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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Sep 05. 2022

라틴어 공부를 시작하다

미국에서 법률 공부나 실무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라틴어로 된 법률 용어를 접하게 된다. 마치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마법 주문처럼 들리는 modus operandi (줄여서 M.O., 범행 동기를 뜻한다), habeas corpus (인신보호 영장), nolle prosequi (기소 취하), nolo contendre (기소 불반박), quid pro quo (동등한 보상) 뿐만 아니라 영어 단어처럼 사용되는 de facto (사실상의), caveat (경고 혹은 주의), ad hoc (임시변통의), affidavit (진술서) 같은 단어도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미국 서점 Barnes & Noble에 들렸을 때, 라틴어 입문 책이 내 시선을 끌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영어를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foreign/second language)로 사용하는 미국 변호사로서 수많은 영어 단어의 근원이 되는 라틴어를 공부해보고 싶다는 갈망이 생겼다. 마치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이 한국어 어휘를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서 한자를 공부하는 것처럼 말이다. 더불어 한 때 스페인어를 공부하다가 중도 포기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기에, 비슷한 계통(굴절어)인 라틴어를 공부하면 그나마 조금 공부했던 스페인어 지식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약간 있었다.


스페인어는 개업 변호사 시절 히스패닉 계열 의뢰인과 소통을 위해서 잠깐 공부했지만, 실용적인 목적 외에 언어 자체에 대한 흥미나 문화적 관심은 적었기에 그 열정이 금방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라틴어는 딱히 어떤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순수하게 학문적인 관심과, 그동안 별생각 없이 사용하던 라틴어로 된 법률 용어를 하나하나 이해하고 싶은 호기심이 때문에 그 열정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갈 것 같다. 최종 목표는 기왕이면 크게(?) 잡아서 라틴어로 된 로마법 원문을 읽어보는 것이다.


라틴어 공부는 내가 공부한 언어로는 영어-독일어-일본어-스페인어를 거쳐 다섯 번째이다. (숙련도는 뒤로 갈수록 처참하게 떨어진다) 독일어는 고등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공부해서 그나마 기초 지식은 있지만(der des dem den...), 솔직히 스페인어는 공부했다고 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 그나마 일본어는 기본적인 일상회화나 여행은 가능한 N3 자격증을 따긴 했다. 이렇듯 거의 인생의 반 이상을 외국어 공부에 매진을 했고, 심지어 학부 전공으로 영어교육학을 공부하면서 언어 학습에 대한 기본 이론을 배워서 그런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이 이제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진 않는다.


이제 겨우 막 라틴어 알파벳의 발음과, 동사 및 명사 변화를 공부하기 시작한 초급 단계이지만, 이런 기초 지식으로도 벌써 기존에 알고 있던 라틴어 단어의 뜻을 가늠하고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나 언젠간 이러한 배움의 즐거움보다는 복잡한 문법에 머리를 싸매고, 암기에 괴로워하는 때가 올 것을 알기에,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돌아갈 것이다. 그런 점에서 Semper ad mellora! ("always onward toward better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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