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Formula 1에 열광하게 되는가?
아마 작년 겨울쯤이었을 것이다. 넷플릭스에서 새로운 흥밋거리를 찾다가 우연히 Drive to Survive (한글명 '본능의 질주')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 그전까지 모터스포츠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으며 단순히 '운전을 빨리 하는 것'이 어떻게 스포츠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나는 시간 때우기 용으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F1이라는 경기의 구성과 거기에 참여하는 선수들, 각 팀(컨스트럭터)의 성향이나 기술적 차이를 조금씩 알고 나니 그제야 왜 사람들이 모터스포츠에 열광하는지 알게 됐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F1 피겨를 검색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나름대로 생각해본 F1이 재밌는 이유를 적어보려 한다.
1. 박진감 넘치는 추격전
액션 영화에서 절대로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자동차 추격전. 보통 주인공이 악당들에게 쫓기거나, 주인공이 악당을 쫓는 장면은 액션 영화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클리셰이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의 현란하고 재치 있는 운전 실력은 물론이고, 멋진 자동차의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배기음이 배경으로 깔린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긴장감과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추격전, 서로 부딪치고 폭발하고 자동차가 굴러다니는 장면이 연출된다.
F1에서는 이 모든 것이 일상이다. 더불어 얼마 되지 않은 스무 명 남짓의 드라이버들이 각자의 인생 경험과 고난을 가진 채 경기에 참가하며, 이 과정에서 추격전은 물론 가끔은 대형 충돌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게다가 F1 자동차는 시속 300km를 넘나들기 때문에, 0.1초 혹은 0.0001초 차이로 승부가 갈리기도 하고, 경기 내내 우세를 차지하고 있다가도 결승선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 놓고 실수나 사소한 기계 결함 한 번으로 전세가 완전히 역전되기도 한다. 그야말로 액션 영화에 나오는 액기스를 그대로 모아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첨단 과학 기술의 결정체
어렸을 적 과학 시간 조별 과제로 젓가락과 접착제만 사용하여 4층 높이에서 계란을 던졌을 때 깨지지 않게 만드는 과제를 한 적 있다. 혹은 대학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했다면, 이쑤시개만으로 일정 하중을 견디는 구조물 만들기를 해봤을 것이다. 두 가지의 공통점은 주어진 룰 안에서 정해진 재료로 최대의 결과물을 산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F1도 마찬가지다. 매년 FIA에서 제시하는 규정 내에서 각 컨스트럭터(경주용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가장 빠르고 안정적인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가능한 모든 공학 기술과 천문학적인 비용을 감수한다.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자동차 기술을 가진 메르세데스나 페라리 같은 자동차 회사들이 오직 F1 우승을 위한 일념으로 치열한 정보전과 인재 확보를 위한 쟁탈전을 벌인다. 미션 임파서블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첩보전과 왕좌의 게임 저리 가라 할 정도의 회유와 협박, 뒤통수 치기가 난무한다.
3. 라이벌 관계, 그리고 주연과 조연들
스포츠에서는 라이벌 관계가 빠질 수 없다. F1에서도 테니스에서의 페더러와 나달, 야구에서의 뉴욕 양키즈와 보스턴 레스삭스처럼 라이벌 관계가 존재한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둘 중 한쪽을 무의식적/의식적으로 선택하게 만들고,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나 팀이 이기기를 간절히 바라게 만들어 경기를 더욱더 몰입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어느 서사시에나 등장하는 영웅의 성장과 갈등, 좌절, 어려움의 극복을 통한 환희가 모두 들어가 있다. 어느 드라마에나 등장하는 돈 많고, 힘세고, 잘생긴,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갖춘 엄친아 격의 캐릭터가 있고, 이에 도전하는 조금 부족하지만 오기와 끈기로 똘똘 뭉친 가끔은 불쌍한(?) 대적자가 존재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왕좌에 앉은 왕이 막강한 권세와 능력을 뽐내며 경쟁자들을 짓밟는 데에서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만년 언더독(underdog)이 우여곡절 끝에 황제의 실수를 기회 삼아 왕위를 탈환하는 것에도 적지 않은 쾌감을 느끼게 된다. (예: 2021년 F1 시즌)
물론 F1은 이 외에도 나열할 수 없는 수많은 즐길 거리를 제공한다. 사내아이 치고 어렸을 적에 장난감 자동차를 갖고 놀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었을 것이며, 젊은 20대 남자치고 드림카가 없는 사람이 누가 있었을까. 혹시라도 F1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넷플릭스를 켜서 '본능의 질주'를 보기를 권한다. 어느새 정주행을 넘어서, F1 실시간 중계 일정을 검색하고 있는 본인을 발견하게 될 지도...
(P.S. 제가 가장 좋아하는 F1 선수는 누구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