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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Oct 20. 2022

3년 만의 한국 방문

갑과 을의 태세 전환

코로나 이전에는 매년 이맘때쯤 한국을 방문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3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게 됐다. 코로나를 차치하더라도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는데, 무엇보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의 신분으로 한국을 방문하게 되는 것이었다. 입국심사에서 평생 내국민으로만 들어오다가 외국인으로 들어오니 왠지 모를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공항 문을 나서는 순간 인천공항 특유의 습하면서도 후텁지근한 공기가 느껴지자 이질감보다는 오히려 익숙함이 느껴지며 몸이 노곤해졌다. 오랜만에 장기간의 비행이긴 했다. 게다가 통상 워싱턴-인천이 13시간 정도 걸리던 것이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러시아 영공을 거치지 않아서 그런지 16시간이 걸린 것도 있었다.


일단 오랜만의 한국에서 처음 느낀 것은 과속단속 카메라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딜 가든 '이런 안내문이 필요한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지나치게 친절한(?) 안내문이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세면대에서 찬물이 나올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라든지, "변기에 휴지 이외의 쓰레기를 투척하면 막혀요" 같은 것 말이다. 가끔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거나, 혹은 프로 불편러들을 배려한 안내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가끔은 유난스럽다고 느낄 정도의 친절한 안내문이 가장 눈에 띄었다. 왠지 마이크로 매니징(micromanaging)의 나라라고 느껴진다.


또 한편으로는 어딜 가나 점원이나 직원들의 친절한 태도도 눈에 띄었다. 미국에서야 워낙 서비스에서 대한 기대치가 낮아서 딱히 친절함 보다는 내가 주문한 내용이나 요청한 사항이나 제대로 이행되면 다행이라는 생각이라서 한국의 친절함이 낯설게 느껴졌다. 재밌는 점은 한국 서비스업의 친절은 대부분 몸에 밴 "영혼 없는" 친절이라는 것이다. 그 말은 꼭 진심으로 고객을 위한 마음보다는 고객이 진상 부리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친절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즉, '제가 이렇게 친절하게 응대를 하고 있으니 혹시라도 진상 짓을 하진 않으시겠죠?'라는 듯한 불안한 눈빛으로 말이다.


이러한 친절함에 대해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놀랍도록 무뚝뚝하다. 점원들이 (비록 영혼은 없어도) 친절하게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라고 말해도 가게를 나서며 대꾸하는 손님이 드물다. 그냥 고개를 끄덕이거나 아무 말 없이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너무 당연해서 그런 것일까?


예상컨대,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은 경쟁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는 카페, 음식점, 병원이 어디에나 널려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불친절하다는 느낌이 들면 절대로 같은 곳을 두 번 갈 일이 없다. 어차피 옆 건물(심지어는 같은 건물에) 동일한 서비스/상품을 판매하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상품의 질은 대부분 상향 평준화되어 있기 때문에(스타벅스나, 파스구치나, 투썸이나 커피맛이나 내부 인테리어는 다 고만고만하듯이) 결국은 사람(서비스의 친절도)이 중요해지다 보니 고객을 모시기 위해 경쟁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인구밀도가 높다 보니 저렴한 비용으로 인력을 구하기도 쉽고, 대체하기도 미국보다 쉽다. 높은 교육 수준과 단일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여서 그런지 직원들 간의 언어나 문화적 차이가 생길 리도 없다. 그러나 미국의 단순 서비스 업종은 대부분 영어와 미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이민자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우선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서비스 마인드가 부족한 문화 출신인 경우도 꽤 많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한국을 "일할 때는 지옥, 놀 때는 천국"이라고 단순화시켜서 말하고 싶다. 돈을 벌 때는 온갖 수모와 불편함을 겪으면서도, 막상 고객이 되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한국에서의 갑과 을의 차이는 종이 한 장인데, 저녁 5시(혹은 퇴근시간)를 기점으로 사람이 을에서 갑이 되는 변화가 극명하다. 어차피 모두가 갑이고 모두가 을이라면, 조금이라도 그 간격을 줄이는 것이 서로에게 편할 것 같다. 어차피 근무 시간(즉, 을이 되는 시간)은 하루에 최소 8시간으로 고정이고, 나머지 갑이 될 수 있는 시간은 근무 시간만큼은 안되니까, 차라리 근무 시간에 조금이나마 덜 "을"로 살기 위해 퇴근 이후에 조금 덜 "갑"으로 살 수 있다면, 총합으로는 그게 이득이 아닐까? (그래도 가장 놀랐던 것은 웬만한 식당에서 이제 "브레이크 타임"이 생겨서 직원들이 식사를 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고, 사람들이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고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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