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과 안정감
벌써 새로운 직장을 시작한 지 2주가 지났다. 그 전 4년 동안에는 프리랜서로 생활하다가 오랜만에 정부직 공무원으로서 정시출근 정시퇴근 생활을 하려다 보니 적응하는데 꽤 힘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직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가 기본이라 2주 동안에 실제로 사무실에 출근한 적이 3번이라는 것. 첫날 선배 변호사(직속 상사와 팀 리더)와의 만남을 위해 출근하고, 그다음 날 아이디카드를 수령하기 위해 출근, 그 후 계속 재택근무하다가 다음 주 수요일에 업무용 랩탑을 받기 위해 출근한 건이 전부다.
첫 출근 했을 때, 나는 포멀한 오리엔테이션을 기대하며 수많은 다른 신입 직원들과 동시에 한 공간에서 트레이닝받는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직속 상사와 팀 리더, 나보다 2주 먼저 시작한 다른 신입 변호사 이렇게 4명이서 법무팀 사무실에서 조촐하게(?) 진행되었다.
그 뒤로는 선배 변호사들이 참석하는 화상 회의에 계속 따라다니며 업무를 익히기 시작했는데, 당연히 배경 지식이 없으니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수 없이 난무하는 약어(acronym)에 익숙해지는 것이 관건인 것 같아서 틈만 나면 모르는 약어를 적어놓은 뒤에 나중에 계속 찾아보는 것이 일상이 됐다. 우리는 정부 기관의 사내 법무팀이다 보니 대부분의 회의는 기관 내의 다른 공무원들과 법 규정에 대해서 자문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다들 공무원이라서 그런지 다들 성격이 부드럽고, 상식적인 대화가 통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개업 변호사로 일할 때는 특히 형사 사건을 많이 다루면서 참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했었다. 그중에서는 평소라면 말을 섞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노숙자, 공사장 인부, 트럭 운전사, 식당 종업원 등을 대리하며, 법원에서는 주로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관과 검사와 소통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 과정에서 의뢰인은 의뢰인대로, 검경을 상대할 때는 그 특유의 권위주의로 인해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매일매일 겉으로는 침착하고 프로페셔널한 변호사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지만, 속으로는 등골에 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긴장하기가 일수였다.
그런데 공무원 세계에서 일을 하게 되니, 마치 폭우가 내리는 정글에서 일하다가 안온하고 조용한 온실로 들어온 느낌이다. 일을 더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면 나름대로의 갈등과 반목이 존재하겠지만, 형사 업무를 할 때만큼의 드라마틱한 일은(예를 들어, 법원 복도에서 정신질환이 있는 의뢰인이 내 얼굴 코앞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는 일 등) 없지 않을까 시작된다.
한편, 느리고 무능하다는 공무원에 대한 편견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 팀, 혹은 우리 기관은 오히려 한국 저리 가라 정도로 업무처리가 신속하고 정확한 편이다. 사실 변호사로 구성된 법무팀이고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사기업이나 로펌에서 업무를 하다 온 편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기관 차원에서는 아무래도 하는 업무상 신속 정확성이 요구되는 만큼 문화가 그렇게 발달된 것 같기도 하다. 예를 들어, 내가 금요일 오후 4시에 업무용 휴대폰 신청을 했는데, 다음 주 월요일 아침 7시에 내가 보낸 서류를 수정해 달라고 답장이 왔다. (만약 다른 기관이었다면, 신청 후 2주간 아무런 소식이 없다가 내가 문의해서야 완료됐다고 휴대폰 수령하라고 한 뒤, 막상 가지러 가면 서류에 문제가 있어서 처음부터 절차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소식을 들어도 크게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첫 봉급은 업무를 시작 한지 3주가 되어야 나온다고 하니(참고로 미국 직장인은 대부분 월급을 한 달에 2주마다 두 번으로 나눠서 받는다) 아직 통장에 돈이 찍히는 즐거움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조만간 의료보험증과 기타 혜택 가입 증서를 받으면 정부기관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더 실감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