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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Sep 02. 2022

미국 한인 테니스 대회 우승 후기

최근에 미국 워싱턴 디시/볼티모어 지역을 중심으로 한 한인 테니스 대회가 있었다. 원래는 매년 개최되는 대회였는데 코로나 때문에 3년 만에 재개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침 인맥도 넓히고 실력도 쌓을 겸 가장 익숙한 파트너인 D군과 참가 신청을 했다. 결과야 제목에 있듯이 우승이지만, 거기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시련과 도전(?)이 있었기에 이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물론 자랑 글의 성격도 있음)


대회 시작 전 준비

일단 대회는 실내코트이고 시작이 토요일 오후 5시라고 해서 와이프와 코트 근처에 호텔로 숙소를 예약했다. 어차피 대회가 열리는 코트가 호텔에 붙어 있는 곳이고, 5시에 시작하면 아무리 빨리 끝나야 저녁 8~10시가 될 것 같아서 집에서 1시간 30분 거리를 그때 운전하기에는 너무 피곤할 듯해서 내린 결정이다. 실제로 결승이 끝난 시점이 밤 11시 30분 정도였으니, 호텔 예약하길 천만다행이다.


대회 장소로 출발하기 전 2시쯤 파트너와 집 근처에 있는 실내 코트에서 몸을 풀었다. 한 30분 정도 주로 서브 앤 발리와 리턴, 마지막엔 스매시(오버헤드)로 마무리했는데,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시합 중에는 둘 다 스매시 에러가 거의 없어서 연습을 한 효과를 톡톡히 봤다.


대회 장소 도착

한국에서 전국 동호인 대회 시합을 많이 다녔는데, 가장 흥분되고 짜릿한 시간이 바로 아침에 막 운전해서 대회장소에 딱 도착했을 때이다. 출전 선수들 사이에서의 긴장감, 아는 사람들을 만나서 나누는 잡담, 바쁜 운영진들의 움직임, 이 모든 것들이 짜릿한 흥분으로 다가오는데, 여기에서도 거의 똑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중요한 재판이 있는 당일 법원 도착 후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의외로 고전한 첫 경기 - 예선 1경기

일정이 약간 지체돼서 오후 6시쯤 첫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상대방은 메릴랜드 지역팀. 약간 40대~50대 아저씨와 30대 정도의 젊은 청년의 페어였는데, 한눈에 봐도 아저씨의 구력과 노련미가 상당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만 나도 나이에 비해서는 동호인 바닥에서는 꽤 많이 놀아본(?) 편이라 해볼 만하다고 느꼈다. 이는 경기 시작 후에도 느낄 수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저씨는 우리 편 파트너가 서브할 때 의도적으로 첫 서브가 안 들어가면, 두 번째 공을 줍기까지 시간을 꽤 지체함으로써 더블 폴트를 유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경험상 다분히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뭐 이런 정도의 견제는 워낙 많이 받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는데, 내 파트너는 당연하게도(?) 여기에 걸려들어 첫 서브부터 더블폴트로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서브 게임도 자연스럽게 빼앗기고, 어느새 상대방 서브인데 3-1로 지고 있었다. 이러면 힘들겠다 싶어서 상대방의 분위기를 흔들고자 리턴을 모두 로브로 응수했다. 나름 강한 스트로크로 우리를 압박하던 상대방 아저씨는 무리를 하며 우리에게 분위기 전환 기회를 줬고, 운 좋게 노애드 상황에서 포인트를 따 상대방 서브를 브레이크 했다. 이후 경기는 막상막하로 5대 5까지 갔고, 아무래도 스코어가 부담돼서 그랬는지 첫 서브를 더블 폴트 한 상대방 젊은 선수의 서브를 브레이크 하며 6대 5로 게임을 역전했다. 마지막 우리 편 파트너 서브할 때는 상대방 리턴에 부담을 주기 위해서 내가 네트 가운데 포지션을 잡거나 Australian 포지션을 잡아서 결국 게임을 7대 5로 가져올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둘 다 첫 경기이고, 나름 노련한 상대를 만나서 꽤나 고전했던 경기였다.


