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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Sep 04. 2022

미국 생활 10년 차 느낀 점

무엇이 달라졌을까

2012년 8월, 미국 로스쿨의 꿈을 안고 디트로이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난생처음 겪어보는 유학생활을 로스쿨로 시작하게 됐다. 그 뒤로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때와 지금의 나는 어떤 점에서 다른가 생각해보게 됐다.


우선 신분과 법적 이름이 달라졌다. 당시에는 한국인 유학생이었지만, 지금은 미국 시민이 되었고 이름도 영어식으로 바꿨다. 나는 완전한 성인이 된 후에 미국으로 이민한 케이스라서 다행히 자아정체성 혼란 등의 문제는 겪지 않았다. 현재의 내 사고방식은 한국식이라기보다는 미국 쪽에 가깝지만, 그래도 여전히 무의식 중에는 한국식이 남아있지 않을까. 한국식 40대 미국식 60대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미국에 있지만 그래도 한국 뉴스나 소식은 종종 관심 있게 챙겨본다. 티브이나 드라마의 경우 한국 것과 미국 것을 반반씩 보는 것 같다. 책은 아무래도 한국 쪽 서적을 많이 보는 편이다. 아무래도 업무상 영어로 된 텍스트를 많이 읽다 보니 영어로 된 책은 재미 삼아 읽기에는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집에서는 와이프와 한국어 60% 영어 40% 정도로 섞어서 사용하는 편이다. 와이프의 한국어가 초등학교 수준이다 보니 쉬운 일상 대화는 한국어로 하고, 업무나 일과 관련된 대화는 영어로 하는 게 서로 편하다.


업무는 정부기관이다 보니 당연히 100% 영어로 하고 있다. 우리 법무팀에 한국계 미국인이 몇 명 있긴 한데, 한국어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순전히 영어로만 대화를 한다. 나중에 친해지면 한국어 할 줄 아냐고 물어볼 생각이다. 자문 업무는 대부분 이메일로 하다 보니, 요즘은 오히려 한국어보다 영어로 글쓰기가 자연스럽고 나도 모르게 한글을 쓰면서 사고의 흐름은 영어로 하고 있다.


미국 생활 10년 차로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인생관인 것 같다. 무엇보다 한국처럼 남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적다 보니, 무언가를 결정할 때 예전에는 스스로에게  '내가 이 결정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질문을 하곤 했는데, 요즘은 '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가 기준이 됐다. 아무래도 한국 사람들은 비교적 좁은 지역에서 서로 오밀조밀 모여 살기 때문에, 아무래도 타인의 평가와 사회의 평판이 의사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나도 유학생 시절 혹은 미국 생활 초반에는 남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성공하려 했던 것 같다. 부모님에게 좋은 아들이 되기 위해, 친구들부터 부러움과 존경을 받기 위해, 혹은 직장 상사로부터 칭찬을 받기 위해서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에 대한 타인의 평가가 나 스스로의 성공 기준이 되어 있었다. 정확히 누가 정했는지도 모르는 '좋은 로스쿨에 가서, 성적을 잘 받고, 이름 있는 로펌에서, 무슨무슨 업무를 하면서, 연봉을 얼마 받는다'라는 일종의 정해진 테크트리를 따라가는 성공 방정식을 맹목적으로 추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성공 방정식은 내가 정한 게 아니라, 타인 혹은 미디어가 나에게 심어 놓은 환상이었고, 나는 그것이 내가 독립적으로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미국 생활을 하면서 나는 "~라면 응당히 ~해야 한다"라는 굴레를 상당수 벗어낼 수 있었다. 타인과 나를 비교함으로써 내가 특별히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었고, 내가 하는 모든 행동과 발언에 대해서 이를 미리 타인의 관점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해서 지나치게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내가 원하면 하는 거고, 아니면 안 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뭔가를 억지로 한다든지, 반대로 내가 원하는 일을 누군가 뒤에서 수군거릴까 봐 망설이거나 눈치 보는 경우가 적어졌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미국 생활이 참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물질적으로 풍족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심적으로 편안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때문에 한국에 방문을 못한 지 3년째가 되었다가 조만간 한국에 갈 일이 생겼는데, 왠지 이번에 방문할 때는 예전만큼 안락한 기분을 느끼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미 미국식 생활과 사고방식에 익숙해졌고, 내가 유학을 시작할 때의 한국은 또 지금의 한국과는 꽤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의 한국적에 대한 기억은 마지막으로 한국을 떠나올 때로 고정되어 있다는데, 마찬가지로 내 머릿속의 한국도 2012년으로 고정되어 있을 것이다.


미국 생활 10주년을 기념해서 원래는 뭔가 엄청나게 쓰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 막상 쓰려고 하니 여기까지인 것 같다. 과연 10년 뒤에는 내가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그때도 블로그를 열심히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203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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