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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Apr 08. 2022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 연방대법관 탄생

그녀는 누구일까?

Photograph courtesy of the U.S. Senate Judiciary Committee

오늘 (2022년 4월 7일) 미 연방상원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명한 연방대법관 후보 케탄지 브라운 잭슨(Ketanji Brown Jackson) 판사의 인준안을 가결했다. 미국 최초의 흑인 여성 연방대법관이 탄생한 순간이다.


몇 달 전 바이든 대통령이 잭슨 판사를 연방대법관 후보로 지명하기 전까지 그녀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던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2015년~2017년 동안 워싱턴 디시 연방 지방법원에서 재판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잭슨 판사님을 몇 번 만나본 적이 있다. 잭슨 판사님의 집무실은 내가 모시던 판사님의 집무실 바로 옆이었기 때문에 복도를 오가며 가끔 마주치곤 했기 때문이다. 기억하기로는 (대부분의 다른 판사님들이 그러했듯이) 매우 침착하고 따뜻한 분이었다. 당시 로클럭들 사이에서는 "KBJ"로 통했다. (여담이지만 연방법원 사건 번호 끝에는 담당 판사의 이름 이니셜이 붙는다. 몇 년 전 타계한 유명한 긴즈버그 판사는 RBG)


잭슨 판사의 이력을 보면 기존의 연방 대법관들의 커리어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하버드 학부 최우등 졸업 및 하버드 로스쿨 시절 로리뷰 편집위원 역임 및 로스쿨 우등 졸업, 연방 지방법원 로클럭으로 변호사 커리어를 시작하여, 연방 항소 순회법원, 연방 대법원 로클럭을 거쳤으며, 대형 로펌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러다 연방 지방법원 판사, 연방 항소법원 판사직을 거쳤다. 여기까지만 보면 다른 연방대법관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특이한 점은 연방 국선변호인(Assistant Federal Public Defender, AFPD) 출신이라는 것이다. 이는 연방대법관 중에 최초이다.


참고로 잭슨 판사가 근무했던 워싱턴 디시 연방 국선변호인 사무실은 미 전역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로 구성된 엘리트 팀으로 대부분 연방법원 로클럭 경험과 최고의 대형 로펌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한국으로 치자면 로스쿨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후 로클럭으로 경력을 쌓고 이후에, 김앤장 같은 대형 로펌에서 실무를 하다가 국선 변호사의 길을 택한 사람들이다. 그중에서도 잭슨 판사는 항소 사건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면서 승소가 불가능한 사건을 뒤집는 등 두각을 보였다고 하니, 변호사로서의 능력은 충분히 검증된 셈이다.


재밌는 점은, 이번 연방대법원의 공석은 기존 대법관이었던 브라이어 판사(Breyer)가 은퇴하면서 생긴 자리인데, 이 공석을 채우는 새 법관이 바로 브라이어 판사의 로클럭 출신인 잭슨 판사라는 것이다! (잭슨 판사는 1999~2000년 브라이어 전 대법관의 로클럭으로 근무했다) 그렇기 때문에 잭슨 판사의 정치적 혹은 판결 성향은 브라이어 판사와 거의 비슷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왜냐면 연방대법관들은 거의 대부분 자신과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로클럭으로 채용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소속인 바이든 대통령이 지명한 판사인 만큼, 잭슨 판사의 정치 성향이 진보적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잭슨 판사의 성향이 브라이어 판사의 성향과 비슷하다고 전제한다면, 그녀도 헌법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엄격한 텍스트의 해석에 집중하기보다는 법 제정자의 의도와, 특정 해석에 따른 사회적 임팩트에 더 비중을 둘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 국선 변호인 출신인 만큼 국가 권력이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이에 대해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가능성도 있는데, 공교롭게도 이는 보통 보수적 법관의 견해이기도 하다.


어쨌든, 미국 최초의 흑인 여성 연방대법관의 탄생은 미국 사회의 다양성이 조금이나마 발전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예전에 소토마요르(Sotomayor) 법관이 임명됐을 때만 해도 최초의 라틴계 여성 대법관이라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가까운 시일 내에 아시아계 혹은 더 나아가 한국계 연방대법관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참고로 연방대법원 바로 밑 단계의 연방순회 항소법원은 아시아계 최초의 타이틀을 한국계 판사인 허버트 최가 가지고 있다 (2004년 타계). 최근, 작년(2021년) 말에는 한국계 여성으로는 최초로 루시 고 판사가 연방순회 항소법원 판사로 임명되기도 했으니, 아주 먼 일만은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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