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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변호사의 평범한 하루

by 김정균 미국변호사

"떨려오는 별빛 반짝이는데~"라고 시작되는 알람으로 눈을 뜬다. 오전 6시. 일어나자마자 양치를 하고 커피를 내린다. 커피가 내려지는 동안 베란다에 가서 명상 앱으로 약 10분간 명상을 한다. 오늘 아침에 있을 재판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억누르며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정리한다. 커피가 다 되었다. 아침 신문을 읽으며 커피를 마신다. 7시쯤 아내가 졸린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온다. "아침 해줄까요?" "응"


아내가 차린 아침을 먹고, 법원 갈 준비를 한다. 재판이 있는 날은 항상 법전과 녹음기를 챙긴다. 물론 대부분의 케이스는 유죄협상(plea bargaining)으로 끝나지만 행여 협상이 잘 안되면 공판을 해야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집에서 법원까지는 66번 고속도로를 타고 약 30분. 재판 시간은 9시 30분이지만 의뢰인과 미리 만나서 사전 조율을 하고 검사와 협상을 하려면 9시까지 가야 한다.


다행히 교통체증이 심하지 않아서 8시 반쯤 도착했다. 예전에 국선(court appointed)으로 맡아서 처리했던 사건 변호사 비용 지불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법원 사무국에서 들려서 진행 상황을 알아보니 어느덧 9시가 되었다. 페어팩스 카운티 법원은 1층에서 교통 사건, 2층에선 형사 사건을 처리한다. 오늘은 1층에 볼일이 있다.


9시에 법원에 들어가니 판사는 아직 없고, 검사가 검사 측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내가 맡은 의뢰인 이름을 알려주고 변호사 대기실로 갔다. 변호사 대기실이라고는 하지만 단순히 법정과 복도 사이에 있는 방 한 칸의 작은 공간이다. 이 곳에서 검사와 변호인 사이의 유죄협상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교통 법원에는 매일 수십 건의 크고 작은 사건이 배정되는데 변호사가 선임(혹은 임명)된 경우 따로 검사와 협상할 시간을 준다. 나머지는 담당 경찰관에 따라 알파벳으로 사건이 불리면, 판사 앞에 나서서 유무죄를 따지는 것이다. (물론 변호사가 없는 경우 95%는 유죄로 끝난다)


나는 다행히 일찍 변호사 대기실에 온 관계로 내가 첫 번째다. 곧이어 3명의 변호사를 이 대기실에 자리 잡았다.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변호사 중 한 명이 다른 연로해 보이는 변호사에게 오늘 배정 검사는 어떤 사람인지 물어봤다. 그 백발의 백인 변호사는 답했다. "Oh, she's delightful" 정확히 어떤 의미로 그런 말을 한 것인진 모르지만 그래도 상대하기 피곤하거나 까다로운 검사는 아닌 것 같다.


검사와 경찰관이 방 안에 자리 잡고, 피고인 이름을 하나씩 호명하면 해당 의뢰인을 대리하는 변호사가 방에 들어가서 검사와 협상하는 식이다. 교통 사건은 워낙 그 수가 많기 때문에, 검사도 재판 당일까지는 사실 관계를 알지 못한 채 그날 담당 경찰관이 검사와 변호사 앞에서 사실 관계를 처음 공개하게 된다. 그러면 그것을 바탕으로 즉석에서 검사와 변호사간의 협상이 시작된다. 물론 이 과정은 구두로 매우 신속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사전에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종종 의뢰인과의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없었던 증거를 새롭게 알게 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순발력과 두뇌 회전도 중요하다. 동시에 검사의 입장이 되어 사건을 입증할 수 있는지 여부와 약점은 없는지 파악해야 한다.


협상 끝에 의뢰인과 검사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과가 나왔고, 사건이 종결되었다. 국선 사건이었기에 사건 종결과 동시에 법원에 수임료 지불 요청서를 제출했다. 의뢰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법원을 떠났다. 법원을 떠난 지 한 5분 되었을까. 법원에서 전화가 왔다. 새로운 국선 사건 배정 소식이다. 이번에 마약 사건이다. 집으로 가는 방향에서 다시 차를 돌려 법원으로 왔다. 국선 사건 배정을 담당하는 사무실에 가니 내 이름으로 된 폴더에 새로운 의뢰인 정보가 들어 있었다. 해당 사건에 내가 담당 변호사임을 알리는 알림장을 법원에 제출하고, 증거개시 요구서 양식(discovery form)을 작성해서 검사 사무실에 제출했다.


점심을 먹고 이번엔 알링턴 카운티 검사 사무실에 들렸다. 예전에 요구했던 증거개시 자료가 열람준비되었다고 해서 검토하러 온 것이다. 사무실에 들리니 낯익은 비서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담당 검사와 의뢰인 이름을 알려주니 자료를 내준다. 자료 혹은 의뢰인 외의 개인정보를 유출하지 않는다는 서약을 하고 자료를 넘겨받는다. 경찰 보고서와 비디오 CD가 들어있다. 경찰 보고서는 검사 사무실 정책상 복사는 불가능하지만 그 외에 수기, 타자, 혹은 음성 등으로 기록을 할 순 있다. 경찰 보고서를 보면 사건이 공판으로 갈 경우 경찰관 혹은 목격자가 어떤 진술을 할지 미리 알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승소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고, 이는 유죄협상 과정을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한다. 검사 입장에서는 공판 없이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고, 피고인 입장에서는 형량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


사건 검토를 마치고 검사 사무실을 나서니 오후 3시가 넘었다. 사건 기록을 타이핑하느라 집중력이 떨어져 오는 길에 커피숍에 들렸다. 잠시 랩탑을 켜고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을 간단히 저널에 기록한다. 판사와 검사의 이름. 검사의 성향, 협상 태도, 제시 형량 등을 기록하여 나중에 같은 검사 혹은 판사를 만났을 때 미리 대비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더불어 해당 사건을 준비하면서 잘했던 점과 못했던 점, 개선할 점을 기록한다. 지금은 분량이 얼마 안 되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나만의 비밀 노트가 될 것이다. 매일 새로운 배움의 연속이다.


하루의 마무리는 오늘 새로 배정받은 국선 사건을 내 컴퓨터에 입력하고, 내일 있을 의뢰인과의 면담을 대비함으로써 끝날 것이다. 새 사건의 법정 기일을 구글 달력에 표시하고, 의뢰인에게 보낼 간단한 편지를 작성하는 것이다. 내일 의뢰인은 무료 법률봉사(pro bono) 활동을 위한 것인데, 개인 파산 신청을 도와주고 있다. 형사 변호사로서 파산 사건은 한 번도 맡아보지 않아서 공부해야 할 것이 많지만, 개업을 하면서 항상 최소 1건의 무료 법률봉사 사건을 진행한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받아들인 사건이다. 밖을 바라보니 어느새 평범했던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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