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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Aug 06. 2022

미국 연방정부와 컨트랙터

미국 정부의 실체

필자는 현재 미국에서 연방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아내는 사기업에서 연방정부 컨트랙터(contractor)로 일하고 있다. 컨트랙터는 쉽게 말하면 하청업체 혹은 외주업체라고 볼 수 있는데, 정부 운영상 필요한 업무를 비용, 효율, 혹은 전문성의 이유로 외부 업체가 대신해주는 것이다. 아내는 미국 대학에서 컴퓨터 관련 전공을 마친 뒤 현재 IT 전문 컨설팅 회사에서 약 10년 넘게 일하며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고, 필자는 미국에서 로스쿨을 졸업 후 여러 직장을 거친 뒤 올해 초부터 연방정부 소속 변호사로 근무해 왔다.


필자가 현재 전문적으로 다루는 법 분야는 정부가 물품이나 서비스를 조달하는 경우에 적용되는 연방 조달법(Federal Procurement Law 혹은 일반적으로 Government Contracts Law)인데, 이를 택한 이유는 필자가 개업 변호사로 활동할 때 연방정부 컨트랙터를 의뢰인으로 대리했던 경험도 있었지만, 아내의 직업상 정부계약에 관한 내용을 자주 접했던 것도 있다.


사실 워싱턴 디시 인근 북버지니아, 특히 필자가 거주하는 알링턴 카운티에 사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연방 공무원(군인 포함) 혹은 연방정부 컨트랙터와 그들을 주 고객으로 하는 사업자들이다. 미 국방부인 펜타곤이 알링턴에 위치했고, 워싱턴 디시가 바로 강 건너인 점(알링턴과 워싱턴 디씨는 서울로 비교하면 강남과 강북처럼 가까운 곳이다)인 것을 보면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중에서도 연방정부를 주 고객으로 하는 IT 전문 회사들이 꽤나 많이 위치해 있기 때문에, 몇 년 전에 아마존이 알링턴으로 본사를 이전하기로 결정한 이유로 이러한 고급 IT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설이 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미국 연방정부는 실제로 상당수의 IT기반 시설을 외주 업체를 통해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상컨대 IT기술이 워낙 빨리 발전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는 점, IT 전문 인력이 급여나 공무원 문화적응 등의 문제로 공직 생활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 때문에 IT분야는 그 어느 분야보다 외주가 활발하다. 미국인들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정부기관의 웹사이트나 공무원들이 사용하는 내부 IT시스템, 소프트웨어는 거의 전부 외부 컨트랙터가 관리한다고 보면 된다.


한편,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에 정부가 구매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는 질 보다는 저렴한 가격이 우선일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실제로 정부조달 업무를 하다 보면, 정부는 엄청나게 까다롭고 현명한 구매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럴만한 이유가 미국 연방정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지출하는 슈퍼 갑이기 때문이다. 국방부만 해도 한 해 예산으로 (한화 기준) 약 800조 원을 사용하는데, 이는 대한민국 정부 전체 예산보다 높은 수치이다. 사실 이쯤 되면 미국 정부가 지출하는 돈은 실제로 유통되는 화폐가 아니라 그냥 재무부에서 찍어 내는(?) 돈이라고 봐도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엄청난 예산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당연히 부정부패와 낭비를 막기 위한 여러 가지 장치들이 준비되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연방 조달규정(Federal Acquisition Regulation, 줄여서 FAR)이다. 필자가 정부에서 조달 업무 전문 변호사로 매일 눈이 충혈될 정도로 들여다보는 법 조문의 80% 이상은 이 연방 조달규정이고 나머지 15%는 이를 해석 및 적용하는 판례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 규정의 핵심은 결국 정부가 어떤 서비스나 물품을 구매할 경우, 그것이 과연 "어떻게 해야 국민이 낸 세금의 가치를 통해 최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즉 best value를 얻을 수 있는 구매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 필자가 정부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소중한 국민의 세금이 낭비되지 않도록 정부 계약 담당관(contracting officer)들이 연방 조달규정을 준수할 수 있도록 자문하고, 이와 관련해서 필요한 경우 정부를 대리하여 소송을 진행하는 역할"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참고로 계약 담당관들은 미국 정부를 대신해서 계약서에 서명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들인데, 이들의 서명은 미국 정부의 서명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이들의 권한은 "계약"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계약에 서명할 권한은 있지만, 돈을 지불할 권한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져 있다. 이는 부정부패를 막고 절차를 투명하게 하기 위한 역할 분담이라고 볼 수 있다.


큰 틀에서 보면 미국 시민들이 선출한 의회가 예산을 책정하고, 이를 각 정부 부처에 배분한 뒤, 각 부처의 고위 관료가 예산 지출 계획을 세우면, 이를 실제로 집행하기 위해서 계약 담당관이 입찰 공고 및 평가 절차를 거쳐 계약을 최종적으로 낙찰받은 컨트랙터와 계약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계약 담당관의 법률 자문 및 법정 대리인 역할을 하고, 아내는 컨트랙터로서 정부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마치며...

아마 미국 사람의 99.9%는 필자(공무원)나 필자 아내(컨트랙터)와 같은 사람들이 존재하는지, 혹은 존재하더라도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그냥 미국 정부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한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나름대로 미국이 돌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며 일하고 있다. 미국 정부라는 존재는 겉보기에 차갑고, 권위적이며, 딱딱해 보일 수 있지만 결국 이를 구성하고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은 전부 우리 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소시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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