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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Aug 07. 2022

무언가를 더 잘하기 위한 비결 - Adversity

송무 변호사와 테니스 선수의 공통점

나는 테니스에 진심인 구력 20년 차 동호인이다. 내가 테니스 실력을 유지하고 향상하기 위해서 절대로 빼놓지 않고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리그전이든 토너먼트든 시합에 참가하고, 시합이 없을 때는 최대한 모르는 사람과 소위 낯선(?) 공을 많이 치는 것이다. 왜냐면, 오랜 경험을 통해서 그것이 내 단점을 파악하고, 장점을 보강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Alone이란 프로그램에 관해서 썼는데, 거기에서 우승을 했던 참가자가 개설한 유튜브를 보다가 그 사람이 사용한 다음과 같은 인용구를 보고선 변호사 업무와 테니스에 대하여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핵심적으로 요약했다는 생각이 들어 이 포스팅을 작성하게 됐다:


Adversity has the effect of eliciting talents which, in prosperous circumstances, would have lain dormant. - Horace


대충 해석을 하면, "역경은, 번영하는 상황에서는 발휘되지 않았을 법한, 재능을 끌어내는 효과가 있다."


여기에서 내 이마를 딱 치게 만든 단어는 바로 adversity 였다. 왜냐면 미국 사법제도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이 바로 대립 당사자주의, 즉 adversarial system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adversity는 역경으로 해석을 했지만, adversity는 대립, 반대, 적대 등의 의미로도 사용하기도 한다. 


당사자주의는 기본적으로 소송에서 양당사자가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실을 절차법에 근거해서 최대한 싸우다 보면 진실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특히 배심원 재판의 경우 판사는 이 과정에서 증거의 채택 여부를 제외한 별다른 관여를 하지 않는다. (야구에서 심판이 볼과 스트라이크만 판정해주면 투수와 타자가 알아서 싸우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다시 테니스로 돌아가서, 내가 굳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라도 새로운 사람들과 테니스를 쳐보려는 이유는 내 실력을 조금이라도 더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다. 왜냐면 사람마다 고유의 구질과 습관, 경기 전략이 있기 때문이 평소에 자주 상대해 보지 못했던 사람과 만나서 게임을 해보면 많은 점을 깨닫고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동네에서 아는 사람들하고만 치다 보면, 어느새 상대방이 어떤 코스로 어떤 구질의 공을 치고, 어떻게 코트에서 움직일지 어느 정도 미리 알고 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새로운 자극을 받기가 어렵다. 게다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꼭 경기에서 이기기보다는 그냥 체력단련과 친목을 위해서 치는 경우가 많아서 꼭 이겨야겠다는 승부욕도 약해진다. (참고로 어떤 경기든 '이겨야 재미'라는 생각으로 모든 경기를, 물론 정정당당하게, 승리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이렇게 동네에서만 치는 사람들은 우연히 대회를 나가서 낯선 공을 친다든지 혹은 새로운 사람과 만나서 치게 되면 평소 실력의 반도 발휘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그동안의 관습적으로만 테니스를 했기 때문이다. 익숙한 사람들, 익숙한 코트 표면, 익숙한 공, 익숙한 코트 배경, 익숙한 소음 속에서는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겠지만, 시합을 나가면 이 모든 것이 바뀐다. 당연히 새로운 것을 정보를 처리하려는 우리의 뇌는 자연스럽게 시합 외적인 부분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조용한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누가 들어오면 그쪽으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는 자연스럽게 테니스 퍼포먼스의 저하로 이어진다.


변호사 업무도 마찬가지다. 내가 로스쿨을 다닐 때도, 갓 신입 변호사가 되었을 때도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은 소송 업무였다. 왜냐면 상대방과 내가 법정에서 대립을 함으로써 나 스스로의 약점을 가장 신랄하게 노출시켜 최대한 빨리 변호사로서의 실력을 키우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갓 졸업 후에서는 법원에서 로클럭으로 근무를 하며 다른 변호사들의 모습을 열심히 지켜봤다. 아마 테니스로 비유하자면, 갓 투어에 발을 들인 선수가 심판 보조로 활동하면서 선수들을 가까이서 지켜본 것과 같다.


법원 근무를 마치고 나서 국선 변호인으로 일을 시작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였다. 이때부터는 시작 첫날부터 법정에 투입돼서 되든 안되든 각종 흉악범죄로 기소된 의뢰인들을 변호해야 했고, 반대쪽 테이블에 위치한 노련한 검사와 치열한 법정 논쟁을 펼쳐야 했다. 물론 초반에는 잦은 실수와 실패를 거듭했지만, 갈수록 이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고 성장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후 1년 만에 개업이라는 또 다른 도전을 했고, 4년 동안 변호사이면서 동시엔 1인 사업가라는 값진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에서 정부로 이직을 했다. 칼퇴근이 가능한 안정적 직업이라는 점이 매우 좋았다. 입사 초기에는 자문 업무만 해서 스트레스도 거의 없었다. 타 팀 직원이 '이러이러한 결정을 내리고 싶은데 법적으로 가능합니까?'라고 물어보면, 리걸 리서치를 해서 '그건 법이 이러이러해서 됩니다(혹은 안됩니다)'라고만 하면 되는 업무였다. 한 3개월 정도는 너무 좋았다. 물론 여기에서도 학습 곡선(learning curve)이 있긴 했었지만, 국선 변호인이나 개업 변 시절만큼의 스트레스와 부담감은 절대 아니었다.


3개월쯤 됐을 때였나, 내 직속 상사와 정기적으로 면담하는 자리에서 그가 "혹시 건의할 사항은 없어?"라고 물어봤을 때, 나도 모르게 "이제 자문도 어느 정도 해봤으니, 소송을 해보고 싶습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그 결과는? 며칠 뒤 나는 우리 기관이 최근 피소당한 꽤 큰 규모의 소송을 넘겨받아 이를 방어하는 리드 카운슬(lead counsel)이 되었다. 덕분에 모든 자문 업무를 다른 동료 변호사한테 넘길 정도로 바빠졌고 심지어 마감 기일이 가까웠던 어떤 날은 일하는 8시간 내내 점심은커녕 화장실 갈 시간도 부족했다(칼퇴근을 위해 살을 주고 뼈를 취함). 매일 무언가 실수를 하고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는 나날이 반복됐다. 그러나 날마다 변호사로서의 실력이 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하고, 그 과정에서 내가 공익을 위한 보탬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뿌듯했다.


이러한 내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나는 테니스 실력 향상 방법을 물어보는 사람에게는 "항상 크고 작은 시합에 출전을 하고, 끊임없이 실력에 관계없이 새로운 사람과 경기를 해봐야 한다"라는 조언을 해주고, 새롭게 커리어를 시작한 변호사에게는 좋은 변호사가 되기 위한 팁으로 "자신의 법 분야와 관련된 소송이나 재판을 꼭 다뤄보라"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왜냐면 위의 인용구처럼, 어느 분야든지 역경과 대립, 갈등은 개인의 잠재성이 최대한 발현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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