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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Oct 31. 2022

이태원 압사 사건의 (미국) 법적 쟁점과 결과 예측

핼로윈 주말에 이태원에서 약 150명의 젊은 청년들이 압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이러한 참사가 지나가면 일정기간 애도의 기간을 거쳐, 결국은 책임소재를 따지는 쪽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릴 것이고, 그 책임소재는 결국 법원에서 밝혀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 법정에서 한국 법을 기준으로 판결이 나겠지만, 필자는 한국 법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익숙한 미국 법에 의지해서 어떤 법적 쟁점들이 다뤄질 것인지,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에 대해 예측을 해봤다.


1. 살인죄 성립 여부

만약 비디오 증거조사 등을 통해서 행렬의 맨 뒤에서 사람들을 밀친 사람이나 혹은 집단이 있었고, 이들의 신원을 특정할 수 있다면, 그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을까? 어렵다고 본다. 살인죄(murder)는 일단 살해 혹은 심각한 신체적 피해를 입힐 의도(intent to kill or cause serious bodily harm)가 있어야 성립된다. 수 없이 많은 군중이 몰려 있는 곳에서 맨 뒤에 사람을 민다고 해서 맨 앞에 있는 사람에 대한 살해 의도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 출퇴근 시간의 2호선에서 열차 안에 들어가려고 미는 사람들이 이미 열차 안에 있는 사람에 대한 살해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없는 것과 동일한 이치다. 한편, '내가 여기에서 맨 뒤에 있는 사람을 밀면 맨 앞사람이 무조건 죽겠지?'라는 생각을 한 상태에서 미는 행동을 했다면, 그것도 살인죄의 범죄 의도(mens rea)가 될 수는 있겠지만, 이를 입증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2. 과실 치사

그나마 조금이라도 적용해 볼 수 있는 건 과실 치사(manslaughter)다. 과실 치사는 꼭 누군가를 살해할 의도가 없었지만, 무모한(reckless) 행동이나 과실(negligent)로 인해 누군가를 죽게 만든 경우에 적용된다. 흔한 예로 운전 중에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다가 횡단보도에 있는 행인을 쳐서 사망하게 한 경우에는 과실 치사로 처벌될 수 있다. 운전 중에 문자를 보내는 행동 자체를 통해 살인 등 어떤 범죄의 의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러한 행동이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것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는 논리를 근거로 한다.


과실 치사는 단순히 푸셔(pusher)가 아닌 현장에서 군중을 통제했던(혹은 하려고 했던) 경찰관 혹은 그들의 상관에게도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경찰 당국의 통제 부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런데 자세히 생각해 보자. 본인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해당 지역의 치안을 책임지는 경찰 간부였으면, 이태원 바로 (1) 그 골목에서 반드시 (2) 그런 형태로, (3)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4) 그 시간에 압사할 것이라고 예측을 할 수 있었을까?


3. 월요일 아침 쿼터백

합리적인 경찰 간부였다면 위의 네 가지 조건을 전부 예측해 냈을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맨 뒤에 밀었던 사람들이 '내가 여기 밀면 맨 앞에 있는 사람들이 단체로 넘어져서 150명이나 넘는 사람들이 죽을 것'을 알았을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최종 판단은 사실적 판단(question of fact)이기 때문에, 미국의 경우였다면 배심원들이 결정하게 될 사안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시점에서는 실제로 그러한 결과가 일어났기 때문에 누구나 고민 없이 '그럴 수 있다'라고 대답할 수 있겠지만, 법적인 판단기준으로는 그 당시 과거로 돌아가서 (당연히 미래를 모르는) 행위자의 생각과 행동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섣불리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영어 표현 중에 Monday morning quarterback이라는 용어가 있다. 미식축구는 보통 일요일에 진행되는데 다음날인 월요일 아침, 즉 경기 결과를 알고 난 상태에서 쿼터백이 경기를 어떤 식으로 진행했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4. 인과 관계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러면 과연 까마귀의 비상이 원인이고, 배의 낙하가 결과로, 둘 사이에 인과 관계가 성립될까? 꼭 그렇지는 않다. 두 사건이 순차적으로 일어났다고 해서 반드시 먼저 일어난 사건이 뒤에 일어난 사건의 원인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알고 보면, 배가 익어서 자연적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까마귀가 놀라서 직전에 먼저 날아간 것일 수도 있고, 사냥꾼이 까마귀를 향해서 총을 쐈는데 그 소리에 까마귀가 먼저 놀라서 날아가고, 그 뒤에 총에 맞은 배가 떨어진 것일 수도 있다. 


까마귀의 비상은 "뒤에서 미는 행위"이고, 배의 낙하는 "압사"라고 볼 수 있다. 법정에서 이러한 푸셔들의 행위가 압사로 이어졌다는 인과 관계를 입증하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며, 쉽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만약 푸셔가 없었다고 해도 압사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다면, 푸셔들이 압사라는 결과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박의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5. 앞으로...

법은 수학이 아니다. 법적 판단은 배심원이든 판사이든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결정이 100% 논리와 이성에 의해서만 결정될 순 없다는 뜻이다. 이태원 사건은 수 백명의 젊은 목숨을 앗아간 만큼 의사결정에 있어서 감정이 개입될 가능성이 크다. 그 말인 즉, 결국 위에서 언급한 법적, 논리적 개념이 판사나 배심원의 감정에 의해 그 역할이 무시 혹은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꼭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법 체계는 완벽하지 않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그런 인간적인 면모(감정)가 반영되도록 만들어 놓은 절차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예상하기로는 결국 누군가는 어떻게든 이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고(scapegoat), 그 주제는 누구나 가장 쉽게 납득하고 비난할 수 있는 국가, 더 구제척으로는 공직자가 될 것이다. 그 대상이 경찰이든, 시장이든, 대통령이든 말이다. 그때쯤이면, 실제로 원인 제공자(혹은 책임자들)가 직접적으로 원인을 제공했는지 여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그런 식으로 책임 소재를 정하는 것이 옳고 정의로운 결과라고 믿고, 이 사건으로 받은 슬픔과 아픔을 치유받았다고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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