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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Sep 24. 2022

페더러의 은퇴를 보며

나의 은퇴는 어떨까

어제 와이프랑 실내 코트에서 한 시간 동안 테니스를 치고 나오면서 로비에 있는 티브이에서 레이버 컵 중계를 하길래 잠시 보게 됐는데, 알고 보니 페더러/나달 대 잭속/티아포 복식을 하는 것이었다! 2세트를 후반부여서 그것만 보고 가자고 하며 잠깐 앉았는데, 경기는 어느새 3세트로 갔고 생각해보니 이것이 페더러의 마지막 경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끝까지 시청하게 됐다.


경기가 끝나자 아니나 다를까, 페더러의 표정 변화와 경기장의 웅성거림을 보니 정말 페더러의 마지막 공식 경기였던 것 같다. 페더러는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듯이 눈시울과 코가 빨개졌고, 다른 선수들(특히 나달)도 페더러만큼이나 마음이 울컥해 보였다.


이런 장면을 보면서 문득, '나의 은퇴는 어떤 모습일 것이며, 나는 어떤 감정을 느낄 것인가?'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물론 아직은 아득하게 먼 미래일 것 같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간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는 그렇게 먼 미래일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우선 (변호사답게) 내 기준의 "은퇴"를 정의하자면, (1) 최소 40시간 이상의 정규 근무로부터의 해방 + (2) 정규 근무를 하지 않더라도 재정적으로 문제가 없는 상황, (3) 나이는 최소 60세 이상 정도로 할 것 같다. 내 현재 나이 기준으로는 아직 한 20년 살짝 넘게 남았으니 준비할 시간은 충분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은퇴 후의 삶이다. 내 은퇴 기조는 은퇴를 하더라도 변호사 업무는 계속하는 것이다. 다만 은퇴 전과는 다른 방식이 될 것이다. 내가 개업 변호사 생활을 했을 때와 비슷하지 않을까. 다만 은퇴 후라면 재정적인 부분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서, 원하는 의뢰인만 골라서(?) 받고 내키지 않는 사건에 대해서는 미련 없이 거절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프로보노(pro bono) 사건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수 십 년의 경험을 쌓은 노년의 은퇴한 변호사가 돈에 연연하지 않고, principle을 위해 혹은 프로보노 의뢰인을 위해서, 젊은이의 열정을 가지고 법정에서 격렬하게 변론하는 모습이야말로 변호사 직역의 멋진 가능성 아닐까.


미국에는 변호사가 너무 많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변호사가 필요한 사람의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아니 그 간극은 오히려 다른 나라보다 클 수도 있다. 왜냐면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돈이 되는 업무 분야 혹은 의뢰인들만을 상대하기 때문이다. 변호사가 넘친다는 것은 그 돈이 되는 분야에서 일을 하고자 하는 변호사의 공급 과잉을 얘기하는 것이지, 그렇다고 그러한 경쟁에서 낙오되는 변호사들이 법률 서비스를 지불할 능력이 안 되는 소외계층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눈을 낮추는 것도 아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법 지식이 도움 되는 비 변호사 업무를 찾는 것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 때나마 국선 변호인 사무실에서 일했었고, 개업 변으로 일할 때도 법원 지정 국선 변호인으로 활동하면서 국선 사건을 대리하면서 위와 같은 변호사 서비스에 대한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를 피부로 체감할 수 있었다. 한 예로, 내가 법원에서 국선 사건을 받으면 경범죄의 경우 한 건당 보통 120불을(시간당 보수가 아니다) 받았는데, 동일한 사건을 사선으로 수임하면 최소 10배, 운 좋으면 20~30배를 받기도 하니 누가 국선 변호를 하려고 할까?


사실 애초에 내가 변호사라는 직업을 택한 것도, 정년 퇴임의 개념이 없는 평생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이 한 몫했다. 단순히 자격증으로 먹고사는 법 기술자(as a job)보다는, 변호사라는 고귀한 소명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as a profession)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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