예선 1경기 동영상

https://youtu.be/o4lu2mq81xk


풋폴트의 중요성 - 예선 2경기

예선 1경기를 힘겹게 끝낸 뒤, 곧바로 이어진 우리 조 다른 두 팀의 경기를 볼 수 있었다. 즉, 우리가 1경기에서 이긴 만큼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 것이다. 우리 예선 조에는 우리 포함 총 3팀이었는데, 나머지 한 팀은 아버지와 아들이 한 편인 소위 "부자 조"라고 했다. 그런데 그중에 한 명이 선수 출신이라 파워가 무시무시하다며 건투를 빈다고 누군가 귀띔을 해줬다. 처음엔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예전에 한두 번 경기를 했던 적이 있는 선수였고, 그때도 이긴 기억이 있어서 그렇게 크게 걱정을 하진 않았다. 게다가 같이 파트너를 하는 아버지 쪽 서비스를 보니 서브 동작에서 풋폴트가 심한 편이어서 나중에 경기할 때 이를 지적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경기 시작됐고, 초반은 팽팽하게 진행됐다. 역시 선수 출신이라 그런지 서브나 스트로크의 파워가 동호인 수준을 넘어섰다. 나는 운 좋게 선수 출신의 서비스를 계속 받아낼 수 있었지만, 내 파트너는 그렇지 못해서 아들 선수의 서브는 계속 브레이크 할 기회가 없었다. 순서가 한 바퀴 돌아서 아버지 쪽 선수가 서브를 넣기 전에 내가 "풋폴트 보는 거죠?"라고 살짝 물어봤다. 마침 아들 쪽 선수는 대회 진행요원을 겸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여기에 대해 불만이 없었다. 그 뒤로는 아무래도 풋폴트가 의식되는지, 베이스 라인에서 두 발짝 정도 떨어져서 서브를 넣었지만, 처음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을 밟아서 내가 풋폴트를 콜 했다. 이후의 상황은 다들 예상하듯이 아버지 쪽 선수는 더블 폴트를 연달아하며 서브를 우리에게 쉽게 내줬다.


그러다 보니 다른 플레이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조급해진 선수 출신은 무리한 샷을 남발하다 보니 경기는 우리 쪽으로 일방적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막판에는 내가 풋폴트를 콜한 것에 대해서 기분이 상했는지 혹은 그냥 경기가 안 풀려서 그랬는지 의도적으로 나를 맞추려고 리턴하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이런 것도 한두 번 당해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상체를 숙여서 네트에 눈높이를 맞추고 날아오는 공에 대비했다. 만약 공이 너무 낮으면 네트가 보호해 줄 것이고, 네트를 넘는 공이면 인과 아웃을 판단해서 들어오는 공만 머리는 숙인 채 팔만 내밀어서 치면 된다. 흥분한 상대는 공을 날리기만 했고, 두 번의 아웃을 쉽게 피하면서 게임은 6대 2로 쉽게 끝났다. 이번 기회에 상대방은 풋폴트를 안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았을 것이다. 기본적인 것이지만 많은 테니스 동호인들이 간과하는 부분이다.


예선 2경기 동영상(참고로 카메라 앵글이 좋지 않지만 볼 수는 있다):

https://youtu.be/6TXwGYLgPfE


본선 1경기 - 운 좋게 4강전

예선을 손쉽게 2전 전승으로 마치고 본선을 추첨했는데, 운 좋게도 bye를 탔다. 그래서 체력도 아낄 겸 우리가 상대할 팀의 본선 첫 경기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팀 중 한 명이 기권을 해서 생각보다 빨리 4강전을 치르게 되었다.


4강 전 상대는 둘 다 다른 종목에도 출전한 선수들이었다. 그 말인 즉, 이 대회에는 일반부 복식뿐만 아니라, 단식 및 혼복 종목도 있었는데, 상대방 선수 중 한 명은 단식에서 결승까지 오른 실력자이고, 다른 한 명은 혼복에서 입상권에 올라간 사람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둘 다 다른 종목 경기를 치른 만큼 체력이 우리보다는 적을 거라는 계산 하에 할만하다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경기는 생각보다 쉽게 흘러갔다. 초반에는 비등비등했지만, 약간의 운도 따라줬고 우리 팀은 이미 첫 경기에 힘든 경기를 치러서 그런지 오히려 4강 전에서는 긴장도 하지 않고 제 실력을 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초반부터 상대방을 밀어붙이면서 결국은 6대 0으로 경기를 쉽게 끝낼 수 있었다. 상대방의 체력도 체력이지만, 둘 다 스트로크 위주의 플레이어였고, 우리는 발리와 아기자기(?)한 스타일을 하다 보니 상성 면에서도 우리가 유리했던 것 같다.


