!"라는 멘트를 했다. 참고로 G.I. Jane은 데미 무어가 삭발을 하고 미국 네이비실 훈련을 받는 장면이 나오는 90년대 영화인데, 제이다가 삭발을 했으니 G.I Jane 2에 언제 출연하느냐는 식으로 놀린 것이다.


처음엔 윌 스미스도 이를 듣고 실실 웃다가, 아내 제이다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웃음끼를 거두고 무대로 걸어 올라가 크리스 락의 을 때렸다. 그 뒤로 윌 스미스는 제자리로 돌아가 격앙된 목소리로 "네 X 같은 입에 내 아내의 이름을 올리지 마"라고 큰 소리로 두 번이나 얘기했고, 이 욕설이 들어간 발언은 두 번이나 똑똑히 생방송을 통해 전국으로 중계됐다. 아무래도 처음에 웃은 게 미안해서 이를 만회하고자 조금 오버한 것 같다.


내가 이 사건을 접했을 때는 '아무래도 농담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의 투병을 농담 소재로 삼는 건 좀 너무했으니 맞을 짓을 하긴 했네'라는 것이었고 더불어 윌 스미스의 행동이 옳은 것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납득은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대다수 미국인들의 반응은 '웃자고 하는 말에, 전 국민이 보고 있는 생방송에서 폭력을 행사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라는 것과 더불어 윌 스미스는 거의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하고 있었다.


만약 비슷한 일이 한국 영화제 시상식에서 벌어졌다면 (문화 통념상 그럴 농담을 할만한 코미디언도 없겠지만) 모르긴 몰라도 최소한 윌 스미스를 옹호하는 의견이 반 정도는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농담이라고 하더라도 가족을 대상으로, 그것도 상대의 외모를, 특히 그것이 투병으로 인한 외모의 변화라면 한국(혹은 동양 문화)에서 용인되기는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일단 미국 문화는 농담에 대한 허용 기준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듣는 당사자가 아무리 기분이 나쁘더라도 청중들에게 큰 웃음을 줬다면 당사자가 기분이 좀 나쁘더라도 스스로를 희생해서 이를 감내해야 한다는 인식이 암묵적으로 깔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 인 표현의 자유와도 연관이 깊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예전에 이라크 전에서 전사한 미군 장병의 장례식에서 그 병사가 생전에 동성애자였다는 이유로 "당신은 죽어서 지옥에 갈 것이다" "신은 너를 증오한다" "당신이 죽게 되어 신에게 감사한다" 등의 팻말을 들고 나타난 극단적 기독교 신도들의 행위도 연방대법원은 무려 8대 1이라는 압도적인 투표로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한편, 미국 문화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폭력 행위가 용인될 수 없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미국은 타인이 자신의 신체를 침해하는 것에 대해서 엄청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이다. 내가 형사 변호인으로 활동할 당시에도, 많은 한인 이민자들에게 폭행죄의 성립 요건이 "동의하지 않은 타인과의 접촉"이라고 하자 그 기준이 매우 낮다면서 놀라곤 했었다. 많은 사람들이 폭행죄라고 하면 "누군가에게 주먹을 휘둘러 다치게 하는 것"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형법상으로도 단순 욕설이나 모욕은 절대로 폭력의 근거가 될 수 없다. 그런데 유명 영화배우가 생방송에서 타인의 뺨을 풀스윙으로 때리는 폭행을 저질렀으니 그 파장이 클 수밖에.


또한, 미국에서는 공개적으로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거나 이성을 잃는 행위를 경멸한다라는 것이다. 윌 스미스가 폭력 행위로도 욕을 먹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남들 웃자고 하는 농담에 이성을 잃고 폭력을 행사하고 큰 소리로 욕을 하는 바람에 청중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도록 만든 것에도 큰 잘못이 있다고 한다. 반대로 이번 사건에서 크리스 락이 칭송받는 이유는 공개 방송에서 뺨을 맞는 당황스러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성을 잃지 않고, 침착하고 능청스럽게 상황을 유연하게 넘어갔다는 것이다. 참고로 미국 법정에서도 목소리를 높이거나 흥분하는 변호사/당사자는 절대로 존중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미국인들이 바라는 윌 스미스의 반응은 무엇이었을까? 예상컨대, 와이프를 조롱하는 크리스 락에게 재치 있는 농담으로 맞받아쳐서 오히려 크리스 락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면 최상의 결과였을 것이다. 미국인들은 뼈 있는 농담으로 상대방의 기를 죽이는 유머 배틀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누가 그랬던가, 코미디언에게 가장 뼈아픈 말은 "당신 농담 안 웃겨!"라고... 윌 스미스가 최소한 폭력이 아닌 정색이나 항의라도 했으면 이렇게 큰 논란거리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윌 스미스나 크리스 락이 이번 사건을 법정 소송으로 가져갈 수 있을까? 이미 크리스 락이 LA 경찰에게 윌 스미스에 대한 형사 처벌은 원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윌 스미스에게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있겠지만, 공개적으로 뺨 맞은 것에 대한 정신적 피해 보상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는 배심원만이 알 것이다. 오히려 이번 일로 크리스 락의 평판이 올라서 굳이 소송을 하지 않아도 장기적으로 충분히 보상을 받을 것이 확실하기에 굳이 소송을 걸며 쪼잔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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