4강전 경기 동영상:

https://youtu.be/rJOzesvcwMM


얼떨결에 이겨버린 대망의 결승전

4강 전을 일찍 끝내고 결승전을 대기하며, 우리와 상대할 복식조가 누굴지 결정하는 다른 4강전 경기를 구경하게 되었다. 한쪽은 젊은 고등학생 두 명의 페어였고, 다른 한쪽은 노련한 베테랑부 아저씨와 40대쯤으로 보이는 젊은 말총머리(?) 선수였다. 고등학생 두 명은 확실히 현역 선수로 스윙이 깔끔했지만 아무래도 경험이 부족했고, 나머지 성인(?) 팀은 노련한 선수와 파워를 갖춘 밸런스 있는 팀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역시 노련미의 승리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결승전 상대의 한 명인 베테랑부 아저씨는 예전에 다른 코트에서 한 번 경기를 해본 적이 있었고, 그때도 이겼던 기억이 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말총머리 선수였다. 이미 대회 초반부터 엄청난 실력으로 코트를 휘젓고 다녔는데 알고 보니 고등학교 때까지 테니스 선수였다고 한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미 서브는 동호인 수준을 넘어섰고 (특히 서브의 정확도나 신뢰성은 내가 예선 2경기를 했던 선수 출신보다 나았다) 스트로크도 웬만한 동호인들은 발리를 갖다 대기도 어려운 수준으로 보였다.


이 경기는 사실 비디오로 녹화하지 않았으면 진행이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을 제대로 못했을 정도로 긴장을 했다. 다만, 결승전을 기다리면서 경기 스타일을 파악한 결과 베테랑부 아저씨는 노련하게 드롭샷과 로브를 섞어 쓰지만, 본인 스스로는 코트 중간에 서서 잘 뛰지 않는 스타일임을 알았고, 말총머리 선수는 원핸드 백핸드, 특히 다운더라인을 좋아한다는 것을 파악했다. 그래서 파트너에게 미리 드롭샷과 로브에 대비할 것과 동시에 베테랑부 아저씨가 좋아하는 길고 힘 있는 스트로크와 발리보다는 탑스핀으로 짧게 감아서 떨어지는 스트로크와 힘을 빼고 살짝 떨어뜨리는 약한 발리를 하도록 주문했다. 더불어 매 포인트를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게 기회가 올 때까지 무리하지 않고 넘기는 전략을 선택했다.


이러한 전략은 다행히 유효했고, 우리는 생각보다 베테랑부 아저씨의 노련한 발리에 대응을 잘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시합 전에 잠깐이나마 스매시 연습을 했던 것과, 서브 앤 발리 연습, 맞발리 연습했던 것이 결승전에도 적잖게 도움을 줬다. 그러다 보니 결국 긴 포인트와 결정적인 포인트에서 우리가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게 찬스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포인트를 가져감으로써 경기를 전반적으로 유리하게 끌고 올 수 있었다. 


다만, 우리는 중간에 스코어 계산을 잘못해서 우리가 유리하게 이기고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오히려 끌려가고 있다는 착각(?)을 했다. 그러다 보니 마지막에 우리가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5대 4로 서브를 넣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우리가 4대 5로 지고 있다는 착각을 했다. 그래서 마지막엔 우리가 경기를 끝냈음에도 경기 스코어가 5대 5라고 믿고 있었고, 제대로 카운트를 하고 있었던 상대방은 6대 4로 경기가 끝났다는 알고 악수를 청했다. 예상컨대 아마도 상대방의 서브를 브레이크 했을 때, 너무 흥분하거나 긴장한 나머지 상대방이 서브를 홀드 했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니, '우리가 계속 경기에 끌려가고 있다'라는 위기의식이 있었기에 계속 집중하여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다.


결승전 경기 동영상:

https://youtu.be/nq0wPKbEGs0


경기를 마치고...

모든 시합은 운칠기삼이라고 이번엔 운이 괜찮게 따라 준 것 같다. 정말로 예선전에서는 예산 탈락을 걱정할 정도로 막강한 상대방에 지레 겁을 먹기도 했었는데, 첫 경기를 어렵게 뒤집은 뒤로는 대체로 경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파트너가 어려운 순간에 공을 잘 넘겨서 내가 다시 정신 차릴(?) 기회를 만들어 줬던 것 같다.


참고로 경기 상품은 우승컵과 쌀 40파운드(20kg)였다. 평소에 밥을 많이 먹는 건 아니라서 한 1년 간은 한인마트에서 쌀 살일이 없을 것 같다.

우승 기념사진


참고로 미주 한국일보에 기사도 났다. (다만 기사 한 구석 수상자 명단에만 이름을 올린 게 전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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